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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88세 전두환 지키는 80세 이순자의 편지

중앙일보 2019.03.13 01:30
재판부 제출 편지, 이순자가 아무도 모르게 작성
[연합뉴스]

[연합뉴스]

이순자 여사(80)가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88)의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서 판사에게 전달한 편지에는 전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작성한 과정이 기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전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이후 오히려 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붙어있으면서 재판에까지 신경을 쏟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재판장이 다음 기일을 지정하고 재판을 끝내려고 하자 이씨가 가방을 뒤져 두툼한 편지봉투를 꺼냈다. 그러면서 이씨는 전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정주교 변호사에게 귓속말을 했다. 정 변호사는 재판부에 편지를 내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고 이씨는 검사측에 편지 제출을 허락해줄 수 있는지를 직접 물어봤다.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가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가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측 모두 제출을 허락하자 이씨는 편지가 들어있는 흰색 봉투를 재판부에 전달했다. 이 편지는 이씨가 변호인을 비롯한 측근들로부터 아무런 조력도 받지 않고 작성했다고 한다. 재판부가 편지에 대해 물어보자 변호인은 “제가 실제 (편지)내용을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정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여사가 편지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회고록 작성 과정부터 방법까지 기재 
전 전 대통령측에 따르면 편지에는 “전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부터 회고록을 작성하기 위해 자료를 준비했고 백담사에서 내려온 다음부터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회고록은 알츠하이머로 고생하기 전부터 작성해왔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1988년 11월 대국민 사죄를 한 뒤 서울을 떠나 백담사에 들어갔고 1990년 12월 30일 설악산에서 내려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을 마치고 부인 이순자 씨의 손을 잡고 나서고 있다. [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을 마치고 부인 이순자 씨의 손을 잡고 나서고 있다. [뉴스1]

 
이씨가 쓴 편지에는 또 『전두환 회고록』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작성됐는지가 적혔다. 이씨는 “전 전 대통령이 가족들이나 측근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면 그 내용을 받아 적거나 녹음한 뒤 타자로 옮기는 방식으로 원고를 작성했다. 초고가 나온 뒤에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수정하는 과정까지 거쳤다”는 내용을 써 재판부에 전달했다.
 
이씨는 지난해 8월 27일 열린 전 전 대통령의 첫 공판에서 김호석 판사가 변호인에게 한 질문을 전해 듣고 편지를 작성했다. 당시 재판은 전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됐다. 이에 김 판사는 변호인에게 “알츠하이머를 2013년 전후로 앓았다고 하는데, 회고록은 2017년 4월 출간됐다”며 “이해가 안 된다. 모순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씨는 재판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변호인 등을 통해 듣고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오해한 것에 대해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따로 방청석 아닌 피고인석 동석 
이씨는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재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앉았다. 이씨는 지난 5일 법원에 “전 전 대통령과 동석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방청석에 떨어져 앉아 재판을 지켜보지 않고 피고인석에 함께 앉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신뢰관계인은 피고인이 의사를 결정하거나 전달할 능력이 부족할 경우에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이씨 부부의 사이는 전 전 대통령의 알츠하이머 증세가 심해진데다 몇 년 전부터 상주 가사도우미를 쓸 형편이 안 되면서 더 각별해졌다. 예전과 달리 24시간을 단둘이 보내기 때문이다. 이씨는 전 전 대통령의 밥상을 하루 세 번 모두 직접 차린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은 “두 분은 항상 붙어 다닌다. 이 여사가 자신의 지인들과 골프 모임을 하는데 전 전 대통령을 집에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함께 골프장에 나갔다가 일전에 문제가 됐다”며 “전 전 대통령이 어린 손주들에 대해서는 기억을 잘 못해서 매번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신기하게도 이순자 여사만큼은 또렷이 기억하면서 전과 같이 ‘할멈’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광주지법에 출석한 뒤 귀가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 여사가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들러 진료를 받은 뒤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광주지법에 출석한 뒤 귀가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부인 이순자 여사가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들러 진료를 받은 뒤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재판이 끝나고 법원을 빠져나와 차량에 탑승할 때까지 이씨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신촌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도 이씨의 손을 잡고 있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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