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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소→사형→재산환수→기소, 檢과 전두환의 굴곡진 25년

중앙일보 2019.03.12 12:05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전 재판을 받으러 광주지법에 가던 중 충남 공주 탄천휴게소에 도착,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전 재판을 받으러 광주지법에 가던 중 충남 공주 탄천휴게소에 도착,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픈 역사다. 25년 전 검찰은 ‘12·12 쿠데타와 5.18사건’ 수사에서 그에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면죄부를 줬다. 하지만 4개월 만에 헌법재판소는 "검찰의 결론은 부당하다"고 뒤집었다. 
 

檢, 전두환 전 대통령 ‘5.18’ 명예훼손 단죄 의지
25년 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불가”라며 면죄부
헌재 위헌 결론과 여론 압박에 재수사 후 사형구형
2013년 전두환 재산 추징 검사는 스폰서 검사로 구속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재수사 지시와 여론에 떠밀린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다시 불러들여 구속했고 이듬해 사형을 구형했다. 2013년에는 전두환 일가의 미납 추징금 1600억원의 징수 기한을 4개월 남겨놓고 또다시 여론이 들끓자 수사에 돌입했다.
 
검찰은 위헌 논란에 휩싸인 '전두환 특별법' 통과에 힘입어 그의 장남으로부터 수사 3개월 만에 재산 반납 계획 기자회견을 얻어냈다. 하지만 이후 주임 부장검사가 스폰서검사 혐의로 구속됐다. 
 
11일 검찰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년 만에 다시 법정에서 만났다. 검찰은 이날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보청기를 끼고 아내를 연일 찾는 88세의 전직 대통령이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엄벌을 요구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되기 직전인 1995년 12월 2일 자택 앞 골목에서 검찰 소환 방침을 정면 반박하는 2쪽 분량의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되기 직전인 1995년 12월 2일 자택 앞 골목에서 검찰 소환 방침을 정면 반박하는 2쪽 분량의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조 신부를 자신의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 표현한 혐의다. 사자명예훼손의 법정 최대 형량은 2년이지만 법조계에선 "고의성 입증이 만만치 않아 실형까지 나오긴 어려워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광주가 고향인 검찰 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이번 재판을 바라보며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다시 법정에 세웠지만 그에게 면죄부를 줬던 검사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이 자신의 식구들에게는 전 전 대통령과 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불기소했던 공안검사들은 그 후에도 잘나갔다. 조직 내에서 '어쩔 수 없다'며 용인해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은 1994~5년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불기소 처분하며 12.12 쿠데타 등에 대해 "5공화국이란 새 정권을 창출해 가는 정치적 행위들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검찰의 결정은 헌재와 대법원에서 부정당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장윤석 검사는 그후에도 승승장구하며 춘천지검장, 창원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노무현정부 초기 검찰국장에서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전보가 이뤄졌다. 
 
그는 당시 "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당한 불합리한 인사를 검찰청사에 기록해 역사에 공식 자료로 남기겠다"며 사표를 냈다. 하지만 이듬해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고 19대 국회까지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당시 검찰은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기소유예하며 "역사적 평가는 후세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론분열로 인한 국력 소모 ▶피의자들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 측면 ▶국제경쟁 속 남북통일 대비 등의 이유가 불기소결정문에 담겼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진보와 권력』에서 "당시 검찰의 불기소결정문 어디에도 법률적인 판단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대통령 수준의 정치적 감각만이 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불기소 처분 1년 뒤 자신의 결정을 180도 뒤집고 1996년 8월 5일 전 전 대통령에게는 사형을, 노 전 대통령에게는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과 17년형으로 감형됐고 1997년 12월 특별사면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또다시 법정에 섰다.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기립해 있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또다시 법정에 섰다.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기립해 있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당시 사법고시를 준비 중이었던 김한규 전 서울변협 회장은 "검찰의 논리가 너무 황당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며 "그 후에도 검찰은 입장을 바꾼 점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다. 유쾌하지 않은 역사"라고 했다. 
 
2013년에도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추징금 환수를 위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검찰이 가장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건 수사였다. 국회에선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을 취득한 제3자의 재산까지도 추징토록 하는 특별법을 통과시키며 검찰 수사에 힘을 보탰다. 위헌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 여론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특별법에 힘입어 검찰은 수사 3개월 만에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인 전재국씨에게 1672억원의 미납 추징금 자진 반납 기자회견을 받아냈다. 하지만 당시 수사 팀장이었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3년 뒤 '동창 스폰서 의혹'으로 구속기소돼 징역형을 받으며 의미가 퇴색하기도 했다. '전두환 추징법'은 2015년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돼 헌재에서 심리중이다.
 
검찰은 6년 만에 다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그를 수사해왔던 25년간 여론에 떠밀리고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뒤집는 정치 검찰의 행태와 스폰서 검사라는 검찰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다. 
 
검사 출신의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단죄해야 하지만 검찰 역시도 과거 정치 검찰의 행태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이젠 검찰 스스로 과거와 단절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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