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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영어 9등급 실력으로 어떻게 외국대학 교수 됐을까

중앙일보 2019.03.08 11:00
[더,오래] 이상원의 소소리더십(41)
우리나라는 영어 사교육비 지출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영어 실력은 그에 비해 높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독해 실력이야 중간 정도지만 말하기는 최하위에 속한다. 그래도 영어 조기교육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대개 실용적인 영어보다는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한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
 
학창시절 형편없는 영어 점수로 고생했지만, 느지막이 외국대학교 교수가 된 사람이 있다. 37살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영어 공부를 시작해 5년 만에 태국, 필리핀 등의 대학에서 MBA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처럼 시험성적 때문에 영어 공부를 포기한 보통사람을 위한 영어 콘텐트 보급 운동 차 잠시 귀국한 이승범(47) 필리핀 파운데이션 대학교수를 만나 그 사연과 비결을 들어보았다.
 
37세에 영어공부를 시작해 지금은 외국대학교에서 영어로 강의하는 이승범 교수. [사진 이승범]

37세에 영어공부를 시작해 지금은 외국대학교에서 영어로 강의하는 이승범 교수. [사진 이승범]

 
37살이면 회사 다니다가 영어공부를 시작한 건가요?
네. 32살에 결혼을 하고 4년 남짓 대기업에서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어요. 2009년에 호주의 유명 로스쿨에 입학허가를 받고 그만두기까지요. 경영학 박사학위가 있으니까 통계에 능한 변호사가 되면 유망하겠다는 기대를 했죠.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다면서 어떻게 로스쿨 입학허가를 받았어요?
박사학위와 대기업 근무경험을 어필을 했어요. 입학허가만 해 주면 랭귀지스쿨부터 다니겠다고요. 1년 후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로스쿨은 포기하고 4년 정도 청소 등으로 버티면서 호주대학교에 경영학 교수로 지원했어요. 번번이 영어 때문에 인터뷰에서 탈락했죠.
 
그러다가 어떻게 교수가 된 거죠?
태국 아시아태평양국제대학교(APIU: Asian Pacific International University) 경영학과에서 초빙교수로 MBA 강의를 하게 됐어요. 태국 교수의 아내가 한국인인데 추천해줘서요. 이때 갑자기 영어가 뻥, 말 그대로 뻥! 뚫리더군요. 저도 신기했어요. 바로 얼마 전까지 영어를 못해 일자리도 못 구했는데 어느 순간 눈 떠보니까 외국인들 앞에서 영어로 강의하고 있는 거예요. 자신감이 붙어서인지 제가 생각해도 영어 실력이 쑥쑥 자라나더라고요.
 
태국 APIU 경영대학원(MBA) 수업을 마치고 제자들과. [사진 이승범]

태국 APIU 경영대학원(MBA) 수업을 마치고 제자들과. [사진 이승범]

 
필리핀 대학교에서는 어떻게 강의하게 된 거예요?
태국에서 한 학기 마치고 다른 대학교에 정식교수로 지원하던 중 필리핀 친구네 놀러 갔다가 우연히요. 두마게티라고 휴양지로 유명한 곳인데, 파운데이션 대학교(Foundation University)의 재단 이사장과 총장을 소개받았어요. 저보고 “한국인 중에서 너처럼 영어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우리 학교에서 강의해 줄 수 있느냐”고 제안을 하더군요. 집도 제공해 주고, 다른 교수들보다 월급도 더 주겠다고요. 처음 받는 평가에 얼떨떨했지만 바로 오케이 했죠. 온 가족이 이주해서 지금은 제2의 고향이 됐어요.
 
듣다 보면 원래 공부를 좀 했던 사람 아니냐고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서울의 8학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내신 7등급, 영어는 9등급으로요.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하는 조용한 모범생 스타일이었는데 아무리 공부해도 안 되더라고요. 4년제 대학교에 못 가고 전문대에 진학했지요. 그것도 재수해서요. 이때가 제 인생에서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들 때가 아녔나 싶어요.

