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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퍼서 못 쓰겠구려” 자린고비가 아내에게 화를 냈다, 왜?

중앙일보 2019.03.08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28)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냥 세상 가장 안전한 내 침대 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면서 좋아하는 영화나 보는 것, 간단히 밥 차려 먹고 그릇은 뜨거운 물에 불려 놓는다는 아름다운 명목으로 개수통에 담가 둔 채 곧장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 폭 감싸일 때 느끼는 확실한 행복. 요새 사람들이 그렇게도 열심히 추구하는 소확행이란 이런 모습이다.
 
그러려면 큰 거, 많은 거, 대단한 거 필요 없고, 그저 까먹을 귤 한 바구니, 따뜻한 이불만 있으면 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품들도 다 필요 없고, 어차피 읽지도 않을 책들 쌓아놓지 말고 누구에게든 필요한 이에게 주든지 버리든지, 옷도 마찬가지. 삶에서 꼭 필요한 것만 남겨놓고 주변 정리를 확실하게 한 채 자신의 행복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확행이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이 순간에는 오로지 '나의 행복'에 집중하게 된다. [사진 pixabay]

이것이 바로 소확행이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이 순간에는 오로지 '나의 행복'에 집중하게 된다. [사진 pixabay]

 
정리해야 할 주변엔 물건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잘 맞지 않거나 말이 심하게 안 통하여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힘들여 그 관계를 이어가려 애쓰기보다 그저 안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 또한 퍼져 있는 것 같다. 어차피 물건을 많이 사고 사람을 많이 만나려면 그만큼 돈이 드는데, 그런 데 쓸 돈도 여유가 없다. 장기불황, 취업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소확행의 밀물을 끌어당겼을 것이다.
 
천하제일 구두쇠 자린고비
필요 없는 것은 안 쓰는 정도를 넘어서, 정말 필요해 보이는 것조차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온몸을 다해 애썼던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다들 이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자린고비’이다. 자린고비가 대체 어떤 어원을 가지고 만들어진 이름이며 무슨 뜻인지 따지기는 쉽지 않다. 여러 자료에서 다소 불명확한 근거로 이런저런 주장들을 내놓고는 있지만 확정된 내용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구연 자료들에서는 ‘자린꼽재기’, ‘자리꼽재기’, ‘자리껍데기’, ‘진지꼽재기’, ‘자린꼼쟁이’, ‘재령곱재기’, ‘자린곱이’ 등등 발음 나는 대로 편하게 여러 이름이 전승된다. 다만 어감이 뭔가 깍쟁이답고, 대범하기보다 꼬장꼬장한, 염소수염을 하고 깡마른 체구를 각진 중늙은이를 떠올리게 한다.
 
자린고비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조기일 텐데, 아마도 조기는 아마도 가장 비싼 사물이기도 할 것이다. 자린고비는 그 물건이 비싸고 귀한 것이어서 아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장, 된장, 밥풀, 심지어 똥까지 아끼려 드는 이가 자린고비이다. 조기를 매달아 놓고 한 숟갈 밥 먹을 때마다 한 번씩 쳐다보았다는 것 말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자린고비 중에도 유명한 충주 자린고비 이야기이다.
 
조기는 자린고비 이야기의 단골 소재다. 자린고비 이야기에는 조기를 매달아 놓고 한 숟갈 밥 먹을 때마다 한 번씩 쳐다본다는 것 말고도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제작 조혜미]

조기는 자린고비 이야기의 단골 소재다. 자린고비 이야기에는 조기를 매달아 놓고 한 숟갈 밥 먹을 때마다 한 번씩 쳐다본다는 것 말고도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제작 조혜미]

 
자린꼽쟁이가 장독에 빠졌다가 푸르르 날아가는 파리를 보고는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 파리가 발에 남의 간장을 묻혀서는 그냥 갔기 때문이다. 충주에서부터 파리를 쫓아간 자린꼽쟁이는 평창 중나루까지 갔다. 자린꼽쟁이는 한 바위에서 기어코 그 파리를 붙잡아서 몸뚱이에 붙은 간장을 다 빨아먹고 집에 갔다. 그래서 그 바위 이름이 장바위이다.
 
