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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만 꿈이 뭐였어?" 언젠가 딸이 물어보면

중앙일보 2019.03.12 11:00
[더,오래]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10)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아이가 5살이 되니 제법 대화가 된다. 오히려 말이 너무 많아서 “그만 좀 조용히 하면 안 되겠니?”하고 다그칠 때도 있을 정도다. 벌써 시간이 흘러 이만큼이나 자라다니…. 그동안 나도 엄마라는 자리에 익숙해진 듯 내려놓은 것도 포기한 것도 있고, 그 와중에 새롭게 얻은 것도 있다. 안정감이라든지 육아에 대한 글 그림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라든지…. 
 
환경에 적응하고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려 애쓰다가도 애나 잘 키우자 싶은 마음 어디쯤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숙제로 한 번쯤은 내가 우리 엄마에게 물었듯 “엄만 젊었을 때 뭐가 되고 싶었어?” “꿈이 뭐였어” 물을 텐데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내 기억으론 친정엄마는 내 질문에 “그땐 먹고살기 바빠 배우지도 못했는데 꿈은 무슨….” 이란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성인이 된 뒤로는 그런 질문이 낯간지러워 딱히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는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그 후에 엄마는 정말 주부학교 같은 곳을 다녀 늦은 졸업장을 땄다. 내가 중학생일 때쯤으로 기억한다.
 
그땐 내가 어려서 그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엄마의 늦은 학업 계획에 아무런 도움도 지지도 주지 못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미안하다. 분명 엄마에겐 나름 큰 용기와 도전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본인을 위해 돈이든 시간이든 쓰지 않는 존재였으니 결정하기까지 꽤 고민하는 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엄마의 꿈은 엄마가 아니었을 텐데,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껏 엄마는 그저 엄마였으니 다른 모습의 엄마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내 딸에게 나도 그렇겠지만.
 
점점 더 엄마라는 자리가 익숙해져간다. “왜 엄마라는 이유로 그래야 해? 왜 이것도 저것도 못해?”라는 생각에서 “아, 그래서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로 생각이 바뀌어 간다. 갑자기 배낭여행을 떠나고 구직을 하고 기술을 배우고 학교에 가는 일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목표를 세우고 가슴 뛰는 상상을 하다 잠드는 날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어느 날 아이가 지금 당장 과거나 앞으로의 나의 꿈에 관해 물으면 우물쭈물 쉽게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꿈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건조하고 지루한 삶인지 그토록 놓고 싶지 않아 했으면서 말이다. 
 
지금의 나는 딱히 꿈이 없다. 결혼 전에도 내가 무엇이 하고 싶었는지 뭘 하던 사람이었는지 잊어간다. 지금은 그저 아이가 아프지 않게 무탈하게 자라면 좋겠고, 신랑이 하는 일이 좀 더 자리를 잡아 가계에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정도의 마음인데 이게 내 꿈일 순 없다.
 
올해도 벌써 3월이 되었다.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봄바람이 분다. 내 꿈을 찾기 딱 좋은 계절이다. 내일 당장 표를 끊고 홀로 쿠바로 떠나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웃고 즐기는 일은 힘들겠지만, 친정엄마가 그랬듯 나를 들여다보고 나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당장 실행하지 못해도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 사람인지, 어떨 때 가장 행복한지, 꿈은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말이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그래서 언제 어디서 갑자기 들어올지 모를 “엄마는 꿈이 뭐야? 난 가수가 될 거야!!” 딸아이 질문에 기다렸단 듯이 “엄마는 말이야”하고 대답해 주어야지. 같이 꿈을 꾸는 사이가 되어야지.
 
장윤정 주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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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장윤정 주부 필진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 마냥 아이같은 막내딸로 30년을 편하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된 미술전공자. 철부지 딸이 엄마가 되는 과정을 그림과 글로 그려본다. 엄마에겐 딸, 딸에겐 엄마인 그 사이 어디쯤에서 기록해보는 삼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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