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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대통령과 통화하시겠습니까?

중앙일보 2019.03.15 00:34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트럼프 대통령만큼 언론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치인도 없을 것이다. 툭하면 기자에게 손가락질하며 ‘가짜뉴스’라고 고함치기 일쑤다. 트럼프로부터 ‘국민의 적’이란 모욕을 당하자 350개 언론사가 단합해 ‘언론인은 적이 아니다’는 사설을 게재, 항의 시위를 벌인 일까지 있었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대중을 설득하는 힘에서 나와
국내 언론과 인터뷰 않는 관행 바람직하지 않아

이쯤 되면 정말 막가자는 거 아닌가.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가 이보다 더 적대적일 수 있을까. ‘트럼프가 언론에 적대적이긴 하지만 많은 언론인·기자들과 사적 만남과 접촉을 이어오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쏙 들어온 이유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의 3월8일자 기사(‘트럼프는 왜 가짜 뉴스를 좋아하나’)를 보자.
 
“트럼프는 케네디 대통령과 밴 브래들리(전 워싱턴포스트 편집인) 관계 이래 가장 빈번하게 격식차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언론인들과 긴밀한 소통 관계(interaction)를 맺어온 대통령이다. 자신에 우호적인 폭스 뉴스의 숀 해네티뿐 아니라 비판 언론인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즈·블룸버그·폴리티코의 기자·발행인 등을 백악관에 초대하고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한다. NYT의 피터 베이커 기자는 ‘트럼프는 닉슨 이래 가장 언론에 적대적인 대통령이지만 동시에 내가 취재했던 대통령 중에 가장 언론과 가까운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그가 기자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정치 문화와 풍토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우리 대통령들은 언론과의 만남을 꺼리는 편이다. 언론과 자주 접촉하던 이들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근엄한 표정을 짓는 ‘TV속 인물’로 박제화된다. 대통령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건 국무회의나 각종 행사에서 메모나 연설문을 낭독할 때 정도다. 청와대 출입 기자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 않다. 1년에 1~2번 하는 기자회견과 청와대 행사 때나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할 기회를 가질 뿐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개별 언론사들과 1대 1로 인터뷰를 하는 게 관행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중 두 곳의 언론과만 인터뷰했다. 대신 외국의 유명 언론과 국내 언론사를 그룹으로 묶어 집단 인터뷰하는 방법을 썼다. 여럿이 하는 공동작업이라 시간의 제약을 받긴 했어도 꼭 물어보고 싶은 건 질문할 수 있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박근혜 대통령은 그마저도 끊어버렸다. 최순실 게이트로 탄핵 위기에 몰린 2017년초 인터넷 매체인 ‘정규재 TV’와 딱 한번 인터뷰했을 뿐이다. ‘특정 언론사에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대통령의 언론관 때문이라고 하는데 외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은 마다하지 않아 기자들의 불만을 샀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박 대통령을 ‘수첩 공주’ ‘불통 대통령’이라고 몰아세우고 비아냥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도 언론을 대하는 태도에선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 역시 해외 순방에 맞춰 해당국 언론들과 ‘외교 차원’의 인터뷰만 했을뿐 아직 국내 언론과는 한번도 인터뷰한 적이 없다. 오는 5월 취임 2주년을 맞게 되지만,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문 대통령이 언론인들을 따로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대중을 설득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적이고 억압적 수단이 아니라 말로써 대중을 설득하는게 제일 힘센 무기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고 반대하는 세력이 많을수록 이런 설득의 리더십은 더욱 필요해진다. 대중 설득의 최일선은 언론이다. ‘일반 대중에 앞서 첫 번째로 설득해야 할 대중’이 언론이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와 SNS가 아무리 위용을 떨치는 시대라 해도 언론의 본질적 가치와 역할이 SNS로 대체될 순 없다. 언론은 대중의 생각을 읽고 여론의 흐름을 짚어내는 감각을 기르도록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일종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기자와 주고 받는 문답을 통해 국민들의 생각,정서와 교감하며 영감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가 ‘쓰레기’라고 비판하면서도 기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댄 발즈는 1월19일자 ‘대통령과 통화하시겠습니까’란 제목의 기사에서 프랑스 파리의 한 식당에서 동료와 식사하던 중, 갑자기 옆자리에 있던 CNBC 앵커 조 커넨이 트럼프의 전화를 바꿔주는 바람에 화들짝 놀랐던 당시의 상황을 코믹하게 묘사했다. 전화기 저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가 ‘미국 대통령’이란 걸 알게 됐다는 발즈는 그 짧은 순간에도 뭔가 기삿거리가 될 질문을 찾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했다고 털어놨다. 직업 의식의 본능적 발동이다.
 
갑자기 ‘발신자 표시 제한’이란 화면이 뜨면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대통령과 통화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이런 상황이 우리 기자들에게도 벌어질 수 있을까.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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