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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쁜 남의 애인…“바람둥이 쇼팽을 어떻게 생각하셔?"

중앙일보 2019.03.08 12:00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14)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의 카바레 포스터(1896. 채색 석판화). [그림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의 카바레 포스터(1896. 채색 석판화). [그림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파리는 화려했다. 그러나 뒷골목은 더럽고 지저분했다. 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이 도시는 자유롭고 무질서했다. 훌륭한 사교 클럽에 아무렇게나 입고 출입하기도 했고, 값싸지만 알찬 것부터 터무니없이 비싼 것까지 음식도 극과 극을 달렸다. 뭘 모르는 시골 청년 쇼팽은 그 모든 것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담벼락마다 성병 치료약 광고 벽지가 붙어있었다. 해 질 무렵이면 도색잡지가 곳곳에 깔렸고 ‘몸으로 자선을 베푸는 친절한 여인’들도 많았다.
 
쇼팽은 ‘금지된 과실’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의 눈길을 끄는 이 모든 것에 사람들은 무관심한 듯 자기 길을 가기에 바빴다. 젊은 청년이 이국적 분위기에 휩쓸려 묘한 느낌이 들 가능성은 높았다. 실제로 파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쇼팽의 마음을 흔든 일이 있었다. 그의 아파트 위층에는 한 젊은 부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매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야 들어왔다.
 
그 부인은 나름 깔끔한 용모에 매력이 있었다. 항상 옷차림이 단정했으므로 위층 여인의 눈에는 쇼팽이 시골 부잣집 자제로 보였을 것이다. 처음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였던 둘은 조금 가까워져서 어느 날은 그녀가 그를 자기 아파트로 초대하였다. 화로가 있는 그녀의 아파트는 따뜻했다. 그녀는 묘한 미소를 보내며 한번 날을 잡고 시간을 정해서 자신의 집을 다시 방문에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쇼팽은 그녀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괜히 그러다 그녀의 남편이 알게 되면 곤란을 겪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한 픽시스(Johan Pixis, 1788-1874)에 얽힌 사건도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픽시스는 쇼팽보다 22살이나 많은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당시 유명한 음악계 인사였다. 그는 쇼팽보다 먼저 파리로 와서 활동하고 있었다. 쇼팽은 빈에서 파리로 오는 길에 슈투트가르트에서 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쇼팽이 파리에 도착하고 얼마 후 그는 파리로 돌아왔고 쇼팽을 다시 만났을 때 큰 호감을 표시했다. 그리고는 자기 아파트로 놀러 오라고 초대를 했다. 재차 초대를 받고서야 쇼팽은 그의 아파트를 찾았다.
 
요한 P 픽시스(Johann Peter Pixis). (장-프랑수아 베르나르(Jean-François Bernard) 그림. 석판화. 프랑스 국립 중앙 도서관 소장). [그림 프랑스 국립 중앙 도서관]

요한 P 픽시스(Johann Peter Pixis). (장-프랑수아 베르나르(Jean-François Bernard) 그림. 석판화. 프랑스 국립 중앙 도서관 소장). [그림 프랑스 국립 중앙 도서관]

 
쇼팽이 픽시스의 아파트를 찾아갔을 때 그에게 문을 열어 준 사람은 뜻밖에 한 아가씨였다. 쇼팽은 그제야 픽시스가 슈투트가르트에서 15세의 아가씨를 소개하며 결혼하려 하는 사이라고 한 것을 기억해 냈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아주 예뻤다. 그 어린 아가씨는 방문객이 귀공자풍의 청년임을 알고 경계를 풀었다. 그녀는 얇은 실크 옷만 걸친 채 밖으로 나왔다.
 
“픽시스 씨는 나갔어요. 괜찮으니 들어와서 좀 앉으세요.” 아가씨는 쇼팽을 안으로 이끌려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도 살짝 가슴이 떨렸다. 둘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픽시스는 금방 돌아올 것이었다. 주인 없는 집에 어린 아가씨와 둘만이 앉아있는 것은 어색할 것 같았고 나이 먹은 픽시스가 질투가 심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쇼팽이었다. 잠깐 고민하다 그는 정중하게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 아가씨는 돌아서는 그를 잡았고 둘은 현관계단에서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때 계단 아래로 픽시스가 들어왔다. 큰 안경 너머로 그가 올려다본 것은 그의 애인에게 한 젊은이가 말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둘을 노려보면서 허겁지겁 뛰어 올라왔다. 가까이 와서는 젊은이가 쇼팽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간단히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그리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 아가씨에게 돌아섰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왜 내가 없는 사이에 젊은 남자를 끌어들였느냐?” 그는 소리치며 독일어로 욕설을 퍼부었다. 쇼팽은 짐짓 무안해서 점잖게 “가벼운 실크 옷만을 걸친 채 밖으로 나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거들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픽시스는 쇼팽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쇼팽에게 혹시 자기가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는 눈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젊은이가 자기 몰래 그 아가씨와 음흉한 짓을 하지는 않았나 의심하는 빛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없는 사이에 다른 남자와 엉뚱한 짓을 벌이는 것을 걱정해서 픽시스는 그녀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집에만 가두다시피 숨겨두고 있었다.
 
