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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카드 수수료 전쟁’ 뒷짐 진 금융 당국. 소비자로 튄 불똥

중앙일보 2019.03.12 17:35
"불이 번졌는데 정작 불을 낸 쪽은 끌 생각은 안 하고 뒷짐만 진 상황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신용카드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가 비유로 언급한 '불을 낸 쪽'은 금융 당국이다.
 
 
현대·기아차와 카드사들의 수수료 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12일 해결책을 찾았다. 현대차가 지난 11일 신한·삼성·롯데카드에 대해 가맹점 계약을 해지한 지 하루 만이다. 카드사들이 현대차의 조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사실상 '백기'를 든 모양새다. 일단 카드 고객들로선 혼란과 불편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일은 겉으로는 카드업계와 대형 가맹점의 갈등이었지만 속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섣부른 개입이 문제를 자초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연간 매출 500억원 이하의 가맹점에 대해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카드 수수료 종합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중소형 가맹점에서 연간 7800억원의 카드 수수료 절감 효과를 기대했다.
 
 
카드업계는 중소형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깎아준 만큼 대형 가맹점에서 수수료를 올려 받으려 한다. 반면 대형 가맹점은 "우리가 봉이냐"며 반발하는 형국이다.
 
 
일단 현대차와 카드업계의 갈등은 봉합됐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백화점·대형마트·통신사·항공사 등 생활과 밀접한 업종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들도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카드 수수료 인상에 반발하고 있다.
 
 
만일 올해 수수료 협상을 무사히 넘긴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양측이 만족할 만한 합리적인 협상안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3년 뒤 비슷한 갈등이 되풀이될 수 있다. 카드사들은 3년마다 적격 비용을 따져 가맹점의 수수료 인상 여부를 통보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금융 당국은 “가맹점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경우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법에는 신용카드 업자에게 부당하게 낮은 가맹점 수수료율을 정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도대체 얼마의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게 낮은'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카드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들은 '후환'이 두려워 대놓고 얘기하지는 못하지만 당국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의 압박으로 연 매출 50억~500억원 구간의 업체들도 카드 수수료를 인하했다"며 "솔직히 이들을 영세 자영업자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그는 "금융 당국이 자영업자 대책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수수료 인상을 둘러싼 갈등과 소비자 혜택 축소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판단했다"고 꼬집었다.
 
 
앞으로 카드사들은 빠듯해진 살림에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점차 소비자에게 제공했던 무이자 할부나 마일리지 적립, 캐시백 같은 혜택은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자는 '왕'이 아니라 '봉'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염지현 기자 yjh@joo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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