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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法석] '몽마르트' 살던 토끼들, 대검찰청 이주한 까닭

중앙일보 2019.03.11 05:00
'야단법석(야단法석)'에서는 법조계의 각종 이슈와 트렌드를 중앙일보 법조팀 기자들의 시각으로 재조명합니다. '야단法석'을 통해 법조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세요.
대검찰청에서 일광욕 즐기는 토끼?!
대검찰청 잔디밭에 토끼 한마리가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기정 기자

대검찰청 잔디밭에 토끼 한마리가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기정 기자

미세먼지 없이 비교적 화창했던 지난달 21일 바람을 쐬러 대검찰청 잔디밭을 거닐다 재밌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귀가 쫑긋 솟은, 누런빛의 토끼가 허연 배를 드러내고 잔디밭에 누워 있었습니다.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마치 일광욕을 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다가가니 사람을 본체만체 겁을 먹지도 않습니다.
 
다시 만난 녀석. 이번엔 땅파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토끼는 땅을 파낸 자리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아늑한 토끼굴을 만든 모양입니다. 열심히 집을 짓고선 뿌듯한지 입구 옆에 앉아 둘러선 구경꾼들을 차례로 훑어봅니다. 
 
토끼 한마리가 대검찰청 잔디밭에서 토끼굴을 파고 있다. 김기정 기자

토끼 한마리가 대검찰청 잔디밭에서 토끼굴을 파고 있다. 김기정 기자

당연하게도 토끼는 대검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출입기자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검찰에 물어보니 대검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는 토끼는 5~6마리 가량 된다고 합니다. 하루는 대검 별관 앞에서 하루는 본관 앞에서, 어떤 날은 아랫집 대법원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 게 목격되기도 합니다.
 
'몽마르트 공원'에서 온 토끼…진짜 고향은?  
대검찰청에 자리 잡은 토끼. 부르면 다가올 정도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 김기정 기자

대검찰청에 자리 잡은 토끼. 부르면 다가올 정도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 김기정 기자

그런데 말입니다. "이 토끼들, 대체 어디서 왔나요?"
 
검찰 관계자는 "몽마르트 공원에서 내려온 아이들"이라고 설명합니다. 몽마르트라. 눈치 빠른 사람은 대검이 있는 서초동 인근의 '서래마을'을 떠올렸을 겁니다. 맞습니다. 몽마르트 공원은 프랑스인들이 많이 사는 서래마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검 청사와는 사이에 울타리를 두고 이웃하고 있죠.
 
서울 서초구 몽마르트 공원에 설치된 '토끼 보호' 표지판. 김기정 기자

서울 서초구 몽마르트 공원에 설치된 '토끼 보호' 표지판. 김기정 기자

저질 체력의 기자가 직접 올라가 봤습니다. 공원에 올라서자 토끼 그림이 그려진 표지판이 반깁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습니다. 뒤편 현수막엔 "공원에 토끼를 유기하는 것은 가족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란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이쯤 되니 대충 그림이 그려집니다. 사람들이 애완용으로 기르던 토끼를 이곳에 놓아준 겁니다. 유기 토끼는 점차 늘었을 겁니다.
 
서울 서초구 몽마르트 공원에 설치된 '토끼 유기 금지' 현수막. 김기정 기자

서울 서초구 몽마르트 공원에 설치된 '토끼 유기 금지' 현수막. 김기정 기자

토끼는 번식력이 강합니다. 더군다나 천적이 없는 도심에선 자칫 방치할 경우 주변 녹지를 황폐화합니다. 이에 서초구청이 토끼를 포획하는 등 개체 수를 줄이려고 나섰으나 동물보호단체가 반대해 서로 절충점을 찾았다고 합니다. 바로 토끼의 중성화입니다.
 
중성화한 토끼의 미간엔 봉숭아 물을 들였습니다. 새로 유기되는 토끼들과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반면 대검에 있는 녀석들은 봉숭아 물이 든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포획 과정에서 몽마르트 공원을 떠나 아예 대검에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기 봉착한 검찰…진심으로 국민에게 다가가야
하얀 토끼가 대검찰청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기정 기자

하얀 토끼가 대검찰청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기정 기자

사람에게 버림받고 몽마르트 공원에서마저 쫓겨난 토끼들이 결국 대검에 보금자리를 꾸렸습니다. 이제보니 참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불쌍한 녀석들을 보던 대검 관계자는 "이곳에서 토끼만큼 마음 편한 녀석도 없을 거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글쎄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이곳에 정착한 토끼들에겐 더 이상의 위협은 없습니다. 열심히 토끼굴을 파면 누군가 와서 도로 막아버리지만, 또 금세 인근에 굴을 파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이는 검찰은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역대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최근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찰개혁에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검찰개혁'이란 기치 아래 개혁 대상이 돼버린 검찰의 목소리는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다 보니 검·경수사권 조정의 일선에 선 검찰 관계자들은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2018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사진 리얼미터]

2018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사진 리얼미터]

물론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만든 데는 검찰의 잘못이 가장 큽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진 않겠습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2018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검찰은 2.0%로 뒤에서 두 번째를 기록했습니다. 지금껏 제기됐던 하명 수사 의혹, 제 식구 감싸기 의혹 등 검찰이 국민 신뢰를 잃을만한 행동은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항상 검찰은 '개혁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엔 '선거구제 개편'을 매개로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과 손을 잡고 '패스트트랙'으로 검찰개혁 법안을 처리할 수도 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돕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억울해만 하지 말고 그간 잘못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검찰의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귀를 기울일 겁니다.
 
대검찰청 본관 앞 잔디밭에서 토끼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기정 기자

대검찰청 본관 앞 잔디밭에서 토끼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기정 기자

마침 반가운 소리도 들립니다. 최근 대검은 민생 수사에 집중하겠다며 '서민 다중피해범죄대응 TF(태스크포스)'를 만들었습니다. '1호 사건'으로 부산의 700억원대 분양사기 사건을 선정하고 피해자의 금전적 회복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도 민생 수사를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 총장은 지난달 19일 대검 간부회의에서 "그간 불가피하게 지연됐던 서민생활침해 범죄에 대한 수사 등 검찰 본연의 업무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검찰의 업무처리가 국민의 근심을 덜고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민생을 강조하고 나선 검찰의 모습이 개혁을 지연하기 위한 일종의 '보여주기'인지, 아니면 국민에게 다가가려는 '진심'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후자이길 바랍니다. 일반 국민들은 '검찰'이란 말만 들어도 무섭습니다. 대검에 보금자리를 만든 토끼처럼 일반 국민에게도 검찰의 문턱이 조금 낮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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