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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스웨덴 여성, 10명중 8명 일하는데 한국보다 출산율 2배 높은 이유

중앙일보 2019.03.12 00:05 종합 26면 지면보기
한국의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98명으로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하자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사회학과 군나르 안데손 교수는 놀란 토끼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싱가포르·홍콩 같은 도시국가도 아니고 인구 5000만명이 넘는 한국 같은 규모의 국가에서 출산율이 1.0명 이하로 추락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반응했다.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를 출간한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교수(정치학)는 "출산율이 0.98명이란 얘기는 지금 대한민국이 준 전시상황이란 의미"라고 진단했다.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율이 세계 최고 수준(79.8%)인데도 2018년 출산율이 1.76명이나 되는 스웨덴. 반면 여성의 사회참여율은 고작 41.8%이고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0.98명)인 대한민국. 
 스웨덴은 양성평등이 뿌리내려 남자들도 가사를 분담하고 여자들은 아이를 많이 낳으면서도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며 행복하게 산다. 반면 한국에선 일부 젊은 남성들이 "여자들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여성들은 "이런 나라에서는 결혼도 출산도 싫다"며 얼굴을 붉힌다. 극과 극이다.스웨덴과 한국의 이런 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스웨덴 현지에 가서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실천하는 워킹맘들과 '라떼 파파'들을 만나봤다.  

 
워킹맘인 카밀라 부사장이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고 씌인 상자를 들고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워킹맘인 카밀라 부사장이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고 씌인 상자를 들고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가정과 직장에서 워라벨 누린다

노르웨이에 본사를 둔 정보기술(IT) 솔루션 업체(Catalyst one)에서 인적자원 및 기업문화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는 카밀라(47). 10대 아들과 딸을 둔 직장 생활 23년 차 워킹맘이다. 그가 다니는 스웨덴 지사는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선정됐는데 남녀 직원이 각각 15명으로 50대 50 비율을 정확히 맞춰 눈길을 끌었다. 오후 3시쯤 사무실에 찾아갔더니 마침 '피카(Fika) 타임'이었다. 직원들이 커피와 케이크를 다 함께 나눠 먹으면서 대화하는 스웨덴의 독특한 기업 문화다. 기업에 따라 적게는 주 1회, 많게는 매일 2~3회 모인다. 이 업체가 남녀 모두에게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선정된 비결을 물어봤다. "성별이나 종교 등과 무관하게 모든 직원을 소중하게 대한다. 위계질서보다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기업 문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사내에 존칭을 없앴다. 직원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 판단해서 일하고 결과에 책임진다."
 전자기기·가전제품 유통업체(엘기간텐 AB)에서 인사관리를 담당하는 한나(43) 부장은 아들 셋을 둔 18년 차 워킹맘이다. 아이 낳을 때마다 유급 육아 휴직 480일을 주는데 남편이 90일을 쓰지 않으면 없어지다 보니 최대한 찾아 썼다. 막내를 낳은 뒤 다 쓰지 못한 육아 휴직 일수는 여름 휴가 때 쓸 계획이다. 삐삐라는 별명처럼 한나씨는 TV 극 '말괄량이 삐삐'(원제는 ''삐삐 롱 스타킹') 속 주인공처럼 강하고 독립적인 소녀 시절을 보냈다. 한나 부장과 남편의 가사 분담 비율은 6대 4 정도이지만 불만은 없다. 가장 큰 행복의 조건은 가족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스웨덴의 양성평등 점수는 80점, 워라벨 점수는 90점 정도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한나 부장은 워라벨 점수를 90점이라고 자평했다. 별명인 삐삐처럼 포즈를 취했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한나 부장은 워라벨 점수를 90점이라고 자평했다. 별명인 삐삐처럼 포즈를 취했다.

 식품 유통 대기업(Coop)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샤로타(47)는 "스웨덴은 복지 제도가 잘 갖춰져 있지만 그래도 일과 가정을 병행하려면 개인의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경우 근무 시간에는 최대한 몰입해 일의 효율을 높인다. 10대 자녀 둘의 공부 지도는 자신이 맡고 남편은 학교 면담을 맡는 식으로 분담한다. 가사는 남편이 70%를 분담하는데 요리는 남편이, 설거지는 자신이 맡는다. 가사분담 비율이 3대 7인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 부부는 하나의 팀이기 때문에 기계적인 분담보다는 좋은 생활을 함께하는데 의미를 더 둔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가 일과 가정을 잘 병행하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중요하다"면서 "딸(15)과 같이하는 운동 시간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차별도 특혜도 사양하는 여성들

스웨덴은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 천국이고 양성평등 수준도 가장 높은 나라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부가 지난 수십년간 일군 결실이다. 출산·육아·교육 등 단계별로 복지 정책이 촘촘하게 갖춰져 있다. 하지만 정부의 혜택이나 시혜가 전부는 아니다.  

