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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로 번진 ‘승리 게이트’…기획사ㆍ방송사에도 책임론

중앙일보 2019.03.12 16:52
2016년 9월 서울 강남에서 성추문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는 가수 정준영. [연합뉴스]

2016년 9월 서울 강남에서 성추문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는 가수 정준영. [연합뉴스]

‘승리 게이트’가 연예계에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클럽 버닝썬을 운영해온 빅뱅의 승리(본명 이승현ㆍ29)가 성매매 알선 혐의로 8일 경찰에 입건된 데 이어 승리가 포함된 모바일 단체 채팅방에서 불법 촬영(몰카) 동영상이 유포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12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해당 영상을 촬영 및 유포한 가수 정준영(30)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피의자로 전환된 정씨가 이날 미국에서 귀국하는 대로 소환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승리는 전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안이 너무 커 연예계 은퇴를 결심했다”고 발표했지만, 의혹의 시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두 사람과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이 줄줄이 호명되고 있다. 하이라이트의 용준형, FT아일랜드의 이홍기는 직접 SNS를 통해 “해당 대화방에 동참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혹은 “걱정말라”고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워너원 출신 강다니엘 역시 법적 대리인을 통해 “승리와 따로 만난 적이 없고 버닝썬에도 간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해외 투자자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빅뱅의 승리가 지난달 경찰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해외 투자자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빅뱅의 승리가 지난달 경찰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이외에도 인터넷상에 실명이 오르내리고 있는 사람이 여럿이다. 단체방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A씨의 소속사는 일체 전화에 응하지 않고 있고, B씨의 소속사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배우 박한별 소속사는 “박한별의 남편(유리홀딩스 대표)이 승리와 사업 파트너로 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인 남편의 사생활이기에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두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서 삭제하는 등 선 긋기에 나선 사람들도 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연예산업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승리가 소속된 그룹 빅뱅은 2006년 데뷔, 정상급 아이돌로 큰 인기를 누리는 한편 지난 13년 동안 다양한 사건·사고에 휘말려왔다. 2011년 지드래곤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기소유예를 받은 데 이어 2016년 탑이 같은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만 2000원을 선고받았다. 앞서 같은 소속사 걸그룹 2NE1의 박봄은 암페타민 82정을 밀수입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입건유예 처분을 받았다.  
 
오는 13일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컴백하는 가수 박봄. [중앙포토]

오는 13일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컴백하는 가수 박봄. [중앙포토]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데도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방관해왔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음악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빅뱅은 자유분방한 아티스트 이미지가 강해서 마약 등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 팀의 이미지나 브랜드 전체가 타격을 입진 않았다”며 “하지만 개인의 일탈과 사회적 범죄는 엄연히 구분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YG엔터테인먼트가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YG는 지난달 27일 경찰에 출석한 승리가 밤샘조사를 받는 동안 서류 파쇄 작업을 진행했다. 승리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클럽 러브시그널의 실소유주가 YG의 양현석ㆍ양민석 대표이고 탈세가 의심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YG는 이런 의혹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YG 주가는 11일 기준 14.1%(6100원) 하락해 시가총액이 전날 7865억원에서 6756억원으로 떨어졌다. 하루 만에 1109억원이 날아간 데 이어 12일엔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 지정됐다. 
 
2016년 데뷔 10주년을 맞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빅뱅 메이드'. [사진 YG엔터테인먼트]

2016년 데뷔 10주년을 맞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빅뱅 메이드'. [사진 YG엔터테인먼트]

이는 그만큼 연예기획사의 펀더멘털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SM이 2012년 국내 연예기획사 중 처음으로 시총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JYP도 1조원을 돌파하면서 산업 규모가 커진 것을 자축했지만, 현재 1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JYP 한 곳뿐이다. YG는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빅뱅이 2017년부터 차례로 입대하면서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이 2858억원으로 전년 3498억원 대비 18.3% 하락했다. 위기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안정적 발전이 힘들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소속사 차원에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보통 기업 위기관리에서 ‘오너리스크’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면, 엔터 기업에서는 ‘인성리스크’가 더 크다”며 “SNS를 통해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인성 교육의 필요성 또한 높아졌다”고 짚었다. 한국 조지메이슨대 이규탁 교수는 “서양에서는 개인의 행동에 대해 소속사에 책임을 묻지 않지만 K팝은 소속사 주도로 아티스트를 집중 관리하며 발전해 왔기 때문에 관리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빅뱅 승리. [사진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빅뱅 승리. [사진 MBC]

방송사의 책임론도 나온다. 승리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등을 통해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제작진이 출연자를 일일이 조사할 수는 없지만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는 만큼 최소한의 검증 장치는 마련해야 한다”며 “시청자와 출연자 간의 관계 맺기가 관찰 예능의 핵심이기 때문에 도덕적 문제가 생기면 그 잣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준영이 고정 출연하는 KBS2 ‘1박2일’, tvN ‘짠내투어’ 도 타격을 입게 됐다. 두 프로그램 모두 정준영의 하차를 결정하고 기존 촬영 분량을 최대한 편집한다는 입장을 12일 밝혔다. KBS 예능국 관계자는 “아침까지 정준영 측과 연락이 닿지 않아 결정이 늦어졌다. 제작진도 전혀 몰랐던 사항”이라며 “15~16일 촬영부터 정준영은 출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준영은 지난 2016년에도 전 여친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피해자의 고소 취하 등 무혐의로 사건이 마무리돼 4개월만에 '1박2일'에 복귀한 바 있다. 이번에 정준영이 미국에서 촬영 도중 귀국하는 tvN ‘현지에서 먹힐까’ 역시 관련 분량을 최대한 편집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12월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1박2일' 출연진.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1박2일' 출연진. [연합뉴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당 출연자를 하차시킬 뿐 재발 방지 대책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짠내투어’의 경우 ‘미투’에 연루된 개그맨 김생민을 시작으로 ‘빚투’ 래퍼 마이크로닷, 이번의 정준영까지 벌써 3명째 하차 수순을 밟았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최근 몇년간 ‘미투’ 사례를 겪으면서 성인지 감수성이 많이 향상됐으나 이번 몰카 사건은 3~4년 전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개별 방송국뿐만 아니라 업계 차원에서도 공동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선전 등 전 세계에서 탄력을 받고 있는 K팝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해외 팬들은 SNS에서 “넌 혼자가 아니야(You are not alone)”이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등 승리를 향한 변함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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