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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 “옥상엔 어떻게 가나요”…극단위험 학생 1만7000명

“옥상엔 어떻게 가나요”…극단위험 학생 1만7000명

중앙일보 2019.03.15 05:00 종합 4면 지면보기
#1. 서울 강북권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지호(가명)는 마음이 불안하면 교실 벽이나 철봉 등에 머리나 몸을 부딪치곤 한다. 피가 나고 뼈에 금이 갈 때까지다. “엄마는 지호가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나가서 죽어 버릴 거야.” 지호에게 집착하는 알코올 의존증 어머니의 왜곡된 애정 표현을 들으며 자란 지호는 언제부턴가 ‘엄마가 잘못되면 내 탓’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자해를 시작한 건 그 무렵이다. “철봉에 머리를 부딪치면 당연히 아프죠. 그런데 다른 고통은 잊을 수 있잖아요. 그게 좋아요.”

 
#2.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효준이(가명)는 저학년 때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었다. 집에 늦게 오면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묻는 어머니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모자(母子)는 최근 ‘가족 심리치료’를 받으며 상처를 치유해가고 있다.
갈 길 잃은 아이들의 극단적 구조 신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청소년 심리 상담 전문가들이 중앙일보 탐사보도팀을 만나 전한 사례다. 모두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 가정환경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탐사보도팀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4~2017년 ‘학생 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 및 조치 결과’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다. 2017년 지호와 같이 관심군으로 분류되는 아이는 정서·행동특성검사를 받은 189만4723명 중 8만2662명이었다. 전국 초·중·고교생 100명 중 4.4명꼴이다. 더 심각한 자살 위험군은 1만6940명(0.9%)이었다. 2014~2016년 3년간 관심군 학생 비율은 4.5%→3.2%→2.9%, 자살 위험군 학생 비율은 0.6%→0.5%→0.5%였다.
 
수치상으론 2017년 소폭 늘었을 뿐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인다. 일선 교사들은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서울의 강남권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관심을 끌거나 부모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해·자살 시도가 아이들 사이에서 트렌드처럼 돌고 있다. 한 아이가 와서 ‘선생님, 옥상에는 어떻게 가요?’라고 물어보면 선생님들이 다 달려가서 옥상으로 가는 문이 잠겨 있는지 일일이 다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서·행동특성검사를 할 때 ‘가면’을 쓰는 아이들이 있다. 고위험군으로 나오면 재검사를 받게 하는데 그것을 피하려고 거짓으로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교육 당국은 관심군·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아이들을 ▶위(Wee)센터 ▶정신건강증진센터 ▶청소년상담센터 ▶병·의원 등 전문기관과 연계해 관리한다. 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이 정서·행동특성검사를 도입한 2007년 고안된 학생 통합지원서비스다. 각 단위학교에는 위클래스, 시·도 교육청에는 위센터·위스쿨이 있다. 상급기관일수록 고위험군 학생 지원을 담당한다. 위센터를 제외한 연계 기관은 해당 지역 외부기관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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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학생들은 남아있다. ‘학생 정서·행동특성검사 조치 결과’ 자료에서 전문기관 연계관리 조치를 받지 못한 학생의 비율을 계산해보니 2017년 관심군 학생의 23.9%와 자살 위험군 학생의 18.8%가, 2016년에는 관심군 학생의 23.8%, 자살 위험군 학생의 17.9%가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림대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 연구소’(이하 학생정신건강연구소) 추정에 따르면 2016년 관심군으로 분류됐지만 아무 조치를 받지 못한 학생은 4만4803명이다. 보호자의 거부, 사회적 낙인 우려, 경제적 부담, 전문기관 접근에 대한 물리적·심리적 부담감이 작용한 탓이다.

 
근본적으로는 부모·학생·교사 간 네트워크가 붕괴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학생들이 기댈 곳이 마땅치 않아진 게 정신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란 지적이다. 부모는 밥벌이에, 교사는 진학 실적에 집중하는 사이 아이의 정서 관리는 뒷전이란 의미다. 심정섭 더나음연구소 소장은 “어릴 때부터 교실이라는 좁은 공간에 가둬놓기 시작하면서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수동 청소년 전문 심리치료사는 “우울이나 자해는 강남의 경우 부적절한 교육열의 형태와 결과중심적인 태도, 강북의 경우 상대적인 빈곤감과 희망·꿈의 상실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며 “특히 강남권의 경우 학교에서 성적으로 사람 점수를 매기니까 하위권 학생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느끼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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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교사와 전문가들은 부모·아이는 물론 부모·교사 간 소통을 늘리고, 도움의 손길이 쉽게 닿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강북권 중학교의 한 교사는 “자해는 ‘나 좀 봐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데, 그런 와중에도 학교에 면담하러 오는 아이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는 문제가 없다’고만 하는 경우가 있다”며 “부모·학생은 물론 부모·교사 간에도 자주 소통하며 인식의 괴리를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 홍현주 한림대 학생정신건강연구소장은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입시 컨설팅’이 아닌 ‘정신건강 컨설팅’”이라며 “정신건강 학교방문사업 등을 확대해 전문가와 전문기관에 대한 부모·아이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탐사보도팀=유지혜·정진우·하준호 기자 wisepe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교실이데아 2019] 학부모 선호도 높은 초등학교, 서울대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를 인포그래픽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news.joins.com/article/234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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