‘지독한 구두쇠’로 이 분을 따를 이가 없을 듯하다. 파리 다리에 묻은 간장을 쫓아 충주에서 평창까지 갔고, 기어이 붙잡아 그 다리와 몸에 묻어 있던 장을 빨아먹고야 집에 갔단다. 이것이 과장의 정도가 가장 극단적인 것이었다면, 한 단계 내려간 자린고비 이야기로는 이런 것도 있다. 이 자료는 서울 이야기인데,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채록된 제목이 <꼽째기네 생선국> 이다.
 
한 동네에 아주 꼽쟁이 영감이 있었는데, 그 부인도 영감 못지않은 꼽쟁이였다. 하루는 부인이 생선을 사려고 보면서 이놈도 집었다가 저놈도 집었다가 이리저리 고르다가는 “아이고 비싸서 못 사겠소.” 하고는 그냥 와버렸다. 그러고는 그 손을 씻은 물로 국을 끓였는데, 영감이 저녁에 국을 먹어 보더니 국에서 웬일로 비린내가 나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그날따라 국 맛이 특별하게 달랐다는 뜻이다.
 
부인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까 생선 장수가 왔을 때 생선 만진 손을 씻은 물로 국을 끓여서 그렇게 맛이 좋게 됐다고. 그랬더니 영감이 “아, 부인. 헤퍼서 못 쓰겠구려.”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되느냐며 화를 내는 영감에게 부인이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했더니 영감은, “아, 그 손을 우물에서 씻었으면 온 동네가 다 잘 먹었을 것을, 그런 법이 어디 있소.” 하는 것이었다.
 
기왕 생선 만진 손을 씻을 거면 우리 집 밥 지을 물에만 씻을 것이 아니라 마을 우물에 가서 씻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온 동네가 다 생선 국물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어찌 그리 혼자 생각만 하느냐는 타박이었다. 그러고 보면 자린고비가 그렇게도 열심히 아낀 것에는 자기 재물을 모을 욕심만 있었던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영화 '페니 핀처'의 주인공 프랑수아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남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갈 정도로 구두쇠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꼽째기네 생선국>의 부부만큼 꼽쟁이일까 싶다. [중앙포토]

영화 '페니 핀처'의 주인공 프랑수아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남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갈 정도로 구두쇠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꼽째기네 생선국>의 부부만큼 꼽쟁이일까 싶다. [중앙포토]

 
자린고비 이야기가 전승된 데에는 물론 그런 극단적인 구두쇠를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이게 조금씩 변화하면서 다른 의미들이 첨가된다. 이제 이렇게 지독히도 아끼며 살던 구두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말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충청북도 음성 지역에서 전해지는 실존 인물 조륵(趙勒, 1649~1714)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조륵은 장독에 앉았던 파리를 우리 집 장 묻혀 간다며 쫓아가고, 부채가 닳을까 봐 벽에 매달아 놓고 그 앞에서 머리만 흔들고, 어쩌다 생긴 조기 한 마리를 보고 밥도둑이 들어왔다며 냉큼 집어 문밖으로 내던지고, 일 년에 딱 한 번 제사 때문에 장만했던 굴비는 천장에 매달아 놓고 식구들에게 두 번 이상 쳐다보면 너무 짜다고 물 먹으라고 했다. 이렇게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아끼고 모으다 보니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자 소문을 듣고 전라도 자린고비가 찾아왔는데, 대체 어느 정도 구두쇠여야 이렇게 큰 부자가 되느냐고 물으니 조륵은 탄금대 구경이나 가자고 하였다. 그러고는 전라도 자린고비에게 강물 쪽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매달리라고 하였다. 전라도 자린고비는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도라도 알려주려나 싶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조륵은 이제 한쪽 팔을 놓으라고 하더니, 좀 있다가 나머지 팔도 놓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전라도 자린고비가 그러면 빠져 죽지 않겠느냐고 소리쳤더니, 조륵은 지금 나뭇가지에 매달렸던 순간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만사에 죽기를 각오하고 실행하면 목적한 일을 달성할 수 있을 거라는 가르침이었다. 이렇게도 지독하게 하니 조정에서는 조륵의 이러한 행동이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보아 암행어사를 보냈다. 소문을 확인하고 실제로 벌할 만한 행동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충북 음성군에 세워진 '자린고비 조륵 선생 유래비'. [사진 권도영]

