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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한의 ‘전략 게임’과 낭만적 비핵화 신념

중앙일보 2019.03.12 00:35 종합 29면 지면보기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전 국방부 정책실장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전 국방부 정책실장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회의론이 퍼지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2차 북·미 정상의 핵 담판은 실패했다. 비핵화에 대한 기본 정의조차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년 초부터 대화 국면이 조성돼 긴장이 완화된 듯하지만, 위장 평화의 성격이 짙다. 북한 군사위협은 그대로인데 한·미 연합방위태세는 악화일로다.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신 한반도 체제’를 외치며 중재자로서 북·미 비핵화 대화의 완전한 타결 성사를 장담하고 있다.
 

하노이 북·미 비핵화 담판 실패
북한의 전략 게임 플랜 드러나
환상 심어주면서 제재해제 노림수
대화 속 압박 높이는 ‘플랜 B’ 필요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 협력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면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낭만적 신념에 빠진 듯하다. 안타깝지만 북한의 성실한 비핵화 행동이 먼저여야 한다.
 
이제 우리는 북한의 전략적 게임 플랜에 내재한 위험과 함정을 알게 됐다. 북한은 비핵화할 것처럼 환상을 심어주면서 수명을 다한 영변의 ‘미래 핵’ 능력을 쪼개기 식으로 폐기하는 대가로 사실상 전면적 제재 해제를 얻고자 한다. 북한 내 다른 지역의 ‘미래 핵’과 ‘과거 핵’ 협상에서 주한미군 철수 등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상응 조치들을 요구하며 시간을 끌다가 핵 보유의 길을 굳히려는 속셈이다. 하노이에서 이용호 북한 외무상은 제재 해제에 성공한 후에는 주한미군 관련 의제들을 제기할 뜻이 있음을 슬쩍 내비쳤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전·현직 국가정보국장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증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바로 지금이 ‘플랜 B’가 필요한 때다. 플랜 B의 요체는 대화와 제재, 억제와 위협, 비확산 및 대확산이 삼위일체를 이룬 포괄적 접근이 돼야 한다.
 
시론 3/12

시론 3/12

첫째, 대화와 제재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추가적인 경제 제재와 더불어 외교·인권·군사 분야에서 전방위로 압박해야 한다. 이것이 김정은 위원장의 셈법을 바꿀 첩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느긋하게 제재를 유지하면 된다지만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북한은 지금도 쉼 없이 핵 물질을 생산하고 핵무기의 실전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경제 분야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북한은 작년 한 해 동안 중국과의 의류 임가공 무역, 철광석 수출, 중국 단둥 등 해외파견 노동자들의 송금 등을 통해 약 5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이런 경화의 유입 구멍을 막아야 한다. 더욱이 북한 경제가 지금 같은 강도의 제재를 향후 2년 이상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북한 전문가의 전망이 맞는다면 대북 제재 강화 효과는 분명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에게는 1분이라도 귀중하다”고 말한 것이 주목받는 이유다. 아울러 북한 인권 문제도 더는 외면하면 안 된다.
 
둘째, 억제와 위협의 효과를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 자위적 억제 차원에서 한·미 핵 공유체제를 진화시켜야 한다. 한국형 3축 체계(미사일 방어·KAMD, 킬체인·Kill Chain, 대량응징보복·KMPR) 고도화, 억제전략위원회를 비롯한 한·미 의사결정체계 재정비, 미국의 핵 작전 시행 전 한국과 상의 절차 규정, 미국 핵 전략폭격기(B-52, B-2) 엄호 훈련 등을 추진해야 한다. 방어준비 태세는 군사연습·훈련 없이 유지될 수 없다. 한·미 연합연습·훈련을 복원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과 키리졸브·독수리 훈련 등이 줄줄이 중단돼 연합지휘·참모조직과 방위체계가 유명무실해질까 두렵다.
 
‘최후 해법’의 준비도 필요하다. 기본 목적은 북한의 핵 포기를 압박하는 데 있다. 1단계 봉쇄 작전은 2017년 11월 3개 항모전투단의 무력시위 때보다 더 조밀한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2단계 타격작전은 기습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미국은 올해 4분기까지 ‘저위력 열 핵탄두’(W76-2)를 핵잠수함의 트라이던트 미사일에 장착해 운용할 계획이다. 이 신예 무기는 적 중심을 순식간에 외과 수술식으로 파괴하여 적의 효과적 대응과 확전을 억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북한 지도부가 인식하기에 가장 위협적 수단임이 틀림없다.
 
셋째, 비확산 및 대확산 조치의 철저한 이행이다. 북한과의 대화에 한눈파는 동안 핵무기 또는 핵 물질이 제3의 행위자에게 전달되면 재앙이다. 북한의 지상·해상·공중 반출경로 감시, 정보 공유, 차단 작전 등에 집중해야 한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나와 우리만의 가치를 따르는 ‘신념 윤리’와 그 실행 결과에 대한 역사적 ‘책임 윤리’를 변증법적으로 조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미 담판 실패 이후 한국을 보면서 이 명제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전 국방부 정책실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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