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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통합의 상징, 이제는 분열의 상징…나토 동맹 갈림길

중앙일보 2019.03.10 03:00
Focus 인사이드 
 
한 때 통합의 상징이었던 유럽의 국방과 방위산업이 각국의 정치적 이해와 맞물려 흔들리고 있다. 브렉시트(Brexit)로 불리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나토 회원국들에 대한 국방비 증액 압박이 이제는 유럽 각국의 국방관련 이해충돌로 번지는 양상이다.

하나 되지 못한 유럽군
합쳐지지 못하는 프로그램들
사태를 키우는 정치적 잡음

  
유럽의 공동 안전을 보장하는 집단 안보체제 나토 [사진 나토]

유럽의 공동 안전을 보장하는 집단 안보체제 나토 [사진 나토]

 
오랫동안 EU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유럽의 통합과 공동의 안전을 보장하는 집단안보체제로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나토 회원국들에 대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국방비 증액 압박을 빌미로 일부 유럽 국가들이 유럽 안보를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럽 각국은 냉전 종식 후 대대적인 군비 축소에 들어갔다. 2017년 기준으로 나토 회원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지출하는 곳은 미국, 영국, 폴란드, 그리스, 에스토니아 등 5개국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1.78%, 독일은 1.19%를 기록했고, 일부 국가는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럽에서 나토가 설정한 GDP 대비 2% 국방비를 넘는 국가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진 share.america.gov]

유럽에서 나토가 설정한 GDP 대비 2% 국방비를 넘는 국가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진 share.america.gov]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2017년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에서 29개국 나토 회원국 정상들은 2024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한다는 목표에 합의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나토 정상회담에서 국방비를 GDP의 4%까지 올리라고 요구하는 등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유럽 각국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합병 이후 지속되는 러시아의 위협 때문에 트럼프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나토 회원국들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는 와중에 유럽은 자체적인 통합군 창설에 나서면서 미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를 주도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지켜야 한다면서 유럽군 창설을 주장했다. 2017년 처음 주장할 당시에는 많은 EU 회원국들이 반대했다. 그러나 나토 밖에서의 EU 군사협력에 반대해온 영국이 뜻을 굽히고, 독일이 찬성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2018년 6월 25일, 유럽 개입 구상(EII)에 서명한 9개 국가 장관들 [사진 프랑스 국방부]

2018년 6월 25일, 유럽 개입 구상(EII)에 서명한 9개 국가 장관들 [사진 프랑스 국방부]

 
2018년 11월 7일 파리에서 유럽 개입 이니셔티브(EII)의 첫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유럽군 창설을 위한 첫 걸음이다. 이 회의에는 프랑스 외에 독일·벨기에·영국·덴마크·에스토니아·네덜란드·스페인·포르투갈 등 9개국이 참여했고 핀란드도 곧 합류할 예정이다. 하지만 폴란드는 미국이 유럽의 유일한 안보 보증인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유럽군 창설에 반대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도 유럽에서 나토가 없어도 괜찮다는 인식을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유럽만의 군대는 이전에도 있었다. 1999년 12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EU 정상들은 2003년까지 6만 명 규모의 신속대응군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단일 상비군 체제가 아닌 각 회원국에서 지원하는 병력으로 구성된 형태다. 병력 6만 명, 전투기 400대, 함정 100척 규모로 편성되었다. 2004년 11월에는 브뤼셀에서 신속대응군의 전위대 형식을 띤 소규모 부대인 기동타격대 창설에 합의했다.
  
무기 수출에 까다로운 독일은 영국과도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 문제로 마찰을 겪고 있다. 영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한 타이푼 전투기 [사진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무기 수출에 까다로운 독일은 영국과도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 문제로 마찰을 겪고 있다. 영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한 타이푼 전투기 [사진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유럽군 창설은 유럽의 독자적인 방어 능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러시아의 위협에 핵우산과 많은 군사력을 제공한 미국과의 갈등을 키워 유럽 안보를 오히려 약화시킬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있다. 또한, 합의한 국방비 2%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운 실정에서 억지력을 가진 독자적인 군사력 확보가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각국이 국방비 2% 목표를 달성하려면 경제 성장률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독일이 2024년까지 자체적으로 설정한 GDP 1.5% 국방비 목표도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유럽 각국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오래 전부터 유럽 각국은 한 국가만으로는 개발비를 감당할 수 없어 2개 이상의 나라가 모여 공동개발 형태로 무기를 개발해왔다. C-160 수송기, A400M 수송기, 토네이도 전투기,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FREMM 호위함 등이 2개 국 이상이 함께 개발한 무기들이다.   
 
