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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연애소설> 불쌍한 누나, 내가 지켜주지 않으면…

중앙일보 2019.03.08 08:00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제24회

"이번 금요일 저녁 마침 옥수동에서 미팅이 하나 있는데, 조인하면 좋을 거 같아서…."
 
7월 초, 회사에서 만난 장 팀장이 이렇게 말했다. kbk방송국 해외마케팅 부장의 집 근처로 약속을 잡았는데, 우리 집과도 멀지 않으니 합류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날까지 계약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가는 게 도움이 된다면 가야지."
"김 팀장도 알아두면 좋을 거야."
 
여전히 날 챙기는 장 팀장
방송국에서 새로 만든 음악프로그램 '울트라 K팝'을 우리 회사가 세계 전역에 공급할 수 있는 계약을 맺는 자리였다. 해외에 수출하면 매출액의 40%를 방송국에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하 kbk방송국을 갑, 코리아 컬쳐를 을로 표기한다.'
계약서에는 여지없이 이런 문구가 들어있었다. 다행히 그 부장은 갑처럼 행세하지는 않았다.
 
"차 부장님, 혹시 한잔 더 하실까요? 사실 제가 술이 좀 부족한 듯해서요. 호호"
 
식사를 겸한 미팅이 끝나자 장 팀장이 간단한 2차를 제안했다. 배시시 웃음을 흘리는 그녀의 제안을 뿌리칠 남자가 몇이나 있을까. 그렇게 맥주 한 잔을 더 하고 저녁 업무 미팅 자리는 파했다. 우리 둘은 근처 실내포차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10시쯤으로 아직 시간은 그리 늦지 않았다. 장 팀장은 딱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병만 마시고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능숙한 솜씨로 폭탄주를 말아 내게 건넸다.
 
"아까 장 팀장이 화장실 갔을 때, 차 부장이장 팀장 결혼했느냐고 묻데. 우리나라 사람들 참 남의 사생활에 관심 많아, 그치?"
"그래? 그 사람이 아직 싱글이거든. ㅎ"
"아, 그렇구나……. 사전에 그 정도는 파악해 두었군."
"그럼, 기본이지."
 
"그 사람, 매너도 좋고 나이도 우리와 비슷해 보이던데. 아니, 방송국 부장이니 우리보단 많겠다."
"아홉 살이나 많거든."
"그렇게 많아? 그 나이까지 왜 싱글일까."
"그런 말 하지마. 우리도 좀 있으면 그런 말 들어."
"그러네, 서른아홉도 벌써 반이나 지나갔으니…."
 
장 팀장은 누나와는 잘 돼 가느냐고 물었다.
"응, 우리 사이는 막 뜨겁고 그렇지는 않아. 초기에 내가 좀 그랬지만 누나가 워낙 차분한 스타일이어서."
"얼마나 된 거야?"
"그러고 보니 곧 1년이네."
 
장서희는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물었다. 내게 사귀자고 한 말은 없었던 얘기라고 했지만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약속한 대로 시킨 술만 마시고 11시쯤 일어났다.
 
"오늘 만난 차 부장, 내일 안부 문자 드려. 알아두면 도움 될 테니까. 굿나잇~~"
 
장 팀장은 택시를 잡고 가까운 우리 집에 먼저 날 내려주고 갔다. 내가 아직 이 회사 신참이긴 하지만 여러모로 챙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누나 아버지의 부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로부터 1주일 뒤 누나의 전화를 받았다. 사인은 폐렴이라고 했다.
 
나는 1시간 일찍 퇴근해 용인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문상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조용한, 아니 썰렁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상주는 한 명, 문상객은 한 명도 없었다. 영정 사진은 누나가 처음 나에게 보여준, 나와 너무 닮았다는 그 사진이었다. 자신이 태어나던 해, 아버지가 40세 때 찍은 그 사진을 확대한 것이어서 윤곽은 흐릿했다.
 
그 사진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아버지를 닮은 외모로 인해 누나가 도서관에서 나란 존재에 대해 먼저 알고 있었다. 그런 분이 이제 고인이 되었고, 그 앞에 딸이 혼자 앉아 있었다. 검정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손으로 누나의 손만 꼭 잡아 주었다. 간단히 식사한 뒤 혼자 멀뚱하니 앉아 있기 뭐해 누나 옆으로 갔다. 그러고 보니 자연스레 상주가 된 느낌이었다.
 
"다른 가족들에겐 연락 안 했어요?"
"....안 했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상갓집에 가서 조화가 수십m 줄지어 있고, 사람들이 북적이면 문상객들은 고인이 잘살다 가셨다고들 한다. 그런 잣대로 보면 누나 아버지의 죽음은 무척 초라했다. 장례식장이 썰렁하면 의미 없이 살았다는 뜻일까. 망자를 찾는 사람이 이렇게 없으면 헛된 죽음일까.
 
"그래도 언니에겐 한번 연락해 보세요."
그런 말을 남기고 장례식장을 나서니 밤 1시쯤이었다.
 
다음날 나는 본부장에게 3일 휴가를 신청했다.
결혼할 여친이 부친상을 당했는데, 가족이 아무도 없어 내가 가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고 둘러댔다.
 
"날은 잡았던 거야?"
"결혼식요? 아버님이 편찮아 아직 못 잡고 있었습니다."
 
"나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야."
휴가계를 내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오후에 첫 문상객이 왔다. 누나는 보자마자 달려나갔다.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누나의 이복언니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이복오빠 둘이 누나를 괴롭힐 때 같은 여자로서 누나의 편이 돼 주었던 그 언니였다.
누나는 나를 언니에게 인사시켜줬다.
“나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이야.”
“김천이라고 합니다. 고향이 아니라 이름입니다.”
“재미있는 분이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처음 뵈어 송구하네요.”
 
마흔 후반의 언니는 단정한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거의 30년 만에 만나는 거라고 했다.
“이런 우리도 가족일까…….”
 
언니의 중얼거림에는 수많은 사연이 녹아 있는 듯했다. 다음날 우리 셋은 화장터를 거쳐 아버지가 요양원에 오기 전까지 혼자 오래 살았던 강원도 홍천 시골 뒷산으로 가서 분골을 뿌렸다. 장례를 다 마치고 나니 오후 4시쯤 됐다. 배도 출출해 식당으로 간 우리는 국밥과 소주를 시켰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아직 두 분 사이를 잘 모르지만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누나 아버지의 죽음은 장 팀장 사이에서 흔들리던 나의 마음을 확 잡아주었다. 불쌍한 누나를 내가 아니면 누가 지켜주랴.
“언니분도 술 석잔 원칙 아세요?”
“석잔? 그게 뭔데요?”
“생전에 아버님이 그렇게 드셨대요. 석 잔을 마신 다음에야 안주 한 점요.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으로 오늘은 그렇게 드시죠. 하하”
 
나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애썼다. 언니는 누나에 비해 술을 잘 먹지 못했다. 빈속에 몇 순배 돌자 취기가 확 올랐다.
“아버님 유언이 뭔지 아세요?”
“유언이 있었어요?”
“누나가 나와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대요.”
 
누나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누나가 마지막으로 뵙고 나올 때 그런 말씀을 했대요.”
누나는 몇 잔을 더 마시더니만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서울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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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심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