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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의 과학 판도라상자] 소셜미디어 포퓰리즘과 홍역의 부활

중앙일보 2019.03.11 00:37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전 세계 98개 국가에서 홍역이 급증하는 이상현상에 대해 경고했다. 특히 유럽에서는 20년 만에 가장 많은 홍역 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발생 건수가 6만여 건에 이른다. 홍역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면서도 공포의 기억으로 각인된 질병이다. 조선 숙종 33년(1707년) 평안도에서 시작된 홍역은 불과 15일 만에 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보통 우리는 엄청난 고생을 겪은 후에 ‘홍역을 치렀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홍역은 각인된 공포이기도 하다.
 
홍역은 매우 전염력이 높은 질병으로 주로 1~6세 사이의 어린이들이 특히 취약하다. 면역력이 약하거나 영양상태가 나쁜 어린이에게는 청력 손상, 급성 뇌염과 같은 중증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전염력이 높은 질병의 유일한 해결책은 예방접종뿐이다. 1954년 하버드 대학의 존 앤더슨이 홍역 백신을 개발한 이후 1971년 개발된 홍역·이하선염·풍진에 대한 혼합백신인 MMR 백신은 홍역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2010년 미국은 홍역의 박멸을 선언할 만큼 선진국에서는 거의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멸절의 위기에 몰렸던 홍역이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1998년 영국의 의사인 앤드류 웨이크필드가 MMR 백신과 자폐증 사이의 상관관계를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윤리규정 위반과 연구 자체의 오류가 드러나면서 철회되었다. 그런데도 백신과 자폐증의 잘못된 연관성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었고,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특히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백신에 대한 공포를 증폭시키는 플랫폼이 되었다.
 
판도라상자 3/11

판도라상자 3/11

소셜미디어를 통한 왜곡된 정보의 유통과 공포의 확산 이면에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직접 정보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또한 소셜미디어는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를 집중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확증편향을 쉽게 일으킨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소셜미디어는 제도적 권위에 반대하면서 ‘개인의 자유선택권’을 강조하는 포퓰리즘 운동과 연결되기도 한다. 백신의 놀라운 성공은 오히려 제도적 권위의 상징이 되어버리면서 포퓰리즘 운동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 정당과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부는 아동에 대한 의무적 백신접종제도를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예방접종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와 포퓰리즘의 위험한 결합은 결국 홍역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이어졌다. 전근대적 질병인 홍역을 부활시킨 장본인이 인터넷 기술의 발달이라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 홍역 발생 건수는 22만 9000건으로 두 배 정도 증가했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 확산되던 홍역은 한국에 상륙하고 있다. 지난해 홍역 발생 건수는 20건에 불과했지만 올해 이미 77건에 달하고 있다.
 
개인의 선택과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가 형성된 근본 목적은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공동체가 전염병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받기 위해서는 95% 이상의 구성원이 면역력을 획득해야 한다는 ‘집단면역원칙’이 있다. 즉,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다수의 합의가 유지되어야 한다. 다수의 합의 없이 개인의 표현과 선택의 자유는 그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소셜미디어 포퓰리즘은 우리의 다음 세대의 생명을 위협하는 홍역 확산으로 이어질 뿐이다.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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