유럽 7개국이 참여하여 시작되었으나 개발 지연과 도입 연기로 타격을 입은 A400M 수송기 [사진 에어버스]

유럽 7개국이 참여하여 시작되었으나 개발 지연과 도입 연기로 타격을 입은 A400M 수송기 [사진 에어버스]

 
현재 유럽에는 ‘합동무기획득협력기구(OCCAR)’라는 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국제 기구가 있다. OCCAR이 관리하는 무기 공동개발 프로그램은 A400M, 복서 차륜장갑차 등 13가지에 이른다. OCCAR  회원국은 벨기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의 6개국이다.  
 
사업 관리적 성격인 OCCAR보다 더 나아간 협력도 준비되고 있다. 2017년 12월 유럽연합 25개 회원국은 공동 안보·군사체제인 ‘상설 구조적 협력(PESCO)’를 출범시켰다. 이 체제 목적은 유럽이 방위산업 분야의 보호주의를 극복하고 협력하는 것으로 당시에 17개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작년 11월에 17개 사업이 추가되면서 34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기구와 체제가 있지만 무기 공동 개발을 결정하는 것은 각국 정부다. 현재 유럽에서 공동개발을 주도하는 곳은 프랑스와 독일이다. 이 둘은 무인정찰기, 전차, 전투기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 받는 사업은 ‘미래 항공전투시스템(FCAS)’으로 불리는 6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이다. 최근 스페인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참가국 불리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영국이 템페스트라는 독자적인 전투기 개발을 발표하면서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스웨덴 사브가 회사 차원에서 참가를 고려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가 참가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방위산업협회장은 프랑스와 독일이 차세대 전투기를 계획하면서 이탈리아를 참여시키려 한 적이 있는지를 물으면서 이들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영국의 템페스트 전투기 개발 사업에 이탈리아가 참여를 밝혔다 [사진 BAE 시스템즈]

영국의 템페스트 전투기 개발 사업에 이탈리아가 참여를 밝혔다 [사진 BAE 시스템즈]

 
이탈리아는 2019년과 2020년에 5억 유로가 투입되고 2020년 이후에는 매년 10억 유로씩 늘어날 유럽 방위기금이 규모가 큰 독일과 프랑스 회사들이 주도하는 사업에 주로 사용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유럽 방위기금은 최소 2개 유럽연합 회원국에 속한 3개사 이상이 참가하는 프로그램을 지원 대상으로 삼을 계획이다.  
 
유럽에서 진행한 합동 개발 프로그램에서 이탈자가 생기는 것은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이전에는 프로그램의 성격 등에 대한 이견이었다면, 이제는 국가간 정치적 긴장이 원인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과 영국의 브렉시트는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에서의 주도권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두 국가와 충돌하는 나라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최근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양국 정치인들은 유럽으로 들어오려는 이민자들에 대한 책임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탈리아 정치인들이 프랑스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노란 조끼’ 시위를 지지하면서 양국간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탈리아 총리는 유엔 상임이사국 문제로 프랑스를 비난하고 있다. 금년 1월 22일, 프랑스와 독일이 1963년 1월 채택된 엘리제 협정을 대체하면서 외교·국방·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아헨 협정’을 채택했다. 새 협정에는 프랑스가 독일의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탈리아는 개별 국가가 아닌 EU가 새로운 상임이사국이 되어야 한다는 색다른 주장도 하고 있다.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프랑스 나발그룹의 합작 대상이 된 프랑스 생나자르에 있는 아틀랑티크 조선소 [사진 chantiers-atlantique.com]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프랑스 나발그룹의 합작 대상이 된 프랑스 생나자르에 있는 아틀랑티크 조선소 [사진 chantiers-atlantique.com]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레오나르도와 탈레스가 합작한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라는 위성 및 우주사업체라는 성공적인 협력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양국 해군의 FREMM 호위함도 양국 협력의 좋은 모델이다. 그리고 작년 10월에는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프랑스 나발그룹이 해군 사업 협력을 위한 조인트벤처 설립에 서명했다.  
  
그런데도 최근 정치적 긴장은 업계 관계자들이 해군판 에어버스로 불리는 핀칸티에리와 나발그룹의 협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프랑스와 독일도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다. 양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서로 충돌하는 무기 수출 규정이 부각되고 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독일보다 무기 수출에 있어 규제가 덜한 편이다. 이에 비해 독일은 인권 문제가 제기될 경우 신중한 접근을 한다. 양국의 무기 수출 규정이 통일되지 않으면 현재 진행 중인 차세대 전차와 전투기 사업이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유럽 국방과 방위산업의 혼란은 아직 그 결과가 드러나지 않아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유럽의 안보 상황이 세계에 미칠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럽 방위산업이 이런 여러가지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통합의 길을 걷는다면 우리나라 방위산업계는 더 버거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최현호 군사칼럼니스트·밀리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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