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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대담] “3·1운동, 일제 전복 넘어선 가치 추구…혁명보다 거대하다”

중앙일보 2019.03.15 00:05 종합 27면 지면보기
3·1운동이 주는 메시지
3·1운동은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이다. 3·1운동에서 천명한 평화적·민주적 질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밑바탕이 됐다. 한국은 일제 강점 35년과 6·25 전쟁의 잿더미에서 경제 발전과 민주화라는 세계에서 드문 성공을 거뒀다. 한국의 성공에는 정의를 쟁취하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불의에 저항했던 3·1운동 정신이 스며있다. 3·1운동은 현재 한국이 맞닥뜨린 분열과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지침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중앙일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현재적 의미, 미래 통찰을 살펴보는 대담을 마련했다. 이하경 주필의 사회로, 한완상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과 정해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 대담했다. 대담은 지난 8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본사에서 진행됐다.
 
8일 중앙일보에서 3·1운동 100주년의 의미에 대해 대담하는 정해구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한완상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 이하경 주필(왼쪽부터). [최승식 기자]

8일 중앙일보에서 3·1운동 100주년의 의미에 대해 대담하는 정해구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한완상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 이하경 주필(왼쪽부터). [최승식 기자]

3·1운동은 근대의 시작
 
이하경 주필(이하 이)=100년 전 3월 1일 선조들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왕조의 백성, 일제의 신민이기를 거부하고 나라의 주인으로, 공화국의 시민으로 다시 태어났다. 독립과 해방을 넘어 민주공화국을 향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오늘 우리의 집단적·개인적 정체성을 일깨우고, 확립시켜 준 결정적인 사건이 3·1운동이다.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이야기해 보자.
 
한완상 위원장(이하 한)=3·1운동은 ‘비폭력 평화 운동’이다. 당시 일본은 헌병을 동원해 비폭력을 용기 있게 실천한 민간인들에게 전쟁하듯 총칼을 들이댔다. 민간인을 상대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는 군인을 동원했다는 것은, 제국주의 일본의 통치가 잔인하고 치밀한 폭력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1운동의 비폭력 저항이 결코 소극적이지 않은, 적극적 저항이라는 점을 보면 감동적 울림이 더 크다.
 
정해구 위원장(이하 정)=역사학계에서는 보통 1875년 운요(雲揚)호 사건이 일어나고, 이후 강화도조약이 맺어지는 때를 근대의 시작으로 본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은 실질적 의미에서 근대의 출발이다. 3·1운동 전에는 왕의 지배를 받는 신민이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느끼고 이를 집단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도 3·1운동 뒤에 등장한 임시정부는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이라는 근대적 최고 규범도 같은 해 발표됐다. 3·1운동과 4·11 임시정부 수립은 우리 스스로의 근대를 만들어냈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항일·민족·독립의 관점에서 3·1운동에 접근해 왔다. 그러나 3·1운동은 1차 세계대전 종식을 전후해 전 세계에서 분출된 자유와 평등, 평화와 공존을 향한 수준 높은 열망의 선구적 형태라는 패러다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실제 이집트·인도·중국·베트남의 주권 회복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3·1 독립선언서를 보면 “세계 평화의 바람이 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미 우리는 세계정세를 모두 보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인도·베트남처럼 주권을 잃은 약소국에는 ‘희망이 있다’ ‘당하지만 말라’는 메시지와 함께 ‘비폭력이 더 무섭다’는 비폭력 연대 강화의 길을 제시했다. 제국주의 강대국에는 ‘국내적으로는 민주공화제를 시행하는지 몰라도 대외정책에서는 민주공화와 정반대되는 잔인한 수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단순히 약소국의 유대뿐 아니라, 강대국의 위선적 횡포·갑질에 대해 경고하는 선진적 선언이었다. 100년 전에 이미 세계정세를 꿰뚫고, 강대국에 올바른 충고를 하며, 약소국에 연대를 강조할 정도로 선진적이었다. 100년 지난 지금 과거를 보면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보통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시대정신이 된다. 3·1운동도 강대국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지만 결국 영향은 약소국들에 더 많이 미쳤다. 3·1운동이 중국의 5·4운동뿐 아니라 이집트·인도 등 당시 약소국에 영감을 준 것이다. 우리는 3·1운동의 국내적 영향을 많이 연구했지만, 동아시아 차원, 나아가 글로벌 차원의 영향에 대해서도 재해석해야 한다.
 
3·1운동은 혁명보다 거대해
 
=당시 인구의 10분의 1인 202만 명이 두 달 넘도록 참여한 비폭력 시위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 엘리트 지도층뿐 아니라 소외됐던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졌고, 백정·기생·광대 등 천민들까지 가세했다. 그 강력한 에너지로 40여일 만에 주권재민을 표방한 임시정부를 탄생시켰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1운동은 혁명의 자격이 충분하니 제헌헌법 초안에 적혔던 대로 3·1혁명으로 명명하자고 했다. 동의하는가.
 
