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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전범기업 '미쓰비시' 전철역 생길 뻔 했던 사연

중앙일보 2019.03.11 14:49
Focus 인사이드
 
1967년에 촬영된 항공사진. 1930년대 만들어진 조병창과 동소정 일대의 사택들을 볼 수 있다. 표시한 줄사택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구옥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사진 인천시 지도포털 서비스]

1967년에 촬영된 항공사진. 1930년대 만들어진 조병창과 동소정 일대의 사택들을 볼 수 있다. 표시한 줄사택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구옥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사진 인천시 지도포털 서비스]

 

일제 미쓰미시 군수공장 설치해
해방 후 한자명 '삼릉'으로 불려
삼릉역 추진하다 동수역으로
미군 철수하면 줄사택 보존해야

광역철도는 우리 삶과 떼어놓고 말하기 힘든 인프라다. 그런데 역이 많다 보니 역명과 관련해서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있다. 4호선 ‘신길온천역’이 대표적이다. 당연히 근처에 온천이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온천을 찾아온 이들 때문에 한때 ‘역 주변에 온천이 없다’는 안내문까지 붙었을 정도였다. 이처럼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데는 그만한 사유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잘못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 이름을 고치는데 행정 절차가 있고 비용도 들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두면 위 사례처럼 계속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처음에 역 이름을 지을 때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01년 개통한 인천지하철 1호선의 ‘동수(東樹)역’은 상당히 의의가 큰 역명이라 할 수 있다. 행정구역으로 인천시 부평 2동 부근 이곳은 오랫동안 ‘삼릉’이라 불려서 처음에는 삼릉역으로 예정했었다. 
 
동수역은 지하철 개통 직전에 이름이 변경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옛 이름을 복원한 상당히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 [사진 카카오지도 스트리트뷰]

동수역은 지하철 개통 직전에 이름이 변경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던 옛 이름을 복원한 상당히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 [사진 카카오지도 스트리트뷰]

 
그런데 삼릉은 식민지 잔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름이다. 1930년대 말 일제는 중일전쟁의 배후 기지로 삼기 위해 부평 일대에 조병창이라 불리는 대규모 군수 기지를 만들었다. 일본 본토 이외에 지어진 유일한 군수 공장이었을 만큼 중요한 시설이었다. 세월이 흘러 많은 곳이 택지와 공원 등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국군, 주한미군이 일부 시설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조병창에서도 부평역과 직접 연결되는 가장 좋은 위치에 제강 공장을 운영했던 기업이 최근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나왔지만 이행을 거부하는 전범 기업 ‘미쓰비시(三菱)’ 바로, 삼릉이었다. 당시 많은 한국인이 일자리를 찾아 부평으로 몰려들었는데 부평 도심을 일본인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이들은 주로 미쓰비시 공장이 가까운 동소정(東所井)면 일대의 산기슭에 모여 살았다.
 
개발과 보존을 놓고 논쟁 중인 줄사택. 여전히 거주하는 시민이 있는 곳이지만 그냥 놔두기에 보존 상황이 좋지 않고 주변의 반대도 심하다. [중앙포토]

개발과 보존을 놓고 논쟁 중인 줄사택. 여전히 거주하는 시민이 있는 곳이지만 그냥 놔두기에 보존 상황이 좋지 않고 주변의 반대도 심하다. [중앙포토]

 
이처럼 외지인들이 몰려오면서 고유의 지명인 동소정은 시나브로 사라져 버리고 미쓰비시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해서 삼릉으로 불렸다. 이처럼 잊힌 이름이 될 뻔했던 동소정을 음차한 동수가 지하철 개통 직전에 향토사학자들의 노력으로 역명으로 결정되면서 이제는 오히려 삼릉이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동수역은 역명이 가장 의미 있게 결정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 있는 구옥(舊屋)에 관한 뉴스가 여러 매체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미쓰비시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기거하던 사택이었는데, 쪽방촌처럼 화장실과 세면장을 공용으로 사용하고 간단한 부엌이 연결된 좁은 방이 연이어 붙어있는 구조여서 흔히 줄사택이라 부른다. 이를 일제의 착취 증거로 삼기 위해 보존하자는 의견과 너무 낡아 주변에 악영향을 주니 철거하자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한다는 보도다.
 
조만간 평택으로 이전할 예정인 캠프 마켓. 굴뚝이 있는 건물을 비롯한 많은 시설이 1930~40년대 조병창 당시에 만든 것이다. 이중 하나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처럼 일제 만행의 역사적 증거로 남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앙포토]

조만간 평택으로 이전할 예정인 캠프 마켓. 굴뚝이 있는 건물을 비롯한 많은 시설이 1930~40년대 조병창 당시에 만든 것이다. 이중 하나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처럼 일제 만행의 역사적 증거로 남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앙포토]

 
하지만 이런 논쟁은 어쩌면 버스가 떠난 뒤에 손을 흔드는 것과 같다. 1993년 미쓰비스 공장을 철거하고 공원화 공사를 벌였을 때 일부 건물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처럼 남겨 놓고 이곳에 일제의 침탈과 관련된 증거와 내용을 전시하는 것이 더욱 의의가 더욱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주장은 서대문형무소 대신 서대문형무소에 근무하던 한국인 노무자들의 숙소를 보존하자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달동네 재개발 후 조성된 공원에 세워진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과 그 내부. 줄사택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냥 존속시키기보다 이처럼 형식을 바꾸어 역사를 남기는 방법도 것도 좋다고 생각된다. [중앙포토

달동네 재개발 후 조성된 공원에 세워진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과 그 내부. 줄사택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냥 존속시키기보다 이처럼 형식을 바꾸어 역사를 남기는 방법도 것도 좋다고 생각된다. [중앙포토

 
줄사택이 거주 여건이 열악해서 착취의 증거라고 주장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그런 것이고 이런 조악한 주택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다. 불편하지만 지금도 주민이 거주하고 있을 정도다. 사실 토지와 건물에 대한 권리관계가 복잡하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재건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재개발에 방해가 되니 철거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사실 줄사택을 남겨 놓고 해당 지역의 재개발이 불가능한 구조다.
 
그런데 아직 떠나지 않은 버스가 한 대 남아있다.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미군 기지가 조만간 평택으로 이전한 후 개발될 예정이다. 이곳에 일제가 만든 시설이 아직 남아있으므로 일부를 남겨 줄사택과 관련한 증거와 자료도 함께 보존하면 좋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것이 재개발을 하며 보존 공간을 별도로 만든 인천 동구 송현동의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다. 이런 방식으로 개발과 의의를 함께 되새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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