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유용과 연인' 주장 코치에 '스톡홀름 증후군' 들이댄 檢

중앙일보 2019.03.11 14:29
이선봉 전주지검 군산지청장이 11일 군산지청 대회의실에서 신유용(24)씨가 폭로한 '유도 코치 성폭력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코치 A씨(35)는 이날 구속기소 됐다. 군산=김준희 기자

이선봉 전주지검 군산지청장이 11일 군산지청 대회의실에서 신유용(24)씨가 폭로한 '유도 코치 성폭력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코치 A씨(35)는 이날 구속기소 됐다. 군산=김준희 기자

전직 유도 선수 신유용(24)씨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로 검찰 수사를 받아 온 전 유도부 코치 A씨(35)가 구속기소 됐다. A씨는 끝까지 "연인 사이였다"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절대적 지위를 가진 성인 코치가 미성년 선수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로 결론 냈다. 신씨는 수년 전부터 유도 코치와 동료들에게 "A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했지만, 외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질과 인질범 관계…성폭행 맞다" 구속 기소
유도계 지도자·동료에 피해 호소했지만 외면
檢 "그루밍 성폭력, 재판서 양형 반영할 것"

전주지검 군산지청은 11일 "자신이 지도하던 유도부 제자 신씨를 성폭행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A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11년 7월 고창 영선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신씨(당시 만 16세)에게 강제로 입맞춤하고, 그해 8~9월 자신의 숙소에서 성폭행한 혐의(강간 및 강제추행)다.  
 
A씨는 검찰에서 "첫 키스는 강제로 했지만, 신유용이 내 방에 놀러 오면서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했다. 폭력·협박은 없었다는 취지다. 하지만 검찰은 A씨의 진술을 거짓말로 봤다.  
 
당시 신씨가 합숙 생활을 하던 여자 숙소와 코치 방이 있는 남자 숙소가 200여m 떨어져 있어 청소 시간 등 외에 여성 코치의 허락이 없으면 선수가 자연스럽게 드나들기 어려운 구조라고 검찰 측은 밝혔다. 첫 번째 성폭행 직전 신씨가 코치 방에 들어갈 때 'A씨가 갑자기 창문을 닫고 현관문을 잠갔다'는 건 양측 진술이 일치했다.  
 
앞서 신씨는 지난 1월 14일 한 언론을 통해 "2011년부터 5년간 A씨에게 20여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는데 검찰은 최초 성폭행 1건만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검찰은 "(성폭력으로 볼 만한) 성관계 횟수는 20여 차례로 추정된다"면서도 "첫 번째는 가해자(A씨)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신씨가) 반항한 사실이 뚜렷한데 나머지 부분은 (일시와 장소가) 불분명한 데다 '가해자와 지저분하게 싸우기 싫다'며 신씨 측이 첫 번째 행위만 조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나머지 (성폭력) 부분에 대해서도 양형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신씨 변론을 맡은 이은의(45) 변호사는 "검찰이 기소 범위를 축소한 것은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과 달라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한국에서 법 적용이 갖는 한계를 잘 알기에 검찰과 의논해 범죄로서 성립이 분명한 것들로 집중했다"고 했다. 
 
검찰은 객관적 증거 확보를 위해 수사력을 모았다. 신씨와 A씨를 각각 3차례 조사하고, 유도계 인사 등 14명을 참고인으로 불렀다. 고창 영선고 등에 대한 현장 검증도 했다. 검찰은 A씨와 신씨 등의 디지털 기기 9대를 압수·분석했지만, A씨의 휴대전화와 태블릿 PC에 있는 카카오톡 및 휴대전화 메시지 등은 완전히 삭제된 상태였다. 검찰은 그러나 신씨가 2012~2015년 동료 선수들과 여성 코치 등에게 "A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수차례 호소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초 이 사건은 양측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려 유무죄 판단이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 높았다. 하지만 검찰이 성인 코치와 10대 제자라는 두 사람의 특수 관계에 무게를 두고 이 사건을 '그루밍 성폭력'으로 규정한 게 유무죄를 갈랐다는 분석이다.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검찰은 피의자 및 참고인 조사 과정에서 이 사건을 '스톡홀름 증후군'에 빗댄 것으로 확인됐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공포심 때문에 극한 상황을 만든 인질범에게 인질이 동조하는 현상을 말한다. 검찰은 "(신씨와 A씨 관계는) 은행 강도가 직원을 인질로 잡은 격"이라고 설명했다.
 

이선봉 군산지청장은 "이번 수사를 통해 유도계의 지나친 신체적 체벌, 코치와 유도부원 사이의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체계 및 코치의 절대적 지위로 인한 성폭력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군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