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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자율차 살린다며 국회 시승식…정작 규제 완화는 통과 안했다

중앙일보 2019.03.13 00:04 종합 14면 지면보기
2019 자율주행기술제품 전시 및 자율주행차 시승식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이 자율주행차를 시승하고 있다. [뉴스1]

2019 자율주행기술제품 전시 및 자율주행차 시승식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이 자율주행차를 시승하고 있다. [뉴스1]

12일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본관 앞엔 자율주행차 5대와 SK텔레콤 5G(5세대) 통신 차량 1대가 이슬비를 맞으며 덩그러이 주차돼 있었다. ‘자율주행차 시승식’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은 천막이 있었지만 시승을 해야할 국회의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당초 오전 11시에 열리기로 돼 있던 행사는 10분씩 미뤄지다가 결국 11시 30분쯤 관계자가 “오후 1시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하자 행사 참석자들은 모두 점심을 먹으러 떠났다.
 
이 행사는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자율주행차 관련 입법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이날 국회 본회의장의 여야 충돌때문에 행사가 계속 늦춰진 것이다. 행사에 초대된 자율주행차 개발 중소기업 대표들은 비를 피해 천막에서 의원들을 기다렸다. 김기혁 에스더블유엠(SWM.AI) 대표는 “자율주행차를 위한 법과 제도가 제대로 안 잡혀있고, 관련 보험도 없다보니 기술 개발하는 회사나 엔지니어 입장으로서 부담이 있다. 국회에 법이 계류돼 있다고 들었는데 빨리 처리됐으면 좋겠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 얘기를 들어야할 정치인은 그 자리에 없었다.
 
오후 1시에야 시승식 행사가 다시 열렸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 원내대표 등이 참석해 자율주행차를 타고 국회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도 뒤늦게 참석해 차량에 탑승했다. 하지만 직전에 본회의장에서 홍 원내대표와 충돌했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홍 원내대표는 시승에 앞서 모두발언을 통해 “중소기업 중심으로 자율주행차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분들이 세계 1위가 돼야 저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 시장에서도 1위를 하고, 우리 경제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기업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정작 더 중요한 건 국회의 역할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기업 ‘KPMG 인터내셔널’이 최근 발간한 ‘2019 자율주행차 준비 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은 25개 대상 국가 가운데 13위로 평가받았다. 항목별로 기반시설(4위)이나 기술·혁신(7위) 수준은 이미 상위권이었다. 반면 정책 및 제도(16위)는 하위권이었다. 입법 절차, 법률 시스템 효율성은 최하위권이었다. 기업들은 잘하고 있지만 정치권이 뒷받침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내년 자율주행차 3단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0~5단계로 구분된 자율주행차 발전 단계 중 3단계는 기본적으로 인공지능(AI)이 운전을 하되 필요시 사람이 운전을 대신하는 단계다. 하지만 여선웅 쏘카 새로운규칙그룹 본부장은 “현행 도로교통법으로는 자율주행차로 실제 도로에서 주행하는 게 불법이다. 이것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윤관석 의원은 정부와 협의를 바탕으로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촉진 및 상용화 기반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지난해 10월 발의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포괄적으로 완화하는 법안이다. 하지만 상정만 됐을 뿐 1~2월 국회가 열리지 않는 바람에 논의가 시작되지 못했다. 자율 주행 중 영상 기기등의 조작을 허용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는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처리돼야 하지만 통과까지는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의원들의 인식 수준이 4차 산업혁명의 발전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날 시승식 행사조차 여야의 정쟁 때문에 2시간 늦춰진 게 국회의 현주소다.
 
의원들은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친다. 하지만 사진찍기용 연탄배달이 아니라, 이같은 핵심 미래산업법안들을 신속히 처리해 기업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토록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민생정치가 아닐까.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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