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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이젠 헌법재판관 전원을 여성으로!

중앙일보 2019.03.12 00:31 종합 30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9명이다. 이 9명을 전원 여성으로 충원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말했다.  
 

남성은 체감 못하는 불평등과 불안
여성들 눈으로 법·제도를 검증하자

“사람들은 묻는다. 대법원에 여성이 몇 명 있어야 충분하냐고. 난 ‘9명 전원’이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놀란다. 하지만 전원 남성일 때는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긴즈버그의 발상이 실현돼야 할 곳은 한국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나거나 인품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지닌 생활의 감각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대론 못 살겠다’는 생활의 감각들이다.  
 
생활의 감각이 뭐냐고?  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 낙태 처벌 조항을 놓고 열린 공개변론(지난해 5월) 동영상이 있다.
 
“전공의 수련·전문의 연수 과정에 낙태 시술 교육이 없다.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훈련받은 경험들이 없다 보니 의료사고 가능성이 크다. 한 22세 여성은 미숙한 의사의 시술로 자궁을 들어내야 했다. 시술받다가 자궁이 천공돼 장 파열이 된 경우도 있다.”(고경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사)  
 
이 위험천만한 시술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조차 없다. 역시 그놈의 ‘불법’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여성이 이 순간에도 목숨을 걸고 시술대에 오르고, 더 많은 여성이 불안과 공포에 노출돼 있다.
 
또 이런 생활의 감각은 어떠한가. 여성이 클럽에 갔다가 ‘물뽕’(GHB)이란 약물 넣은 위스키를 한잔 마신 뒤 정신을 잃고 성폭행 당한다. 기억은 뭉텅 잘려나갔다. 클럽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뿐인가. 어떤 여성도 불법 촬영, 성추행, 성희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죽하면 그 무섭다는 검사들마저 대상이 될까.
 
지뢰밭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 절박함을, 중년 한국 남성인 나는 알지 못한다. 지금껏 살면서 내게, 혹은 주위 남성에게 이상한 약물을 먹이려는 사람은 없었다. 추행당할까 긴장해본 기억도, 불법 촬영 당할까 신경 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시술대에 오를까 걱정해본 적도, 늦은 밤 발소리에 소름 돋은 적도, 취업이나 인사에서 남자란 이유로 불이익 받은 적도 없다. 내세울 거라곤 군(軍) 경험뿐이지만 그것도 여성 잘못은 아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미세먼지를 마시며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가 전혀 다른 생활의 감각에 갇혀 있다. 이해하려 노력해도 몸으로 아는 것과는 다르다. 아니, 이해한다 말하는 건 위선이다. 나도 가해자 편에서 이익을 봐왔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비유나 과장이 아니다. 나는 여러 연령대에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여성 9명의 눈으로 한국의 법과 제도 전반을 검증하길 희망한다. 국가는 불가침의 인권과 존엄함, 안전을 보장하고 있는가. 평등 원칙은 지켜지고 있는가. 청와대부터 군, 검찰, 경찰까지 정부 조직은 가부장제의 모조품 아닌가.
 
9명이어야 하는 까닭은 위헌 정족수(6명)를 넘어 여성들의 끝장 토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다만 몇 년이라도 그런 과정을 거친다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불안하지 않겠냐고?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가 남성에게 불안한 사회일 리 없다.
 
헌법재판소 1층 로비엔 역대 소장과 재판관 사진이 걸려 있다. 32년간 재판소를 거쳐 간 44명의 얼굴 중 여성은 단둘(전효숙·이정미). 복수의 여성(이선애·이은애)이 근무하는 것도 6개월 전부터다. 내달이면 대통령이 새 재판관 후보자 두 명을 지명한다. 이들부터 여성으로 바꿔나가자.
 
법복 입은 여성들이 차례로 심판정에 들어서는 장면, 그 자체로 세상은 변화할 것이다. 우리가 잃을 것은 억압의 사슬이요, 얻을 것은 평등한 생활의 감각이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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