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탐사하다

“교육 난민 돼도 좋다, 초등 SKY캐슬 가자”

중앙일보 2019.03.14 01:30 종합 1면 지면보기
[교실이데아 2019] 초등 때부터 입시 위한 이주…‘교육 난민’ 자처 
“연고가 특별히 없어 그런지 아직도 동네가 좀 불편하네요. 둘째 대학 갈 때까지만 눈 딱 감고 교육 난민 생활 하는 거죠, 뭐.”
 

좋은 학군 찾아 집 팔아 전세로
5·6학년 강남·목동·중계동 몰려
“학원 많고 특목고·SKY 잘 보내”
중계동 초등교 따라 집값 3억차

서울 중계동은 강북의 대치동으로 손꼽힌다. 주변 지역보다 집값이 다소 높고 교통도 불편하지만 자녀가 초등학교 때부터 이곳으로 이사 오는 ‘교육 난민’이 많은 이유다. 교육특구인 만큼 어딜 가도 아파트 주변엔 학원이 즐비하다. 사진은 13일 상가 건물 곳곳에 다양한 학원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모습. 김경록 기자

서울 중계동은 강북의 대치동으로 손꼽힌다. 주변 지역보다 집값이 다소 높고 교통도 불편하지만 자녀가 초등학교 때부터 이곳으로 이사 오는 ‘교육 난민’이 많은 이유다. 교육특구인 만큼 어딜 가도 아파트 주변엔 학원이 즐비하다. 사진은 13일 상가 건물 곳곳에 다양한 학원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모습. 김경록 기자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일곱 살 딸을 둔 김민희(42·여·자영업)씨는 지난해 가을 서대문구에서 노원구 중계동으로 이사 온 초보 ‘중계맘’이다. 이사는 다소 갑작스러웠다. 김씨의 사업장도, 회사원인 남편의 직장도 시내 쪽인 데다 육아를 도와주는 친정 어머니가 바로 옆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어서 이사 갈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김씨는 “강남 사는 친구들 애들과 학교나 사교육 수준에서 갈수록 차이가 벌어졌다. 첫째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괜찮은 학군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 형편에 대치동은 언감생심이고, 그래도 무리 없이 갈만 한 곳이 중계동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중계동은 강북의 대치동으로 손꼽힌다. 주변 지역보다 집값이 다소 높고 교통도 불편하지만 자녀가 초등학교 때부터 이곳으로 이사 오는 ‘교육 난민’이 많은 이유다. 교육특구인 만큼 어딜 가도 아파트 주변엔 학원이 즐비하다. 사진은 13일 한 여학생이 중계동 학원가를 지나는 모습. 김경록 기자

서울 중계동은 강북의 대치동으로 손꼽힌다. 주변 지역보다 집값이 다소 높고 교통도 불편하지만 자녀가 초등학교 때부터 이곳으로 이사 오는 ‘교육 난민’이 많은 이유다. 교육특구인 만큼 어딜 가도 아파트 주변엔 학원이 즐비하다. 사진은 13일 한 여학생이 중계동 학원가를 지나는 모습. 김경록 기자

처음 중계동에 왔을 때 김씨는 두 번 놀랐다고 했다. 중계동 은행사거리에 빼곡하게 조성된 학원가를 보고 한 번, 너무 불편한 대중 교통편에 또 한 번이었다. 가장 가깝다는 중계역이나 상계역도 도보로 30분은 족히 걸렸고, 시내까지 돌아오려고 보니 버스도 한두 번은 갈아타야 했다.
 
“중계동 은사에만 넣어놓으면 기본은 다 해결돼”
그래도 이사한 것은 중계동에 사는 학교 후배의 설명에 공감해서였다. “언니, 여기는 다른 건 아무것도 없고 정말 그냥 학군이야. 여기 중학교들, 강북에서 특목고 많이 보내는 걸로 유명해. 고등학교들도 다 서울대 잘 보내고. 언니도 맞벌이인데, 솔직히 애들 따라다니면서 하나하나 신경 못 쓰잖아. 여기 은사(은행사거리) 학원에 애 넣어놓으면 진짜 기본은 다 해결돼. 주변에 술집이나 노래방 같은 것도 거의 없잖아.”
 
13일 서울 중계동 은행사거리(은사) 모습. 김경록 기자

13일 서울 중계동 은행사거리(은사) 모습. 김경록 기자

아이가 벌써 중학생인 후배는 중계동 내에서만 세 번 이사하며 10년째 전세살이 중이다. 김씨는 살던 집을 팔고, 중계동에서 인기가 좋다는 초등학교 학군 아파트에 전세로 이사했다. 김씨 부부의 통근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친정 어머니가 집에 와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의 어머니도 덩달아 교육 난민 대열에 합류했다. ‘조기 유학도 못 보내주는데, 이 정도쯤이야. 몇년만 참자.’ 김씨는 오늘도 이렇게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김씨는 1990년대에 20대 전후를 보낸 X세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94년 8월 발매)에 열광하며 억압적 입시 교육에 반발한 세대이기도 하다. 25년이 흘러 이들은 이제 학부모가 됐다. 교실은 달라졌을까. 중앙일보가 오늘의 ‘교실’을 찾아갔다.
 
