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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시의 시대

중앙일보 2019.03.12 00:38 종합 28면 지면보기
시의 시대
-이창기(1959~ )
 
시아침 3/12

시아침 3/12

라면이 끓는 사이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를 꺼낸다. 무정란이다. 껍데기에는 붉은 핏자국과 함께 생산일자가 찍혀 있다. 누군가 그를 낳은 것이다. 비좁은 닭장에 갇혀, 애비도 없이. 그가 누굴 닮았건, 그가 누구이건 인 마이 마인드, 인 마이 하트, 인 마이 소울을 외치면 곧장 가격표가 붙고 유통된다. 소비는 그의 약속된 미래다. 그는 완전한 무엇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날아오르기를 꿈꾸지 않았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거나 누군가를 애끓게 사랑했던 기억도 없다. 그런데 까보면 노른자도 있다. 진짜 같다.
 

부화하지 못하는 무정란은 시답지 않은 시, 시 없는 시에 가깝다. 그것은 누군가에게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악화처럼 함부로 유통된다. 무정란과 유정란이 육안에 분간되지 않듯이 시와 시 아닌 시의 구분도 쉽지 않다. 일회용 시가 허술히 넘쳐나는 세태를 꼬집는 시다. 은연중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기도 하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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