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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트럼프' 여기자를 수상자 선정했다 취소한 美국무부

중앙일보 2019.03.08 08:00
 핀란드 국영방송 예레 키오스키의 제시카 아로(39)는 2014년 ‘러시아 트롤’에 관한 탐사 보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저명한 여기자다. 트롤(Troll)이란 북유럽 설화에 나오는 악랄하고 욕심 많은 괴물로 온라인에서 러시아를 옹호하고 다른 나라를 비난하는 글을 집중적으로 올리는 사이버전사들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이 보도 덕분에 2016년 핀란드 언론 대상을 탔지만 러시아 트롤들의 표적이 돼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국무부 주최 2019 국제 용기 있는 여성상에
핀란드 아로 기자 선정했다 "실수"라며 철회
FP "트럼프 비판한 아로 SNS 보고 바꾼 것"

핀란드의 저명한 탐사보도 여기자 제시카 아로(Jessikka Aro). [사진 위키피디아]

핀란드의 저명한 탐사보도 여기자 제시카 아로(Jessikka Aro). [사진 위키피디아]

그런 아로를 올 초 미국 국무부는 ‘2019 국제 용기 있는 여성상(International Women of Courage Award)’ 수상자로 선정하고 통보했다. 이 상은 국무부가 2007년 이후 매년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지도력, 용기, 여권 신장 등을 위한 활동을 한 여성에게 수여해 왔다. 3월7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초청하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직접 시상할 거라고도 알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주 뒤 국무부 측은 “선정에 실수가 있었다”면서 아로에게 수상을 취소한다고 알렸다. 권위 있는 국제상에서 좀처럼 드문 해프닝이다. 이 같은 ‘번복 소동’은 실은 국무부 측이 뒤늦게 아로의 소셜미디어에서 ‘반(anti) 트럼프’ 발언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7일 보도했다.
 
해당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이 FP에 전한 바에 따르면 국무부 측은 아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자주 비판해온 사실을 수상자 결정 이후 알게 됐다. 이들은 예상되는 논란을 막고자 그를 수상자 명단에서 빼버리는 쪽을 택했다. 여기에 백악관 혹은 국무부 고위 인사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실무진이 ‘알아서 오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당 소식통은 전했다.    
 
7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2019 국제 용기 있는 여성상 시상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여사. [A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2019 국제 용기 있는 여성상 시상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여사. [AP=연합뉴스]

국무부 측은 FP의 관련 문의에 “단순히 잘못 통보된 것”이라며 “후보와 핀란드 주재 미 대사관 간의 소통에 실수가 있었다.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아로는 수상자로 선정됐다가 취소 당한 것에 대해 “매우 놀랐다”고 FP에 밝혔다.
 
FP는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알아서 오버하는 행태’가 트럼프 행정부 내에 만연해 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을 공격해온 존 브레넌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기밀정보 접근권을 박탈한 바 있다. 이를 비판하는 기고문을 워싱턴포스트(WP)에 실었던 윌리엄 맥레이븐 전 미 합동특수작전사령관도 공개 비판 직후 국방부 자문위원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안티 트럼프' 여기자를 폼페이오 국무부가 '용기 있는 여성'으로 치하할 순 없었을 거란 얘기다.
 
한편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국제 용기 있는 여성상은 로힝야족 변호사로서 평생을 이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바쳐 온 아라칸로힝야국가기구(ARNO) 여성 부문 이사인 방글라데시 출신 라지아 술타나, 미얀마에서 남녀평등 및 원주민 권리를 지지하며 6만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카렌여성기구(KWO) 사무총장 노 크노 포 등 10명이 수상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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