고학년 되면 강남·노원·양천에 대거 유입 
과거 명문학군은 고교를 뜻했다. 이제는 초등학교부터였다. 중앙일보는 학부모 선호도가 높은 초등학교 학군을 파악하기 위해 ‘학교 알리미’(www.schoolinfo.go.kr) 공시 정보를 기반으로 고학년(4~6학년) 학생 수가 저학년 수(1~3학년)보다 많은 초등학교들을 분석했다. 고학년 수의 증가는 전학 오는 학생이 많다는 뜻이다. 입시 컨설턴트들이 대학 진학 준비를 위한 적절한 전학 시기를 초등학교 5~6학년으로 꼽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현상이다. 서울 초등학교 596개 중 지난 3년(2016~2018년) 간 고학년 수가 더 많은 초등학교 각 50개씩을 추출해보니 이 중 3년 연속 50위 안에 든 학교는 20개였다. 소재지별로 노원구와 양천구에 있는 초등학교가 각 6개로 가장 많았고, 강남구가 5개교로 뒤를 이었다. 20개 학교 근처에는 여지 없이 서울대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들과 대형 학원가가 위치했다.
 
서울시가 2017년 12월 집계한 2018년 서울의 초등학교 학령 인구(만 6~11세)는 43만 5106명이다. 이 중 18.2%인 7만 9236명이 인기 초등학교가 몰린 강남·노원·양천구에 산다. 2018년 교육을 이유로 노원구에 전입한 인구는 4651명인데, 다른 시·도에서 온 경우가 2645명으로, 절반 이상이었다. 중계동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의정부나 구리에서 이사오는 집들도 드물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양천구는 교육을 위해 전입한 3203명 중 2289명이 구 내에서 이동하거나 다른 구에서 전입해온 경우였다. 강남구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명문초 배정 여부에 아파트 시세도 달라져 
이처럼 초등학교에서부터 대입 준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경쟁은 자연스럽게 ‘아파트 학군’ 형성으로 이어진다. 부동산 가격도 이에 따라 형성됐다.

 
2018년 고학년생 수가 저학년보다 329명 많은 을지초(노원구 중계동)에 배정될 확률이 100%인 A아파트(96년 준공)를 직접 찾아가봤다. 전용면적 84㎡ 기준 ▶매매가(이하 시세, 평균가) 8억 2000만원대 ▶전세가 5억 1000만원대 ▶매매 평당가 2800만원대였다(한국감정원 기준). A아파트에서 약 1㎞ 떨어진 B아파트(91년 준공)의 경우 전용면적 84㎡ 기준 ▶매매가 5억 2000만원대 ▶전세가 3억 3500만원대 ▶매매 평당가 1600만원대였다. 작은 사거리 하나 건너에 있지만 B아파트는 을지초 배정 학군이 아니다. 매매가 3억원 차이는 그래서 난다.
 
근처 부동산 중개인은 전학보다도 입학을 중계동에서 시켜야 한다고 권했다. 그는 기자에게 “‘유치원부터 여기서 보내면 되겠지’ 하고 여섯살에 들어오면 이미 늦는다. 4~5살 때는 들어와야 정보 공유가 이뤄지는 엄마들 네트워크에 들어가기 쉽다”고 귀띔했다. 이어 "기왕 이사올 거면 대출을 좀 받아서라도 A아파트로 가는 것이 좋다. 학교 보내보면 그 차이를 알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광진구에서는 최근 수능 만점자를 배출한 광장동의 광남고등학교가 학군의 중심이었다. 광남고와 붙어 있는 광남초는 고학년생 수가 저학년생보다 171명 많다. 광남초 배정 학군인 아파트 세 곳의 매매 평당가는 2800만~3300만원대였다. 89~90년도에 준공된 아파트들이다. 길 하나 건너 차이로 다른 초등학교에 배정되는 C아파트는 매매 평당가가 2800만원대였다. C아파트는 준공연도가 99년이다.  
 
고학년 학생 수가 저학년보다 293명 많은 강남구 도곡동 대도초에 갈 수 있는 아파트의 평당가는 4800만~5500만원대에서 형성됐다. 도곡동의 평균 평당가는 3600만원대로, 많게는 200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나는 셈이다.
 
명문초 대부분 '과밀 학급' 아이들은 더 스트레스
하지만 이런 초등학교들은 학급당 평균 학생 수가 20명대 후반이거나 30명을 훌쩍 넘는 과밀 학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초등학교의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22.3명이다. 학습 부진 학생을 집중적으로 지도해온 경력 35년의 영어 교사 송형호씨는 “부모는 특목고 잘 보낸다고 이른바 명문이라는 학교에 아이들을 꾸역꾸역 집어넣지만 이에 따라 정서문제가 생길 수 있고 학력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아이들에게까지 일종의 ‘아파트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남에 사는 이모(47)씨는 “초등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안녕, 래OO’, ‘야, 자O’ 이런 식으로 이름 대신 아파트 브랜드명을 부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친구들을 아예 사는 아파트를 기준으로 인식한다는 뜻인데, 어려서부터 그런 서열 문화가 체화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탐사보도팀=유지혜·정진우·하준호 기자
wisepe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교실이데아 2019] 학부모 선호도 높은 초등학교, 서울대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를 인포그래픽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news.joins.com/article/23410238)


 ◇도움 말씀 주신 분(가나다순)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김동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김수동 심리치료사,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현수 성장학교 ‘별’ 교장(정신과 전문의), 박민규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 방승호 아현정보산업고등학교 교장, 변수용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부교수,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송형호 교사,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심정섭 더나음연구소장,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오세정 서울대 총장, 장희선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연구원(사회복지학 박사), 전상용 전 동덕여고 교장, 최성수 성균관대 사회학과 조교수, 홍현주 한림대의대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