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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인싸] "내가 1년 했으니 아우가 1년" 국회 상임위장 '쪼개기 변칙'

중앙일보 2019.03.12 01:40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지난해 12월 18일 국회에서 아끼던 귀걸이 한 쪽을 잃어버렸습니다. 이학재 의원이 바른미래당 탈당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였습니다. 당시 바른미래당 일부 당원들이 “바른미래당 몫으로 맡은 국회 정보위원장직을 내려놔라”며 기습시위를 벌여 취재진과 당원, 이 의원이 뒤엉키는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이 의원은 자유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정보위원장직을 내려놨습니다. 카메라에 부딪히고 팔에 치이는 아수라장에 제 귀걸이도 사라졌고요.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1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미래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는 이학재 의원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1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미래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는 이학재 의원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국회 상임위원장이 얼마나 ‘핫’한 자리인지 보여준 장면입니다. 국회엔 분야별로 법안을 심사하는 16개 상임위가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상임위에서 합의안을 만들어 본회의에 상정하기 때문에, 상임위 통과가 사실상 법안 통과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이 합의의 중재자가 바로 상임위원장입니다. 각종 현안을 다루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산하 기관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한자리 했다’는 이력으로 남기기에도 쏠쏠한 자리입니다. 원 구성 협상(국회 상임위 배분)을 할 때 위원장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이유입니다.
 
지난 7일 70일 만에 본회의가 열리면서 가장 먼저 결정된 일이 두 상임위의 위원장 교체였습니다. 지난 해 7월 후반기 원 구성 협상 당시 “내년 첫 본회의에서 승계한다”고 ‘임기 쪼개기’를 약속했던 자리입니다.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에서 같은 당 황영철 의원으로, 외교통일위원장은 한국당 강석호 의원에서 같은 당 윤상현 의원으로 8개월 만에 교체됐습니다. 7월부터 국회를 출입한 막내 기자가 당 관계자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 “원래 넘겨주기로 약속했었다. 3선이니까 한 번 할 때가 됐다”고 합니다.
 
그럼 상임위원장의 원래 임기는 얼마나 될까요? 국회법 제41조 2항을 살펴보면 상임위원장의 임기는 2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쪼개기는 변칙인 셈입니다.
 
상임위원장 임기 쪼개기엔 여야가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년 임기를 채우고 나서 기획재정위원장(정성호→이춘석), 행정안전위원장(인재근→전혜숙), 여성가족위원장(전혜숙→인재근) 자리를 바꾸기로 합의한 상태입니다. 한국당도 보건복지위원장(이명수→김세연), 국토교통위원장(박순자→홍문표) 자리 교체가 남아있습니다.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7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외교통일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의 보궐선거 투표결과 윤상현 의원과 황영철 의원이 각각 당선, 특표율이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7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외교통일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의 보궐선거 투표결과 윤상현 의원과 황영철 의원이 각각 당선, 특표율이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이 같은 상임위원장 ‘임기 쪼개기’는 언제부터인가 국회의 새로운 관행으로 굳어졌습니다. 2016년 전반기 원 구성 협상 당시에도 총 7개 위원장 임기가 반씩 쪼개졌습니다. 통상 3선 의원이 하는데, 자리가 한정적이어서 자리다툼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상임위원장 교체대상인 한 의원실 관계자는 “특별한 경우에는 경선으로 한 명을 선출하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사람이 여러 명 있으면 1년씩 나눠 하는게 관례”라고 전했습니다. 때문에 해당 상임위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선수·친소관계 등에 따라 자리가 나눠지기도 합니다. 김학용 환노위원장, 전혜숙 여가위원장, 인재근 행안위원장, 강석호 외통위원장 등 일부 상임위원장은 해당 상임위 활동 이력이 전무합니다.
 
하지만 고작 임기가 1년 밖에 안돼 지속기간이 긴 현안이나 치열한 쟁점법안을 다루는 상황에선 갑자기 위원장이 바뀌어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협상방향이 달라질 우려도 있습니다.  
 
한편 예결위원장에 임명된 황영철 의원은 지난달 열린 2심 재판에서 정치자금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 상실형(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된 상태입니다. 올해 상반기로 예정된 3심에서 의원직이 상실될 가능성이 점쳐지는데도, 약속했던 예결위원장 자리를 넘겨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여당에서는 큰 비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쪼개기’ 관행에 다같이 암묵적으로 동의해왔기 때문일까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자유한국당 황영철 의원이 지난 달 20일 오후 서울고법 춘천재판부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자유한국당 황영철 의원이 지난 달 20일 오후 서울고법 춘천재판부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미국에선 한 번 정해진 상임위원장이 선거 전까지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루는 현안의 연속성을 고려한다는 겁니다. 또 “가장 해당 상임위 경력이 많고, 선수가 가장 높은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는다”고도 합니다. 결국 한국의 ‘임기쪼개기 상임위원장’은 “국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정치적인 거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의원들은 ‘굳이 선거까지 해가며 2년에 위원장을 한 명만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데, 글쎄요, 사이좋은 쪼개기, 저만 불편한가요?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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