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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 금리, 안갚으면 엄마까지 협박…불법사금융 빚 독촉 시달리는 52만명

중앙일보 2019.03.11 00:04 종합 12면 지면보기
경기도 시흥시의 공단에서 일하는 김모(34)씨는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겁이 난다. 20만원 선이자를 떼고 30만원을 빌려주는 속칭 ‘50·30 사채’를 쓴 게 화근이었다. 어머니 병원비가 급했던 그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즉시 대출 가능”이라고 광고하는 업체에 연락했다. 다음날 회사 근처에서 만난 사채업자는 일주일 뒤 50만원으로 갚는 조건으로 30만원을 빌려줬다. 처음 몇 번은 김씨가 약속대로 돈을 갚았다.  
 

피해자 직접 빚 독촉서 벗어나게
금융위가 대리인 맡는 방안 추진

사채업자는 대출금을 조금씩 올려줬다. 그러다 연체가 발생하자 업자의 태도가 돌변했다. 10분 단위로 전화와 문자를 쏟아냈다.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전화 공세를 퍼부었다. 김씨가 갚아야 할 돈은 원금과 이자를 합쳐 520만원으로 불어났다. 실제로 빌린 원금은 300만원이 채 안 됐다. 연간으로 환산한 대출 금리는 3000%가 넘었다. 대부업법에 따르면 법정 최고금리(연 24%)를 넘는 대출은 불법이다. 김씨는 “시간이 갈수록 이자는 쌓여가는 데 벗어날 방법을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불법사금융 및 대부업 규모

불법사금융 및 대부업 규모

불법 업자에게 돈을 빌렸다가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불법 사금융 이용자 수는 51만9000명에 달했다. 전체 국민의 100명 중 한 명꼴이다. 현재는 더 많아졌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주희탁 대부금융협회 소비자보호센터장은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연 27.9→24%)되면서 불법 사금융 피해 상담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법으로 금지된 가족에 대한 빚 독촉, 지나치게 잦은 전화, 야간 방문 등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 같은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제도가 있다. 대리인(변호사)을 선임한 채무자에게 직접 전화나 문자 등으로 빚 독촉을 할 수 없게 하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다. 2014년 법 개정으로 관련 제도를 도입했지만 아직 잘 모르거나, 변호사 비용 부담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감독원 등 당국이 대리인으로 나서는 방안도 추진된다. 금융위원회의 ‘2019년 업무계획’에는 “금융 당국이 피해자의 대리인으로서 직접 불법 사금융 업자를 상대해 권리구제를 진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피해자가 금융 당국에 신고하고 대리인 지정을 받는 순간 빚 독촉을 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독촉을 계속하는 업자가 있다면 금융 당국이나 경찰이 추적해 처벌할 수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서민금융포럼에 참석해 “현재 금융 당국은 소극적 역할에 그치고 있다”며 “금융 당국이 직접 구제 절차를 진행하면 피해자에 대한 즉각적인 보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변호사를 무료로 선임해 피해자를 돕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이 대상이다. 박정만 서울금융복지상담 센터장(변호사)은 “최근 3년간 180여 명이 신청했다. 대부분 빚 독촉에 따른 공포나 불안감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컸다”고 말했다.  
 
불법 채권추심에 시달렸던 김모(23)씨도 지난해 이곳에서 채무자 대리인을 지원받았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번 쏟아지던 협박 문자와 전화가 중단됐다”며 “마치 지옥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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