쇼팽은 어색한 분위기가 불편해서 다음에 다시 오는 게 낫겠다고 하고는 일어섰다. 픽시스는 그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문지기에게 이 젊은이가 위층에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를 따져 묻는 것이었다. 문지기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그제야 픽시스의 안색은 펴졌다.
 
프란실라 픽시스(Francilla Pixis). 원래 이름은 Franziska Gohringer. 고아였던 그녀를 픽시스가 입양하여 가수로 키웠다. 그녀는 1843년 한 시칠리아 귀족의 아내가 되었고, 두 사람의 아들은 이탈리아 상원의원을 지냈다.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 소장. [그림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Austrian National Library)]

프란실라 픽시스(Francilla Pixis). 원래 이름은 Franziska Gohringer. 고아였던 그녀를 픽시스가 입양하여 가수로 키웠다. 그녀는 1843년 한 시칠리아 귀족의 아내가 되었고, 두 사람의 아들은 이탈리아 상원의원을 지냈다.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 소장. [그림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Austrian National Library)]

 
이후로 픽시스는 출판업자들에게 쇼팽의 재능을 칭찬하며 그를 도우려 하였는데 그것은 물론 쇼팽의 피아노 재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더하여 쇼팽이 자신에게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시켜준 것과 그의 애인이 쇼팽에 대해 좋은 말을 한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픽시스가 쇼팽에게 곡을 헌정한 것은 본 시리즈 13편에서 언급되었다. (아래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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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은 이 두 사건에 대해 절친 티투스에게 길게 얘기했다. 위층의 부인은 ‘잘 생겼다’고 언급했고 픽시스의 애인에 대해서도 ‘매우 예뻤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만약 픽시스가 그 어린 아가씨랑 같이 있는 것을 알았다면 처음 초대받았을 때 바로 갔을 거라고도 말했다. 쇼팽은 티투스에게 물었다. "바람둥이 쇼팽을 어떻게 생각하셔?"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쇼팽이 상드를 만나 교제할 때 그녀가 그에게 놀란 것 중 하나는 쇼팽이 성을 죄악시하여 기피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욕구를 자제하는 그를 보고 처음에는 자기를 존중해서이거나 수줍어서 혹은 당시 그가 약혼했던 여인에 대한 절개의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는 거기에는 희생과 용기 그리고 순결의 정신이 있다고 하여 높이 평가했었다.
 
어느 날 상드가 유혹했을 때 쇼팽은 잠시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스스로 그런 느낌에 빠졌다는 것에 짐짓 얼굴을 붉히며 그는 인간 본성의 원초적인 면을 경멸했다. 나아가 “욕망에 따른 희열이 사랑의 순수한 모습을 더럽힐 수 있다”고 말했다. 상드는 그러한 생각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1833년의 이탈리엥 대로의 모퉁이(A Corner on the Boulevard des Italiens. Francois Courboin 그림. 1898. 미국 브라운 대학교 도서관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1833년의 이탈리엥 대로의 모퉁이(A Corner on the Boulevard des Italiens. Francois Courboin 그림. 1898. 미국 브라운 대학교 도서관 소장). [그림 Wikimedia Commons(Public Domain)]

 
상드는 남녀의 결합을 최고의 형태로 성스럽고 순수하며 또한 헌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에 대한 절개 또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쇼팽의 반응에 ‘무슨 바보 같은 말인가? 도대체 어떤 형편없는 여자가 그에게 육체적 사랑에 대한 그런 한심한 인상을 심어줬을까?’ 하고 개탄했다.
 
사실 쇼팽의 그러한 태도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빈을 떠나기 직전에 생긴 일이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것이 주는 막연한 불안과 조국의 혼란에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을 때였다. 그런 그를 위로하기 위해 노르베르트 쿠멜스키가 그를 거리로 데려나갔다. 쿠멜스키는 빈에서 만난 친구로 그곳을 떠날 때 독일까지 동행한 인물인데 쇼팽보다 8살 위였고 사회 경험도 많았다.
 
쇼팽은 그때 거리의 여인 테레사를 만났다. 그 때문에 그는 병에 걸렸고 그것을 독일에 머물 때 알았다. 파리에 도착했을 때 그 치료약에 대한 광고가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에게 성을 죄악시하고 수치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든, 상드의 표현을 빌리면, ‘형편없는 여자’는 바로 테레사였다. 다음 편은 쇼팽의 세상을 더 크게 열어준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이다.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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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섭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필진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전 음악가 쇼팽. 피아노 선율에 도시적 우수를 세련된 모습으로 담아낸 쇼팽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일생의 연인 상드와 다른 여러 주변 인물에 관련된 일화를 통해 낭만파시대의 여러 단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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