스톡홀름 시내를 순찰하는 여성 기마 경찰관. 스웨덴 여성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장세정 기자

스톡홀름 시내를 순찰하는 여성 기마 경찰관. 스웨덴 여성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장세정 기자

『검은 건반, 흰 건반』을 펴낸 최승현 주스웨덴 대사관 공사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을 밀어 올린 스웨덴 여성들은 가정과 집 밖에서 남자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일하고 책임진다. 여성에 대한 차별도 싫지만, 우대도 싫다고 여긴다"고 강조했다. 최병훈 코트라 스톡홀름 무역관장은 "스웨덴에서는 '나는 여자니까'' '이 건 남자가 할 일'이라는 말이 없을 정도로 차별도 남녀구분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스웨덴에서는 화장실도 남녀 구분 없이 공용이다.

 스톡홀름 시내 중심가에 있는 모닝턴 호텔 앞길을 순찰 중이던 여성 기마 경찰관은 영하 7도의 냉습한 날씨에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입헌군주국인 스웨덴의 왕궁 입구에서 대검을 꽂은 소총을 든 경비병도 여성이었다.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지난해 병역제도가 바뀌면서 스웨덴 여성들도 희망에 따라 규정된 절차를 거쳐 군대에 간다. 평균 10개월간 복무하는데, 남녀 구분없이 생활관을 함께 쓴다.  

 스웨덴의 헬스클럽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체력을 보충해 남자와 대등하게 일하겠다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덴마크에 있는 세계 최대 정자은행(Cryos International)의 주요 고객이 스웨덴 여성이라고 한다. 비혼 여성이 출산하더라도 일반 부부와 동등한 복지 혜택을 주는 데다, 남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엄마가 되려는 여성도 많다는 얘기다.    

 
'라떼 파파'에 이어 요즘엔 '아이폰 파파'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스톡홀름 거리.  장세정 기자

'라떼 파파'에 이어 요즘엔 '아이폰 파파'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스톡홀름 거리. 장세정 기자

아이 돌보고 요리하는 아빠들

라르스 다니엘손 전 주한 스웨덴 대사와 박현정 주한 스웨덴 대사관 공보실장이 함께 쓴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에 등장하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면 스웨덴 남자들의 단면이 엿보인다. 국가 비상사태가 터져 국방부 관계자가 군사령관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아기띠를 매고 아이를 달래던 사령관은 "나는 지금 육아 휴직 중인데 왜 나한테 전화를 한 거야"라며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실제로 스톡홀름을 비롯해 스웨덴의 도시에 가면 '라떼 파샤(Farsa)' 즉 '라떼 파파' 들을 언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른 한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다. 스톡홀름 거리에서 한손에 아이폰을 들고 유모차를 밀고 가는 '아이폰 파파'도 곳곳에서 만났다. 오전 8시 스톡홀름 시내의 칼손 스콜라 초등학교에 가봤더니 아이들을 등교시켜준 뒤 서둘러 직장으로 향하는 아빠들이 유달리 많았다.

스웨덴 이민 2세 커플의 가정. 오후 5시에 퇴근한 아빠가 요리를 맡으니 아내와 딸은 더 행복하다.

스웨덴 이민 2세 커플의 가정. 오후 5시에 퇴근한 아빠가 요리를 맡으니 아내와 딸은 더 행복하다.

