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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96%가 암흑 천지…끝모를 베네수엘라 사태, 7문7답

중앙일보 2019.03.11 11:21
지난 8일 새벽 정전으로 암흑이 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거리를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8일 새벽 정전으로 암흑이 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거리를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암흑 같은 도시, 멈춰버린 교통과 통신망, 전기 공급이 끊겨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전기 끊겨 환자 사망 속출, 식량 찾는 난민행렬
과이도 '국가비상사태 선포'…美, 개입 저울질

 
베네수엘라 정국 불안이 마침내 대규모 민생 파탄으로 이어졌다. 정전 사태가 나흘을 넘기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국가가 사실상 마비 상태지만 양쪽 진영은 서로 상대 책임이라며 극심한 대치 중이다. 베네수엘라 사태의 현상과 원인, 전망을 7문 7답으로 정리했다.
 
Q1. 대규모 정전, 얼마나 심각하길래…
 
AFP통신과 BBC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밤(이하 현지시간) 발생한 정전 사태가 3일째 이어지고 있다. 수도 카라카스를 포함해 전국 23개 주 가운데 22개주가 피해를 입었다. 이틀 뒤인 9일 발생한 2차 정전으로 통신망까지 끊겨 은행 업무나 결제 기능도 마비됐다. 지하철이 중단돼 수천 명의 인파가 거리로 몰려 나왔다. 교통 수단이 없어 장거리를 걸어 이동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베네수엘라 전체의 96%가 암흑이 됐다”고 전했다.
 
인터넷도 완전히 끊겨 시민들의 고립을 악화하고 있다. 유럽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인터넷 감시단체 네트블럭스는 “두 차례에 걸친 이번 정전으로 인해 베네수엘라 전국의 전기 통신망이 거의 전부 붕괴했다”면서 “이는 남미 역사상 최대의 정전 사태”라고 밝혔다. 
7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정전 사태로 대중교통이 마비되자 시민들이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7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정전 사태로 대중교통이 마비되자 시민들이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Q2. 국민들이 목숨까지 위협받는 이유는?
 
가장 큰 위기는 의료 시스템 붕괴다. 병원 전기 부족으로 제때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숨지면서 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CNN은 정전으로 160명의 신장 투석 환자가 목숨을 내놓을 위기에 처했다는 현지 관계자의 트위터 내용을 전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정전으로 투석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 15명이 숨졌으며, 인공호흡기가 작동하지 않아 25세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도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진 환자가 79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베네수엘라의 96%를 암흑으로 만든 이번 정전 사태는 안 그래도 심각한 베네수엘라의 식량난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역 곳곳에서 물류가 정지돼 식료품 배달이 안 되고,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다. 
 
‘석유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이미 유가 하락과 석유 생산량 감소 등으로 수년째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국민 절반 이상이 음식과 물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빈곤 상태에 처한 지 오래다. 식량난 장기화로 지난해 국민의 64%가 평균 11kg의 체중이 감소했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9일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을 마친 후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두로 대통령이 9일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을 마친 후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Q3. 역대 최악 정전사태 왜?
 
정전은 7일 퇴근 시간 무렵 시작됐다. BBC에 따르면 이날 정전은 베네수엘라 전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남부 대형 수력발전소 ‘엘 구리’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했다. 이후 24시간 동안 일부 전력이 복구됐으나, 9일 볼리바르주의 대형 발전소 한 곳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발하면서 다시 악화됐다.  
 
지난 1월 23일 과이도 의장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 반기를 들며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한 후 베네수엘라에서는 매주 양 진영 간 과격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전기가 끊긴 상황에서도 주말인 9~10일 시위는 계속됐다. 양측은 이번 시위에서 서로 정전 사태의 책임을 떠넘기며 상대를 비난 중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미국의 지원을 받은 과이도 의장 세력이 전력 시스템을 공격해 일어났다며 ‘미국 배후설’을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과이도 의장은 9일 반정부 시위에 참석해 “정전 사태는 정부의 부패와 수년 간에 걸친 부실 관리 등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7일 자신의 트위터에 “마두로의 정책은 오직 암흑만 불러온다”며 “음식도, 약품도 없고 이제 전력도 없다. 다음은 마두로가 없어질 것”이라고 썼다.
 
