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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가서 안창호 선생 보고 왔다는 두 남자

중앙일보 2019.03.13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79)
'같이 목욕 가자' 하면 투덜대던 남편, 등 밀어줄 동료가 생긴 후로 신나게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 [중앙포토]

'같이 목욕 가자' 하면 투덜대던 남편, 등 밀어줄 동료가 생긴 후로 신나게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 [중앙포토]

 
시골 살 적엔 가까운 도산온천으로 목욕을 자주 다녔다. 남편 혼자서는 사우나를 참 좋아하는데 내가 같이 가자고 하면 투덜투덜 밍기적 거리며 억지로 따라나서더니 언젠가부터는 아랫동네 동생뻘 남자가 내려와 ‘형님, 형수님 목욕 갑시다’ 하면 벌떡 일어나 먼저 나섰다. ‘역시 목간은 동료가 있어서 등도 밀어주고 이런저런 속말도 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목욕 가는 길인데 화장품은 왜 발라?’ 집에서 나서기 전에 스킨·로션을 손바닥이 아프게 탁탁 제 볼에 치며 흥얼흥얼 노래까지 하는 얼굴에 얄궂은 미소가 번진다. 그날도 동생 부부와 우리 부부가 함께 온천에 갔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갈 테니 먼저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정신도 없어 대충 샤워만 하다시피 하고 조금 일찍 나왔다. 웬일로 남자들이 아직 안에 있나 보다 하며 기다리는데 아랫집 동생이 소리쳤다.
 
“언니야~ 저 차 우리 차인데 이 남자들이 탕에서 나오지 않고 어디 갔다 오는겨?” 저쪽 건너 길에서 차가 급하게 오다가 우리를 보고는 급정거를 하더니 잠시 멈춰 선다. 그러고는 잠시 후 거북이처럼 슬금슬금 다가왔다.
 
 
차에서 내린 두 남자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차를 밀고 오다시피 하던 꼴이 두 사람이 차 안에서 말을 맞춘듯했다. “하하. 형수 오늘은 우리가 일찍 끝내서 가까운 곳에 한 바퀴 돌다 왔어요. 하하하” “그런데 왜 이리 일찍 나왔노? 맨날 들어가면 두 시간이더니.” 기다리기 지겹다고 안 따라나서던 길을 잘 따라나서더니 무슨 꿍꿍이가 있었구나. 그런데 눈치 보며 둘러대던 뒷이야기가 하도 기가 막혀서 그냥 폭소가 터졌다.
 
“하하하. 형님이랑 기다리는 시간에 가까운 도산서원에 다녀왔지요. 거기 가서 우리 가족 건강과 안녕을 빌면서 절도 하고 왔어요. 형수님 가족도 올해 잘 되실 거예요. 하하하.” ‘도산서원에서 절을? 퇴계 이황 사진을 보고 예는 갖추고 왔구나.’ 마음으론 대견해 하며 뾰로통하게 쳐다보는 나에게 동생 남편이 한마디 더 했다. “에이~ 거기 있잖아요. 도산서원 안에 누가 모셔져 있겠어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죠~ 하하하. 형님 맞지요?”
 
남편은 옆에서 하늘을 우러러 술 냄새를 없애는 껌을 이빨이 부딪히도록 딱딱 씹으며 말도 안 되는 그 말에 맞장구까지 쳤다. “암만~ 도산서원이니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지, 그럼.” 이 양반은 나랑 몇 번이나 거기를 다녀왔는데, 거기가 퇴계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공부하던 서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도둑질하는 친구 망봐준다더니 내 눈은 쳐다보지도 않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목욕하는 줄 알았던 두 남자, 알고 보니 단골 선술집으로 도망 다니고 있었다. [중앙포토]

목욕하는 줄 알았던 두 남자, 알고 보니 단골 선술집으로 도망 다니고 있었다. [중앙포토]

 
덩치나 작나. 90kg이 넘는 두 남자의 거짓말 변명에 하도 기가 차고 우스워서 대꾸도 못 하고 “네~~ 네~~ 하하하….” 하고 웃고 말았다. 언제부턴가 아예 목욕도 하지 않고 땡땡이를 치기로 한 것이다. 아~ 이 어른 악동들을 어찌할까나! 두 남자는 가기 싫은 목욕을 가기 위해 부인과 투덕거리며 하루를 기분 나쁘게 보내기보다는 알뜰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작전을 짰다.
 
먼저 들어가서 후닥닥 물만 칠하고 나와서는 술집으로~ 아니면 부인들이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바로 단골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는 것으로. 그리곤 조금 일찍 먼저 나온 듯 우리를 맞이하는 모습이 매우 행복해 보여 우리는 우리 대로 “봐~ 목욕 오길 잘했잖아” 하며 큰소리치며 엇박자를 친 것이다.
 
남편이 떠난 후 그 사람이 자주 가던 온천 동네의 선술집에 가끔 들른다. 그 주인 할머니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나이 칠십 전후가 되면 세상만사 어찌 돌아가든 상관 말고 마누라만 웃게 하면 세상은 행복한 거’라고. ‘마누라 말 잘 들으면 밥상이 달라지는데 나이 들어 돈도 못 벌어오면서 돈 안 드는 그 짓도 못하면 나가서 죽으라’고. 마누라 등쌀에 따라 나와 몰래 농땡이를 치고 한잔하러 오면 이래도 저래도 힘든 인생살이 웃고 살라며 당부했단다. 비가 오니 온천이나 가자며 전화 온 친구와 함께 옛길을 나선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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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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