충북 음성군에 세워진 '자린고비 조륵 선생 유래비'. [사진 권도영]

 
그런데 조륵의 집에 찾아가 며칠 머물다 보니 손님 대접을 극진히 하는 것이었다. 암행어사이니 신분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식사때마다 진수성찬에 술까지 대접하였다. 수소문한 결과, 조륵이 환갑이 되던 해부터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잘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암행어사가 집을 떠나려 하니 조륵은 며칠만 더 있으면 환갑잔치를 하니 그때까지 머물다 가라고 붙잡았다.
 
그러고는 잔칫날 사람들에게, 평생 근검절약하며 재산을 모았는데, 앞으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열심히 살겠다고 선포하였다. 암행어사는 이 일을 조정에 자세하게 고하였고, 임금은 조륵에게 선물을 하사하며 크게 칭찬하였다. 이후 조륵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자인고비(慈仁考碑), 즉 어버이같이 인자한 노인을 칭송하는 의미를 담은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함께 사는 우리 모두를 위한 미니멀리즘
과도한 소비와 소유가 우리를 피곤하게 하기에 그걸 좀 줄여 보자고 미니멀리즘이 운동처럼 번지고 있다. 그런데 좀 이상한 현상이 눈에 띄었다. 없애고 줄이기 위해 그저 버리는 것이었다. 그동안 쌓여 있던 집안 살림살이들, 눈에 좋아 보여 충동적으로 구매했다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물건들, 안 입는 옷들을 몇 상자나 내다 버렸다는 글들이 SNS에서 심심찮게 보였다.
 
안 써서 버리는 것이고, 쓸 만하지만 내겐 필요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면 생산적으로 버릴 수 있는 방법이 많을 텐데 좀 아쉬웠다. 물품을 기증받아 재활용하는 곳도 많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을 위해 마련된 쉼터 등에서는 늘 생필품을 구하느라 애먹는다. 그런 곳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나 혼자 맘 편히 잘살자고 하다 보면 주변을 잊기가 쉽다.
 
홍콩배우 주윤발은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소탈한 삶을 살며 모든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위). 정리의 달인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말한다(아래). 이왕 정리하는 거, 생산적으로 버리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넷플릭스,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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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 쏟아붓는 과잉 에너지를 줄여보고자 내 마음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되레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내 몸과 맘이 편하자고 주변에서는 관심을 거두어 버리면서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다.
 
자린고비도 실은 거기에 동참해주는 식구들이 있었기에 그런 생활이 가능했다. 그것이 식구들에게 가해진 가부장적 폭력에 의한 것은 아니었길 바란다. 우리 옛이야기에는 자린고비뿐만 아니라, 온 식구가 다 함께 노력하여 가난을 극복한 이야기들도 많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천장에 굴비 매달아 놓고 보기만 했다는 이야기는 늘 그 이후를 궁금하게 했었다.
 
그렇게 살아서 결국 행복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이 이야기는 절망적인 가난을 좀 우습게 표현한 것일 뿐인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 뒤에 덧붙는 이야기들을 보면 아마도 이야기의 전승자들은 그렇게 온 식구가 마음을 다해 아끼고 살다 보면 좋은 때가 오기도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때를 맞이하게 되면 반드시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린고비 이야기의 단편들에는 지게 지고 가면서 혹은 소를 몰고 가면서도 일을 하기 위해 지푸라기를 지게나 소 궁둥이에 매달아 놓고 걸어가면서도 노를 꼬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렇게 지독하게 시간도 아낄 줄 아는, 전승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일도 지독히 잘하는’ 인물이 자린고비이다.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그 결과 재물을 얻게 되는 것, 그런데 그 재물을 틀어쥐기보다는, 그쯤 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눈을 돌릴 줄 아는 태도가 자린고비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이 아닌가 한다. 홍콩배우 주윤발도 평소에 지하철 타고 다니고 동네 골목의 단골 만둣집을 즐겨 찾으면서 거의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시대의 자린고비를 그런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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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필진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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