전문대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교에 편입했어요. 아주 상위권 대학은 아니었고요. 이후 가천대학교 경영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저 나름대로는 자랑스러운 모교들이지만 객관적으로 상위권은 아니잖아요?
 
스스로 공부를 못했다고 평가하면서 왜 계속 편입, 석사, 박사 과정을 거쳤나요?
뒤늦게 공부에 재미를 붙였어요. 특히 석박사 과정에서 제가 경영학, 통계 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재미있어하는 분야는 집중해 노력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시험점수를 위한 공부가 얼마나 재미없는지, 재미없으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직접 경험했어요. 이런 경험들을 모아서 이번에 『영어는 개소리』라는 책으로 냈지요. 이렇게 재미있고 쉬운 영어를 왜 그렇게 어렵고 비효율적으로 배웠는지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나서요.
 
『영어는 개소리』를 출간하고 한 서점에서 강연과 사인회를 열고 있는 이승범 교수. [사진 이승범]

『영어는 개소리』를 출간하고 한 서점에서 강연과 사인회를 열고 있는 이승범 교수. [사진 이승범]

 
책 제목이 다소 거친데요. 핵심 내용이 뭔가요?
말 그대로 영어는 ‘개소리’와 같다는 것이죠. 개가 ‘멍멍’ 짖나요? 개가 짖는 걸 들어보면 ‘멍멍’ 소리가 안 나지 않나요? ‘왈왈’도 아니고 ‘컹컹’도 아니고 ‘와우와우’도 아니지요. 개소리는 우리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영어도 마찬가지로 우리말 소리로 표현할 수가 없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간의 영어학습법에 ‘개소리’가 많다는 거예요. 영어는 그냥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지 시험점수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거든요. 엉터리 목표에 따라 엉터리 방법으로 배우니 재미도 없고 효과도 안 나오는 것이죠. 한 마디로 그동안의 영어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고 통쾌한 복수를 위해서 제 경험에 느낀 점을 소개한 에세이입니다.
 
죄송하지만, 그냥 영어권 나라에서 살다가 보니 영어 귀와 입이 뚫린 거 아닌가요?
많은 분이 그렇게 물어보세요. 하지만 미국에서 20년, 30년 살았지만 의외로 영어를 잘 못하는 분이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끼리 모여 살아 영어보다 우리말을 더 많이 사용해 그런 거 아니냐고 되묻고는 하죠.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동네에서 오래 살았지만 아주 기초생활영어 말고는 영어를 잘 못하는 분이 많아요.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에게 영어를 배우는 것과 영어권 나라로 조기에 유학을 보내는 것 등이 뜻밖에도 그다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영어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바뀌지 않는 이상 ‘백약이 무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어를 잘하기 위한 비결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신다면요?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참 힘든 일인데요. 점수를 얻기 위한 공부를 멈춰야 합니다. 정부에서도 계속 실용영어 위주로 교육과정을 개편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현실에 적용되기는 참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점수를 얻기 위해 문제를 푸는 영어공부에서 벗어나, 진짜 영어가 필요한 ‘실용적인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말을 떠나 제대로 영어를 이해하는 것이 시작되고 공부가 아닌 연습과 훈련이 가능해집니다.

이를 위해서 저처럼 시험점수 때문에 영어에 흥미를 잃고 실패한 보통사람을 위한 영어보급콘텐트 ‘보글리쉬’를 만들었습니다. 문제의식은 누구나 있는데 적합한 콘텐트가 부족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힘들었거든요.
 