=3·1운동을 정치적 혁명으로 국한하는 것은 너무 작은 그릇에 큰 이상을 담는 것이기에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3·1운동은 정치혁명이라기보다 더 포괄적인 ‘혁명적 변혁’이다. 보통 혁명이라고 하면 유혈 과정이 따른다. 프랑스혁명이 그렇고, 러시아 볼셰비키혁명도 그렇다. 3·1운동은 참가자들의 비폭력 기조 때문에 유혈 혁명이라 보기 어렵다. 그리고 혁명은 혁명 주체가 기존 체제를 폭력으로 전복해야 한다. 3·1운동의 목표는 일제 전복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높은 가치였다. 인류 보편적 가치 추구와 우리의 절박한 자주독립을 위해서 살신성인한 것이다.
 
=3·1운동에서는 비폭력을 기조로, 모든 계층의 사람이 한데 모여 독립을 외쳤다. 3·1운동은 이후 역사 발전의 전형이 됐다. 4·19혁명, 6월 민주 항쟁을 보아도 국민이 광장에 모여 행동하는 데에는 평화적·민주적·비폭력적인 일종의 패턴이 있었다. 3·1운동을 역사적 의미로 볼 때는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인 국민 헌법과 정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태적으로 봤을 때는 프랑스혁명처럼 유혈적이지 않다. 3·1 독립선언서를 보면 혁명선언서가 아니다. 독립선언서는 인류의 양심과 자유 등 일반적 원칙이 잘 표현된 굉장히 포용적· 문명적 문건이다.
 
북한, 3·1운동 남북 공동 행사 의사
 
=3·1운동에 대한 남북의 평가는 다르다. 이런 점을 가볍게 생각하고 100주년 남북 공동 행사를 추진하다가 무산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3월 말이나 4월쯤 열렸다면 3·1운동 100주년 남북 공동 행사에 북한도 참여할 뜻이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이 2월 말로 정해지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물리적으로 서울에 오기 힘들어졌다. 북한은 온 자원을 회담에 투입했을 것이다. 3·1운동 공동 행사가 성사된다면 종전선언 못지않은 효과를 불러오고 한반도 분단 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
 
=3·1운동에 대한 남북의 역사적 해석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북한에선 김일성의 무장 투쟁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3·1운동을 실패한 운동으로 본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북한도 3·1운동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앞으로 기념행사를 함께할 수 있는 여지는 많다고 생각한다. 3·1운동을 남북이 함께 기념하는 것은 찢긴 역사를 다시 봉합한다는 의미가 있다. 해방 후 남한에서는 좌·우 갈등 때문에 3·1절 기념행사를 따로 했다.
 
3·1운동에 미래 100년 설계도 담겨
 
=3·1운동은 비폭력의 토대에서 동양 평화와 세계 평화를 추구하고, 일본이 양심을 회복하기를 촉구한 성숙한 운동이다. 3·1정신을 온전히 계승하려면 다가올 100년의 미래를 한 차원 높은 문명의 수준에서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
 
=3·1정신이 감동을 주고 족탈불급인 이유는 바로 ‘선제적’이라는 데에 있다. 3·1정신은 ‘선제적 사랑 실천’ ‘선제적 정의 실천’ ‘선제적 평화 만들기’다. 서로 먼저 껴안으려고 한다면 어떤 갈등이 생길 수 있을까. 관용, 즉 참는 능력은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차이를 통해서 차별하지 않고, 차이를 통해서 더 껴안는 교육’을 해야 하는데 우리 교육은 경쟁 일색이다.
 
=3·1 독립선언서 마지막에 ▶남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멋대로 하지 말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민족의 정당한 뜻을 마음껏 드러내며, ▶질서를 존중하고 주장과 태도를 떳떳하게 하라는 세 가지 약속이 나온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미래 100년의 목표가 아닐까. 산업화와 민주화도 이뤘는데, 결국 우리의 지향은 100년 전에 만들어진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문명국가·문화국가다.
 
=요즘 한·일 관계가 위안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과거사에 묶여 최악이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긴장 속에 주목했던 일본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할 것”이라는 미래지향적 언급에 안도하는 반응이 나왔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면 장기적 관점의 냉철한 해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지금도 유효하다.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세 나라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불편한 과거에서 벗어나 3국이 서로 협력할 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지금 3국 관계를 풀 수 있는 단추는 북·미, 북·일 간의 국교 정상화와 남북 화해다. 북한 문제만 풀리면 3국이 협조할 구조적 관계가 만들어진다.
 
=지난달 일본 외무성 고위층 인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에게 “내가 당신 나라(일본)를 미워하는 것이 나에게는 감옥이다. 인생은 짧은데 왜 특정 국가·세력을 미워하는 일에 내 시간을 보내야 하나. 나는 증오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증오의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는 열쇠를 가진 것은 바로 당신들이다. 좀 풀어달라”고 말하니 눈물을 글썽이더라.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진정한 참회다.
 
정리=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임성빈 기자 hong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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