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이 꽉 다문 환자에 튜브 넣기…응급의사의 '미션 임파서블'

중앙일보 2019.03.11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15)
한밤중 중환자실에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위험하다. 특히나 경력 많은 의료진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한밤중 중환자실에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위험하다. 특히나 경력 많은 의료진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환자의 인공호흡기 튜브가 빠졌다. 예기치 못한, 하지만 중환자실에서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사고이다. 튜브가 빠지면 숨길이 끊어진다. 순식간에 환자를 잃는다. 촌각을 다투는 비상 상황이다. 하필 새벽 시간이었다. 이렇게 오밤중에 일어난 사고는 더욱 치명적이다. 경험 많은 의사들이 대부분 퇴근하고 없기 때문이다.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직 혼자 힘으로 숨을 쉬지 못하는 환자였다. 이대로면 심장이 멎는 건 시간 문제. 불과 수분 사이에, 환자는 말 그대로 생사의 기로에 섰다. 다행히 담당의는 당황하지 않았다. 기본에 충실했다. 즉시 환기 마스크를 쥐어짰다. 환자의 안색이 돌아왔다. 일단 시간을 버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환기 마스크는 임시방편. 밤새 그걸로 버틸 수는 없었다.
 
담당의는 환자 상태가 안정되자 즉시 기도 삽관을 시도했다. 그게 평소처럼 쉽게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쉽게 생각하고 후두경을 쥐었다. 수백 번 넘게 해 본 능숙한 시술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환자가 입을 꽉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호흡기 치료 과정에서 치아 일부가 빠졌는데, 남은 이와 빠진 이가 퍼즐처럼 맞물려 틈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애당초 후두경을 넣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여러 약을 써봤지만 굳게 닫힌 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담당의 얼굴이 새파래지기 시작했다.
 
새벽 2시였는지 3시였는지,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야심한 시각, 쾅쾅거리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간호사가 내 방문을 거칠게 두드리고 있었다. 당직 근무도 아닌 의사를 밤중에 깨웠다간 욕먹기에 십상이었지만, 그녀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담당의 안색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욕을 먹더라도 일단 환자를 살려야 했다. 그녀의 초조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내 귀를 파고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눈 비빌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중환자실로 뛰쳐나갔다.
 
상황파악은 어렵지 않았다. 몇 마디 설명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상황해결은 쉽지 않았다. 이미 막다른 길에 와있었다. 남은 수가 많지 않았다. 칼로 목 앞부분을 절개하고 기도에 직접 호흡 관을 꽂아 넣는 방법 외엔 없어 보였다. 영화나 드라마에 가끔 등장하는 응급기도절개술이다.
 
수술을 앞둔 의사는 막중한 책임과 부담 앞에 서게 된다. [사진 pixabay]

수술을 앞둔 의사는 막중한 책임과 부담 앞에 서게 된다. [사진 pixabay]

 
평범한 술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어려운 술기도 아니다. 일단 담당의와 간호사를 진정시켰다. 의료진이 당황하면 오히려 손발이 느려진다. 차분히 수술 도구들을 준비시키고, 그사이 나는 환자의 목을 만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새파랗게 질릴 차례였다.
 
환자는 온몸이 퉁퉁 부어있었다. 심장, 신장 등 여기저기 문제가 있어 치료가 쉽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몸 전체에 부종이 심했다. 심지어 목이 짧기까지 했는데, 거기다 붓기까지 심하니 손에 만져지는 구조물이 하나도 없었다. 물렁물렁한 살에 파묻혀 기도가 있을 만한 위치를 가늠할 길이 없었다. 어디로 째고 들어가야 할지 기준을 잡을 수가 없었다. 자신감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간호사가 칼을 건넸지만, 쉽사리 피부를 절개하지 못했다.
 
‘차라리 망치를 가져다 치아를 모두 부순 후에 입으로 기관삽관을 할까?’ 말도 안 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환자 상태가 어려웠다. 섣불리 손을 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괜히 시작했다가 피만 보고 끝날 것만 같았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발 빼면 그만인데, 일단 칼을 대면 그 책임이 온전히 내게 쏟아질 것만 같았다. 왜 그때 시술에 성공하지 못했냐며, 너만 잘했으면 환자가 살 수 있지 않았겠냐며.
 
중환자와 응급환자는 순식간에 나빠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서릿발 칼날 진 절벽에 선다. 그 순간이 언제 어느 때 찾아올지 모르기에 더욱더 두렵다. 제때 손 한번 쓰지 못하면 그대로 환자를 잃는다. 내 능력에 부치는 상황도 많고, 때로는 모험을 해야 하기도 한다. 내기처럼 도박에 임할 때도 생기곤 한다. 판돈은 자그마치 내 환자의 목숨이다. 그게 의사다. 오늘도 내 손엔 21g이라는 묵직한 생명이 실려있다. (다음에 계속)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