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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중국식 천하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중앙일보 2019.03.12 00:03 종합 24면 지면보기
중국 일대일로가 던지는 질문
미·중 무역전쟁은 무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4차 산업혁명을 누가 주도할 것이냐 하는 기술 표준 전쟁이요, 글로벌 정세의 주도권을 둘러싼 헤게모니 전쟁의 성격도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중국식 세계화 전략에 대한 미국의 ‘응징’이라는 속성도 있다. 그래서 주목을 받는 게 바로 일대일로의 사상적 바탕인 ‘천하주의(天下主義)’다. 중국의 철학 담론인 천하주의가 요즘 중국 학계의 뜨거운 화제로 등장한 이유다. 논쟁 속으로 들어가 보자.
 

중국의 미래 글로벌 구상 ‘천하주의’
일대일로는 이를 실현할 프로젝트

“2050년 미국 견줄 현대 강국 부상”
미·중 무역전쟁엔 이념 대결 성향

문명우월론, 신식민주의 거센 비판
왕조시대 유물, 모래성 불과 시각도

시진핑이 국가 권력을 장악한 건 2012년 열린 제18차 당대회에서였다. 당 총서기로 오른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소련 공산당 해체의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결론은 부패, 그리고 이념의 동요였다. 집권 이후 줄곧 ‘부패와의 전쟁’을 치른 것도,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당 건설’에 나선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공산주의 이념과 규율을 엄격히 적용함으로써 당의 정치력을 회복하겠다는 뜻이다.
 
시진핑의 또 다른 국가 사업은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다.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위대했던 시기를 복원하겠다’는 국가 비전이었고, 일대일로는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복원하는 새로운 중국식 세계화를 뜻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반부패와 당 건설, 그리고 중국몽과 일대일로. 이들은 서로 뿔뿔이 흩어져 진행되는 듯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철학적 담론으로 모아진다. 학계의 뜨거운 토론 주제로 등장한 ‘천하주의’가 그것이다. 천하주의는 ‘인종 및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는 문화와 가치 체제(a regime of culture and values)’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중국식 코스모폴리타니즘’인 셈이다. 반부패와 당 건설은 이를 위한 내적 역량의 결집 작업이었고, 일대일로는 천하주의의 표현이다. 강했던 한(漢)나라, 융성했던 당(唐)시기를 복원하자는 중국몽은 천하주의의 목표로 해석할 수 있다.
 
2005년 자오팅양(趙汀陽)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연구원이 ‘천하체계’라는 책을 낸 후 지금도 천하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가 심심찮게 열리고 있다. 쩌장(浙江)대학 요수쥔(尤淑君) 교수는 중국몽과 일대일로를 ‘천하질서’의 새로운 형태로 정의한다. 물론 전통적인 ‘천하질서’는 더 이상 현대 국제정치의 형식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일대일로라는 중국식 세계화 구상이 나오면서 이를 떠받치는 사상으로 ‘천하주의’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현실 정치에 뚜렷이 드러난다. 중국의 국가 목표는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100주년에 맞춰져 있다. ‘두 개의 100년(兩個一百年)’으로 표현된다. 그들이 제시하고 있는 2050년 ‘현대화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은 중국이 꿈꾸는 중국식 천하질서의 단면이다. 중국은 요즘 ‘아름다운 생활(美好的生活)’과 ‘인류운명공동체(人類命運共同體)’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매력 국가 만들기’ 작업이다. 현재는 ‘소프트 파워’에서 미국에 ‘비교’가 되지 않지만, 미래 ‘글로벌 이념’을 전유하기 위해 중국은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역전쟁은 그 꿈에 대한 미국의 반격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봐야 정확히 보인다. 전통적으로 ‘중국’이라는 세계는 서양과는 다른 하나의 ‘천하’였다. 지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치체’ 또는 ‘문명체’로 여겨졌다. 중국인들의 의식 구조가 그렇다. 중국은 청나라가 무너지기까지 언제나 자신을 ‘천하’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신해혁명으로 청왕조가 와해되면서 자신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시켜야 했다. 거대한 제국을 국민국가 형태로 급속히 재조정해야 했고, ‘천하’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국민국가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적응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근대화를 수행할 수 있는 단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지식인들은 국민국가 만들기에 나서면서도 ‘천하’라는 전통적 시각을 버리지 않았다. 실제로 쑨원(孫文)의 삼민(三民)주의나 마오쩌둥의 사회주의 혁명 구상에는 천하사상의 영향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강제된 근대’였을 뿐 사고의 뿌리는 ‘천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지금, 그 천하 사상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상당 부분 모호하고 집행과정에서 적지 않게 잡음이 들리고 있지만 천하 논의에는 일대일로가 강력한 물질적 기반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중국 공산당이 꿈꾸는 천하주의를 현대 국제 사회가 납득할 수 있을까. 핵심은 중국식의 코스모폴리타니즘, 즉 천하주의가 21세기에 맞게 ‘재발명’될 수 있느냐에 있다. 중국 문명이 서구의 ‘민주주의’를 뛰어넘거나, 최소한 견줄 수 있는 다른 가치를 제공할 수 없다면 국제 사회는 물론 중국 내부조차 설득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천하주의가 중화민족을 정점으로 한 전통 위계질서 의식을 해소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문명우월론의 각인을 벗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기존의 중화제국 체제의 옛 조공시스템을 훌쩍 넘어서는 규모라 하더라도 그 사상토대는 어디까지나 천하주의적 시각이다. 이는 동아시아 나라들에 특히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둘째, 서구식 식민주의와 어떻게 명확히 구분될 수 있을지도 문제다. 일대일로가 안으로는 불균등을 해소하려는 목적과 결부되어 있다 해도 밖으로는 ‘팽창’의 시도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은 주변국들에 위협이 아닌 협력과 공동발전의 기회라고 강조하지만, 외부에서는 중국의 과잉생산을 해소하려는 목적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최근 제기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인한 일부 국가의 채무 급증은 이 같은 우려를 낳을 만하다.
 
중국의 ‘천하질서’를 대하는 한국인 중 이를 반가워할 사람은 없다. ‘천하질서’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과거의 ‘조공’이고 그 이론을 떠받쳤던 것이 중화주의와 유교의 위계이기에 그렇다. 더구나 사드 이후 완전히 중국에서 돌아선 한국인에게 중국 공산당의 세계 구상은 모래성같이 들리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논의를 무시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 문제는 우리에게 ‘중국의 천하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다. 중국의 21세기 구상인 천하주의의 실체를 똑바로 알아야 한국의 위상에 맞는 백년대계를 짤 것 아닌가.
 
◆조경란
성균관대에서 중국의 사회진화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국가, 유학, 지식인’ 등의 저서가 있다. 2017년 열암철학상을 받았다. 홍콩 중문대학에서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있다. 

  
조경란 베이징대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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