베네수엘라의 정전 사태는 갑작스런 현상은 아니다. BBC에 따르면 2007년 전력망 국유화 이후 투자와 관리 부족으로 나라의 전력 사정은 점차 악화됐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6년 만성적인 전력 부족을 막기 위해 60일 간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전력을 통제한 적이 있다. 이후 정기적으로 전기 공급을 끊고 있다. BBC는 “수력 인프라에 전력을 의존하는 베네수엘라에서 투자 부족이 수십 년 동안 주요 댐들을 손상 시켰으며, 산발적인 정전이 일상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Q4. 생존 위협받는 국민들, 어디로 가나
 
살인적인 물가 상승과 식품·생필품 부족 현상은 나라를 떠나는 엑소더스(대탈출) 행렬로 이어진다. 국제이주기구(IOM)와 유엔난민기구(UNHCR)는 최근 몇 년 사이 베네수엘라를 떠난 국민이 약 34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현 베네수엘라 인구 3277만 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국민의 10% 이상이 이미 나라를 떠난 셈이다.
 
6일 베네수엘라에서 콜롬비아 쿠쿠타로 건너가는 타치라강 에서 자원봉사자가 베네수엘라 어린이를 업어서 강을 건너게 해주고 있다. [AP=연합뉴스]

6일 베네수엘라에서 콜롬비아 쿠쿠타로 건너가는 타치라강 에서 자원봉사자가 베네수엘라 어린이를 업어서 강을 건너게 해주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의 정치 혼란에 정전이 겹쳐 탈출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마두로 정권이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미국 등이 보내온 비상식량, 의약품 등 원조 물품 반입을 막으면서 국민 삶이 더 피폐해졌다. 콜롬비아, 브라질과의 접경 지역에는 연일 베네수엘라를 떠나려는 인파가 몰려들고 있다. 관련 기관들은 올 연말까지 정치·경제적 이유로 “도저히 살 수 없다”며 고국을 떠난 베네수엘라인이 총 5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Q5. 군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정국 안정의 희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국내 정치 갈등이 국제 세력 간 힘겨루기로 비화해 이미 평화적인 사태 해결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이도 의장은 이미 미국과 EU를 비롯한 50여개국에서 베네수엘라의 임시대통령으로 인정받았다. 한국도 과이도 정권을 지지하는 나라 중 하나다. 반면 군부를 쥐고 있는 마두로 대통령은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 
 
향후 사태는 지금까지 마두로 대통령 편에 서 온 베네수엘라 군부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이미 베네수엘라 군 장성들을 대상으로 설득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두로 정부에서 외교차관을 지낸 테미르 포라스는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군부의 이탈로 마두로 정권이 신속히 붕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마두로에 대한 군의 충성도는 여전히 강하다고 주장했다.
 
Q6. 국가비상사태 선포, 누가 왜 했나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9일 집회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9일 집회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쿠데타 세력 선봉에 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11일 긴급 국회를 소집해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요청하기로 했다. 국제 원조를 받아들여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명분에서다. 당장은 원조품 반입이 정말 이뤄질지가 관건이다. 과이도 의장은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 15억 달러 규모의 다국적 원조가 즉시 투입을 대기 중”이라고 주장했다. CNN은 “하지만 과이도 의장은 원조품의 출처와 반입 경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과이도 의장은 또 베네수엘라 헌법 187조를 언급하면서 “적절한 순간에 이 헌법 조항을 발동할 수 있다”는 뜻도 강조했다. 헌법 187조는 국회가 베네수엘라군의 해외 파견 임무와 외국 군대의 국내 임무 수행을 승인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미국 등 서방 군대를 개입시켜 마두로 대통령을 쫓아내고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Q7. 개입 범위 저울질…미국 입장은?
 
노골적으로 ‘마두로 타도’를 외치는 미국은 이미 현 정부의 돈줄을 죄기 위해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기업 PDVSA에 대해 미국 내 자산 동결 및 송금 금지 등의 제재를 가했다. 마두로 정권은 이에 맞서 러시아계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 장기전에 대비한 자금 확보에 나섰다.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10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모멘텀(기회)은 과이도의 편에 넘어왔다고 생각한다”면서 베네수엘라 군부가 과이도 승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마두로가 과이도 체포 명령을 군부에 내리지 않는 이유는, 군부가 그 명령을 어길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게 볼턴이 밝힌 해석이다.
 
이런 가운데 ‘반 마두로’ 선봉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19일 정상회담을 갖고 베네수엘라 사태 해결과 인도적 지원에 대한 공조 방안을 협의한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도 정정 불안과 경제 붕괴로 혼란한 상태에 있는 베네수엘라의 인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11일부터 22일까지 조사단을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이영희·심새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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