 평범한 스웨덴 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스웨덴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현지 문화가 체화된 이민 2세인 차민우(36)-미아 킴(30) 커플이 사는 아파트에 가봤다. 정보기술(IT) 분야와 패션 판매 분야에서 각각 일하는 이들은 내년에 결혼식을 앞둔 삼보(Sambo·동거) 커플이다. 이날 오후 5시에 퇴근한 차씨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세 살 된 딸과 놀아주고 있었다. 그는 "(삼보 커플도 법적으로 보호와 혜택을 받기 때문에) 유치원과 학교가 모두 무료다. 아이 키울 여건이 좋아서 앞으로 1~2명 더 낳아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편의 직장 상사는 "아빠도 육아 휴직을 써야 복직 이후에 직장 일을 더 책임감 있게 잘한다"며 무조건 육아 휴직을 쓰게 했다고 한다. 상사가 직원에게 눈치 주기 바쁜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이들에게 한국과 스웨덴의 양성평등 점수를 매겨보라고 했더니 스웨덴은 70~78점, 한국은 15~30점을 줬다.  
 그렇다면 문화가 다른 한국과 스웨덴 남녀가 만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차창선 재스웨덴 한인 중앙회장은 "한국 남성이 여기 오면 스웨덴 여성이 50%를 책임져주니 한국 남성의 만족도가 높아 잘 지내지만, 반면 한국 여성은 스웨덴 남성이 50%만 책임져주니 오래 못 가는 흥미로운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스웨덴 가정에 입양된 클라라 정(23)은 한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는 "스웨덴보다 한국의 양성평등 상황이 좋지 않아 만약 내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여자로서 힘들었을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도 2명은 낳고 싶지만 한국은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스웨덴 인스티튜트(SI)가 주최한 '스톡홀름 위민 인 테크 콘퍼런스'에 참석한 각국 여성들. 장세정 기자

스웨덴 인스티튜트(SI)가 주최한 '스톡홀름 위민 인 테크 콘퍼런스'에 참석한 각국 여성들. 장세정 기자

 
제도 고치는 스웨덴, 한국은 현금 살포

이정규 주스웨덴 대사는 "2015년 16만4000명의 난민이 한꺼번에 유입되면서 난민에 반대하는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지난해 9월 총선에서 제3당으로 약진했다"며 "스웨덴은 새로운 고민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사실 스웨덴 정부는 난민 문제뿐 아니라 새로운 양성평등 이슈가 제기되면 적극적으로 해결을 모색한다.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을 계기로 스웨덴 정부 산하 스웨덴 인스티튜트(SI)는 '스톡홀름 위민 인 테크(women in tech) 콘퍼런스'를 열었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고 있지만, 기술 기업의 이사회에서 여성이 10%에 불과할 정도로 여성의 진출이 특히 취약하다는 판단에 따라 타개책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스웨덴 왕립공과대학(KTH)은 11~15세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술 축제(Tech festival)를 열어 이공계에 관심과 흥미를 고취하고, 비영리단체인 핑크 프로그래밍은 여성 프로그래머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고 있었다.

스톡홀름대학 안데손 교수는 "한국의 출산율이 1.0명 이하라는 소식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장세정 기자

스톡홀름대학 안데손 교수는 "한국의 출산율이 1.0명 이하라는 소식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장세정 기자

 반면 한국의 현실은 척박하고 암담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현금을 살포하고 있지만, 여성의 마음을 얻지 못해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전쟁고아를 수출하던 한국이 부유해진 지금 출산율이 바닥인데도 여전히 스웨덴으로 갓난아이를 입양 보내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는 라르스 프리스크 스웨덴-한국협회장(예비역 육군 소장)의 말은 폐부를 찔렀다. 신필균 복지국가 여성연대 대표는 "불평등과 불균형을 바로잡는 일이 출산율 올리는 핵심"이라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양성평등 사회문화를 조성하고 노동 조건과 직장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 사회보험청 아케손 페르 박사는 한국에서 일부 남성들이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면서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든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데 대해 "노동시장은 남녀에게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일자리는 늘리면 된다"고 지적했다. 스톡홀름대학 안데손 교수는 "일과 가정 중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사회는 여성의 사회진출도 출산율도 모두 낮을 수밖에 없지만,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두 지표 모두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여성이 일하면 많은 기업이 여성의 다양한 요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도 출산율을 높이려면 현금 나눠주기가 아니라 어린이집·교육 등 인프라를 갖추는데 더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웨덴 아빠들은 육아를 분담한다. 아기띠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스웨덴의 발명품이다.

스웨덴 아빠들은 육아를 분담한다. 아기띠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스웨덴의 발명품이다.

 한국과 스웨덴은 역사·문화·제도가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 사는 곳이다. 이제라도 배울 것은 과감하게 배워서 실천해야 한다. 출산율이 1.0명 밑으로 추락해 소멸 위기에 처한 마당에 더 주저할 시간도 없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스톡홀름에서=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박규민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디지털 영상 편집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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