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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알츠하이머 주장…법조계 “유무죄에 판단에 영향 없어”

중앙일보 2019.03.12 10:56
알츠하이머와 피고인 진술 인정 별개 
알츠하이머 등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에 출석하지 않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 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 전 대통령은 이순자 여사와 함께 피고인석에 섰다. 이 여사는 신뢰관계인 신분으로 나왔다. 통상 신뢰관계인 동석은 심신미약이나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예외적으로 허용해준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피고인 진술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전 전 대통령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가 11일 재판을 받은 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나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가 11일 재판을 받은 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나가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 전 대통령의 알츠하이머로 인한 재판 불출석은 논란거리가 되긴 했으나 유·무죄 판단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알츠하이머 여부가 진술의 법적인 효력을 가르진 않는다. 재판에서 피고인 진술은 법에 보장된 권리 행사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와 피고인 진술 인정 별개
심신미약 아닌 '진실 불명확' 주장
대법, 4살 증언도 증거로 채택
"알츠하이머, 재량 감경 사유"

 
차장검사 출신의 이완규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전 전 대통령이 재판에서 자백을 하거나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은 한다면 알츠하이머라는 이유로 진술을 문제삼을 수 있지만 이 경우는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의 법적 증언능력은 정신질환과 상관없이 인정된다는 의미다. 다만 전 전 대통령이 받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는 유·무죄 판단에 있어서 진술보다 객관적 증거가 중요하다.
 
전두환 측, 심신미약 아닌 '진실 불명확' 주장
전 전 대통령측도 알츠하이머로 인한 심신미약을 방어 논리로 삼지 않고 있다.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서 “고의성을 가지고 허위사실을 기록해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다”며 “과거 국가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에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에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법적으로 정신감정서를 비롯한 의사 소견서는 모두 재판부의 참고자료로만 활용된다. 알츠하이머 소견을 제출했다고 해도 재판부 재량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여상원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알츠하이머를 판단하는데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에 법정에 나와 보여주는 행동이나 진술 태도를 바탕으로 판사 재량껏 판단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4살 아이 증언도 증거로 채택 
해외에서도 알츠하이머와 같은 병을 앓는다고 해서 증언능력이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느 나라든 재판부가 법정 진술을 들어본 뒤 합리적인 측면이 있으면 증언능력을 인정한다”며 “특정 질병이 있다거나 어린아이라는 이유 등으로 증언능력이 없다고 보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모든 사람에게 증언능력이 있다는 일반 규정이 존재한다. 어린아이 등 증언능력이 의심스러울 경우 증인신문에 앞서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고 검사가 들고 있는 물건의 색깔을 맞춰 보게 하거나 숫자를 세어보게 하는 간단한 절차를 거친다. 영국은 증인이 질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하다고 판단될 때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모두에게 증언능력을 인정한다.
 
한국도 아동 증언능력에 관한 판례에 따르면 법원은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증언능력을 폭넓게 인정하는 편이다. 대법원은 만 3년 7개월, 만 4년 6개월여의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 피해자 진술을 증거로 채택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유아 수준의 표현을 사용하였더라도 태도나 내용 등을 종합하면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 재량 의한 감경 사유는 돼" 
전 전 대통령은 알츠하이머와 독감을 이유로 앞서 두 차례 재판에 출석을 미룬 바 있는데 이 같은 건강 문제는 재판부 재량에 의한 양형 감경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재판부가 2017년 4월 펴낸 『전두환 회고록』 작성 당시 전 전 대통령의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고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알츠하이머 등 건강상태를 고려해 실형은 피할 가능성이 크다. 주영글 변호사(법률사무소 해내)는 “고령인데다 치매까지 있다는 사실을 부각하면 구속을 면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자 시민들이 차량 행렬을 막아서고 있다. [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이 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자 시민들이 차량 행렬을 막아서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7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교도소 복무 중 치매가 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환자에게 형벌 이행을 금지하라고 판결했다. 버논 매디슨은 1985년 자신의 여자친구와 경찰을 총으로 살해해 사형 선고를 받고 34년 동안 복역하다가 뇌졸중으로 치매에 걸렸다. 매디슨이 뇌 손상으로 인해 과거 범죄사실과 형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게 되자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제8조(과다한 벌금 및 형벌 금지)에 따라 사형선고 불이행을 결정했다.
 
정진호‧백희연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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