보통 사람이 영어로 글로벌 인재로 거듭날 수 있게 도와주는 ‘보글리쉬’ 보급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승범 교수. [사진 이승범]

보통 사람이 영어로 글로벌 인재로 거듭날 수 있게 도와주는 ‘보글리쉬’ 보급 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승범 교수. [사진 이승범]

 
혹시 ‘보글리쉬’의 효과를 실제로 본 경험사례가 있을까요?
고등학교 때 영어 평균점수가 20점 조금 넘는 정도였고 전문대학교 중퇴했던 반영주(30) 씨가 좋은 예가 되겠네요. 보글리쉬 커뮤니티 초기 멤버가 된 후, 제가 있는 파운데이션 대학교에 다니면서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영어 실력도 거의 완벽해졌습니다. 올해 6월부터는 파운데이션 대학교 경영대학에서 통계학 강의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앞으로 더욱 늘어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필리핀 파운데이션 대학교 학생들과 수업 후 즐거운 한 때. 맨 오른쪽 손짓하고 있는 사람이 콘텐트 커뮤니티의 성공사례 반영주 씨. [사진 이승범]

필리핀 파운데이션 대학교 학생들과 수업 후 즐거운 한 때. 맨 오른쪽 손짓하고 있는 사람이 콘텐트 커뮤니티의 성공사례 반영주 씨. [사진 이승범]

 
앞으로 계획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당분간 학교를 휴직하고 한국과 필리핀, 일본, 라오스 등을 오가며 보글리쉬 콘텐트 보급에 힘쓸 계획입니다. 현지 교민들이 영어를 배우러 원어민들이 강의하는 학원에 가는데 사실 큰 효과를 못 봅니다. 원어민들은 교민들이 왜 영어를 잘 못 하는지 이해를 못 하거든요. 필리핀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보글리쉬 커뮤니티의 경험들을 활용해 보통 사람들이 보다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보통사람을 위한 영어 글로벌프로젝트 ‘보글리쉬’ 커뮤니티 모습(좌)과 필리핀 현지 교민들을 위한 무료 영어교육 봉사 모습(우). [사진 이승범]

보통사람을 위한 영어 글로벌프로젝트 ‘보글리쉬’ 커뮤니티 모습(좌)과 필리핀 현지 교민들을 위한 무료 영어교육 봉사 모습(우). [사진 이승범]

 
이 교수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정리하면서 자료를 찾아보다 깜짝 놀랐다. 개화기 우리 조상은 마음만 먹으면 몇 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영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어학 천재라 불리던 윤치호가 있었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박정양 등으로 대변되는 개화파들 대개가 영어를 금방 배웠다.
 
영어를 못하면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불이익을 받지만, 거꾸로 영어를 잘하면 돈도 벌고 출세도 하고 신분을 바꿀 수도 있는 등 실질적인 필요에서 말하고 듣는 영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당시 외국인들이 “조선인의 외국어 능숙함은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어학자로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감히 따르지 못한다”, “19세의 이 젊은이는 영어의 해석과 회화에 완벽했다” 등의 극찬을 한 것만 봐도 그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일본강점기 외국어 학교령, 경성제대 입학과목 채택, 공무원 시험 등으로 인해 번역, 독해, 점수 등을 위한 교육으로 바뀌면서 우리나라의 영어 수준은 급속도로 떨어져 갔다. 최근 이런 현실을 반성하며 실질적인 영어학습법을 보급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승범 교수 외에도 많다. 제발 모두 좋은 효과를 거두어 영어에 많은 시간, 비용, 에너지를 쏟고도 ‘영어 못하는 나라’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을 깨주길 바란다.
 
이상원 밤비노컴퍼니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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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이상원 중앙일보 사업개발팀장 필진

[이상원의 소소리더십] 인생의 하프타임을 지나며 성공보다 성장이 행복의 열쇠임을 알았다. 소탈한 사람들의 소박한 성공 스토리 속에서 그들의 성장을 이끈 소소한 리더십을 발견해서 알리는 보람을 즐긴다. “애송이(이탈리아어로 ‘밤비노’)들의 성장을 돕는다”라는 비전으로 ‘밤비노컴퍼니’를 운영 중이다. ‘몸을 바꾸려고 했는데 인생이 바뀐’ 성장스토리를 담은 『몸이 전부다』를 출간(2017년)했다. 학교, 군부대, 기업 등에서 ‘성장의 기회와 비결’에 대해 강연을 한다. 성장을 위해서는 양질의 연습을 통한 실력축적과 함께 생각, 말, 행동 등의 좋은 습관으로 키워지는 셀프이미지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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