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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나누는 라오스 승려 행렬…가장 아름다운 행위예술

중앙일보 2019.03.13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18)
지하철에서 본 2000원의 응원 메시지 광고. 작은 정성이 모여 기적을 낳을 수 있다. [사진 한익종]

지하철에서 본 2000원의 응원 메시지 광고. 작은 정성이 모여 기적을 낳을 수 있다. [사진 한익종]

 
지하철을 탔는데 광고 전단이 눈에 든다. `내리시기 전 잠시, 따뜻한 응원 한마디로 하은이의 작은 손을 잡아주세요.’ 그 자리에서 2000원이 기부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바로 뒤 돌아온 메시지 하나 ‘오늘 하루, 여러 가지 많은 일로 바쁘고 피곤하신 중에도 짧은 순간 마주친 소중한 가치를 외면하지 않고 정말 감사합니다.’ 아, 따뜻하게 밀려오는 행복감과 짜릿한 우쭐함이란.
 
그래 바로 이 행복감과 우쭐함이 나를 계속 봉사와 기부를 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감정이 오래전 모잠비크에, 스리랑카에 내 자식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가수라는 이름보다 기부 천사로 더 불리는 션 얘기 좀 해 보자. 얼마 전 중앙일보에서 주관한 '더,오래 콘서트'에서 만난 가수 션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션, 당신 너무 황당한 꿈을 꾸고 있는 거 아냐? 아니 인간이 천사가 되겠다니 말이야." 그렇다. 실제로 가수 션은 천사를 꿈꾸고 있었다. 그때까지 부양(?)하는 자식이 본인의 친자식 4명을 포함해 904명이었고, 100명을 더 지원한다고 했는데 이제 100명을 채웠으니 완벽한 1004가 된 것이 아닌가.
 
가수 션은 장애아동들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 푸르메재단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푸르메재단은 처음엔 백경학이사 부부의 종잣돈으로(부인에게 지급된 사고보상금과 백경학 이사의 취미인 맥주로 번 자본금) 시작해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졌고 꾸려가고 있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옛말이 허사가 되게 한, 작은 정성들이 모여 큰 기적을 낳은 것이다.
 
우리는 작은 기부나 봉사를 도외시하는 버릇이 있지 않나
중앙일보에서 마련한 더 오래 콘서트에서 자신의 사례를 밝히는 가수 션. 션은 기부천사로 불리며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 한익종]

중앙일보에서 마련한 더 오래 콘서트에서 자신의 사례를 밝히는 가수 션. 션은 기부천사로 불리며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 한익종]

 
해외의 기부사례를 보며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빌 게이츠 재단이 그렇고, 워런 버핏의 기부가 그렇고, 영화배우 성룡이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면서도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는 걸 보고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기부행위 자체에 놀라고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그 규모에 놀라고 부러워한다. 작은 기부나 봉사는 심지어 우습게 여기는 버릇까지 있다.
 
왜 그럴까? 아마도 못 사는 나라에서 급격하게 부를 이루다 보니 오랫동안 이어지는 것보다는 한 번에 왕창 이루어지는 걸 더 선호하게 된 것 아닐까. 소위 우보천리, 우공이산, 마부작침보다는 일확천금이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는 게 아닐지. 외국의 유명인사가 엄청난 규모의 금액을 기부하는 걸 부러워하는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은 어려서부터, 사회 전체가 습관이 될 정도로 봉사와 기부를 당연시해 왔다. 그들의 봉사와 기부는 곧 생활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유명 인사가 큰 규모의 기부를 하는 경우는 대부분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된 이후 마지못해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기부에 대해 큰 경우는 여의치 않아서 못하고, 작은 경우는 창피하게 여기는 생각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한다.
 
고(故) 박영석 대장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한 얘기가 있단다.
“1m도 안 되는 걸음으로 보세요. 벌써 산을 두 개나 넘었잖아요”.
그렇다. 기부도 마찬가지다. 작은 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작은 정성들이 모여 큰일을 해낼 수 있다. 푸르메재단이 그를 해 냈고, 해내고 있다.
 
얼마 전부터 푸르메재단에서 기부 활성화를 위한 모금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도네이션 369'라 해서 처음 1년은 매달 3000원씩, 두 번째 해부터는 매달 6000원씩, 그리고 삼 년 차에는 매달 9000원씩을 작정 기부하는 캠페인이다. 내게 신청서를 쑥스럽게 내보이는 직원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다. 굿 아이디어라고. 내가 응원 메시지로 보낸 2000원의 작은 돈이 여러 사람의 동참을 거쳐 큰 힘을 이룰 것이라 확신한 이유이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행위
여행에서 돌아올 때 외국의 동전을 수거했다(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써 달라고. 라오스 루왕푸라방의 새벽길에서 펼쳐지는 보시 행렬(아래). 인간이 행하는 행위 중 가장 숭고한 행위라고 평가하고 싶다. [사진 한익종]

여행에서 돌아올 때 외국의 동전을 수거했다(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써 달라고. 라오스 루왕푸라방의 새벽길에서 펼쳐지는 보시 행렬(아래). 인간이 행하는 행위 중 가장 숭고한 행위라고 평가하고 싶다. [사진 한익종]

 
라오스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북부 루왕푸라방의 새벽 거리에서 펼쳐지는 보시 행렬이다. 푸르스름한 새벽공기도 신비롭지만, 주황색 망토와 은색 보시 항아리를 어깨에 걸치고 긴 행렬을 이루고 말없이 보시를 받는 승려들, 그리고 존경과 정성을 바치는 시민들의 모습은 내가 `인간이 행하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예술(?)’이라고 칭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나를 감동케 하는 장면은 곧이어 승려들이 받은 보시 물을 걸인과 불우한 이웃에게 그 자리에서 다시 나누는 행위이다.
 
크다고 큰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 위대한 사람이 베풀었다고 효과가 큰 것만은 아니다. 이제는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멈췄지만 오래전 기회만 되면 했던 헌혈이 생각난다. 내가 있던 부서가 단체 헌혈에서는 가장 많은 헌혈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 헌혈증으로 피가 모자라 사경을 헤매던 직장 동료를 살린 경험은 작은 것이 모여 위대한 결과를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내가 회장으로 있던 푸르메재단 '한걸음의 사랑'이라는 모임은 걸음 1m당 1원의 성금을 장애아동들의 치료와 재활을 위한 기금으로 기탁한다. 이 또한 작은 기부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이다. 요즘 걷기 열풍을 타고 수많은 걷기동호회가 활동 중이다. 그 걸음을 이웃에 대한 사랑 나누기로 승화시키면 어떨까? 내 작은 몸짓 하나가 큰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생각, 그를 통해 내가 이 사회에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깨닫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한익종 푸르메재단 기획의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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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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