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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등장 3주년…AI 바둑은 이미 흔한 수법이 됐다

중앙일보 2019.03.09 08:29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은 AI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무난히 승리할 것이라는 대다수 예상과 달리 이 9단은 1승 4패를 당했다. [사진 구글 딥마인드]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은 AI '알파고'와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무난히 승리할 것이라는 대다수 예상과 달리 이 9단은 1승 4패를 당했다. [사진 구글 딥마인드]

꼭 3년 전인 2016년 3월 9일 전 세계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공포도 느꼈다.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둔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는 AI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최전방에서 AI의 습격을 받은 바둑계는 이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① 정석으로 자리 잡은 AI 바둑
알파고가 처음 공개됐을 때 사람들이 놀란 건 AI의 월등한 실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프로기사들에겐 AI가 바둑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파괴했다는 게 더 큰 충격이었다. 그동안 바둑에는 좋은 수나 나쁜 수에 대한 정형이 존재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이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한 수를 자유롭게 선보였다. 초반부터 3·3에 침입하는 수가 대표적이다.
 
AI가 고정관념을 파괴한 덕분에 경직됐던 바둑이 유연해진 것은 사실이다. 신진서 9단은 "AI가 등장하기 전에는 몇 년 동안 비슷한 포석만 썼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과거보다 더 다양한 포석이 등장했고 바둑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AI의 몇몇 수법이 이미 바둑의 정석으로 자리 잡았다. 초반 3·3 침입이 어느새 프로기사들이 가장 즐겨 쓰는 포석이 된 것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독특했던 AI 특유의 기법이, 사람의 빠른 습득력 때문에 이제는 가장 흔한 수법이 되어가고 있다.
알파고 등장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AI 바둑은 정석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 등장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AI 바둑은 정석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구글 딥마인드]

 
② 바둑 공부의 필수품이 되다
알파고 이전까지 바둑 AI와 프로기사는 4~5점 정도 기력 차가 있었다. 알파고 등장은 정체돼 있던 바둑 AI 개발 경쟁에 불을 지폈고, 그 결과 수준 높은 AI가 대거 출현했다. 알파고는 2017년 5월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 자리를 채울 든든한 후예들이 다량 생산된 것이다. 이는 바둑 AI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누구나 손쉽게 바둑 AI를 접하게 되면서 바둑을 공부하는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바둑책을 보거나 고수에게 지도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AI를 참고서 삼아 혼자서도 바둑을 공부할 수 있게 된 거다. 바둑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AI 프로그램을 빠르게 구동할 수 있는 높은 사양의 컴퓨터가 필수품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중국 랭킹 1위 커제 9단은 "요즘은 대부분 프로기사가 AI로 훈련하기 때문에 만약 AI로 공부하지 않으면 바둑둘 때 크게 손해 볼 수 있다. AI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만 자신의 장점과 바둑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진서 9단 역시 "더는 AI를 무시하거나 등한시하면 바둑을 잘 둘 수 없다. 나는 AI 연구로 특히 포석에서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 또한 복기할 때도 AI는 매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바둑 공부의 필수품이 된 AI. [중앙 포토]

바둑 공부의 필수품이 된 AI. [중앙 포토]

 
③ 상향 평준화된 선수들
프로기사들이 AI로 훈련하면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실력이 상향 평준화됐다는 것이다. 사람보다 월등히 실력이 강한 상대를 스파링 파트너 삼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준선이 올라간 거다. 특히 AI의 장점인 포석과 대세를 보는 감각 등을 닮아가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김채영 5단은 "AI로 공부한 이후 내 실력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AI가 등장한 뒤 전체 기사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됐다"고 했다. 이어 "AI가 대중화되면서 오히려 일류 기사들이 손해를 보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AI 등장 이후 일류 기사 프리미엄이 많이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김채영 5단의 말처럼 커제 9단은 자신이 AI 등장으로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커제 9단은 포석 감각이 좋아 초반부터 앞서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AI 영향으로 대다수 프로기사의 포석이 좋아지면서 차별화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커제 9단은 "요즘은 모든 선수가 AI로 훈련하면서 실력이 다들 강해졌다. 그래서 요즘에는 누구를 상대해도 예전처럼 쉽게 이기기 어려워졌다. 과거보다 세계대회 우승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2017년 5월 알파고와 3번기를 펼친 커제 9단. 그는 3전 3패를 당했다. [사진 구글 딥마인드]

2017년 5월 알파고와 3번기를 펼친 커제 9단. 그는 3전 3패를 당했다. [사진 구글 딥마인드]

 
④ 해설의 답답함을 해소하다
과거 바둑은 아무리 일류 프로기사라 해도 정확한 형세 판단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이 때문에 바둑 해설은 흑백의 유불리를 애매하게 설명하는 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AI는 매수마다 승률을 분석해 보여준다. 이는 해설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다른 스포츠가 실시간 스코어로 승부의 흐름을 보여주듯, 바둑도 실시간 진행 상황을 수치화해 직관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현재는 모든 대국 중계에서 AI 승률 분석이 활용된다. 해설자는 AI 승률을 보면서 형세를 바로 파악해 정밀하게 판도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윤상현 바둑TV PD는 "과거 대국 중계방송은 시청자 입장에서 바둑의 유불리를 바로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답답한 점이었다. 그런데 AI가 그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⑤ 새로운 규칙을 만들다 
AI는 바둑대회 규칙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없었던 휴대전화, IT 기기 반입 금지 같은 엄격한 규제가 생겨났다. 대국 도중 선수가 AI 변화도를 참고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이제 바둑대회에 출전하는 프로기사들은 사전에 휴대전화와 IT 기기를 모두 제출해야 한다. 대국장에 기기를 반입한 것이 적발되면 곧장 반칙패 처리된다.
프로기사들의 고전적인 역할에 대해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중앙 포토]

프로기사들의 고전적인 역할에 대해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중앙 포토]

 
하지만 프로기사의 역할 재정립은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그간 프로기사의 최대 목표는 최고의 실력으로 훌륭한 기보를 남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AI가 등장하면서 프로기사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AI 시대에 프로기사들은 기계와 달리 인간적인 면모를 어필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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