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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보석하며 여론 의식한 법원에..법조계 "보석 더 확대해야"

중앙일보 2019.03.08 06:00
6일 법원으로부터 보석 허가를 받아 조건부 석방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자택에 앞에서 시민단체인 조선의열단 관계자가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법원으로부터 보석 허가를 받아 조건부 석방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자택에 앞에서 시민단체인 조선의열단 관계자가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6일 조건부 보석 허가 결정을 내린 서울고등법원은 이날 다섯 페이지에 달하는 보도자료를 내며 이 전 대통령의 보석 조건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의 재판장인 정준영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자택구금에 상당한 엄격한 보석조건을 붙인 보석 허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법원은 보도자료에 적힌 '자택 구금에 상당한 엄격함'이란 문장에 빨간색으로 강조 표시도 했다. 매주 판사와 검사, 담당 경찰이 모여 이 전 대통령의 보석 조건 점검 회의도 연다고 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보석은 피의자의 권리이고 법률에 따라 허가된 것인데 법원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가운데)이 6일 오후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풀려났다. 지난해 3월 22일 구속된 지 349일 만이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이 차량에 탑승해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 정문을 나서며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가운데)이 6일 오후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풀려났다. 지난해 3월 22일 구속된 지 349일 만이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이 차량에 탑승해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 정문을 나서며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재판장 교체와 증인 불출석으로 이 전 대통령의 재판은 항소심 구속 기한(6개월)인 4월 8일 전 끝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구속기한 만료로 법원은 이 전 대통령을 어쩔 수 없이 풀어줘야 했다. 여기에 법원은 보석금 10억원과 거주지 제한 등 엄격한 조건도 더했지만 여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범죄자에 엄벌을 요구하는 국민 정서가 완고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지만 이번 보석 결정 이후 한국 구속 제도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제95조상 보석은 일부 예외 사례(증거인멸·도주·흉악범 등)가 아닌 이상 허가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피의자의 방어권을 제한하는 구속재판이 남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형사법 전문가인 김정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보석 결정이 불편하더라도 마치 예외적인 것처럼 운영 중인 현행 보석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일반 국민들에게도 보석 제도가 원칙에 따라 구현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보석 허가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8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보석 허가율은 36.3%(2204명)였다. 2008년 이후 법원의 보석 허가율이 점차 낮아지는 경향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피고인이 보석 허가를 기대하지 않아 청구하는 비율 자체가 낮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체 피고인 중 11.4%(6079명)만 보석 신청을 했다. 실제 보석이 허가된 피고인은 3%대에 불과했다.
 
지난 5일 보석 청구가 기각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보석을 기대하지 않아 청구를 꺼렸지만 변호인의 요청에 청구했다고 한다. 
 
1997년 11월 3일 구속 1백 71일만에 법원의 보석허가로 풀려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태운 차량이 3일 사복경찰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서울구기동 자택에 도착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7년 11월 3일 구속 1백 71일만에 법원의 보석허가로 풀려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태운 차량이 3일 사복경찰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서울구기동 자택에 도착하고 있다. [중앙포토]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은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고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니 당연히 청구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했다. 한편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보석 청구조차 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에서 한국의 사법 시스템을 어떻게 바라볼지 우려스러운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가 지난해 말 발표한 '미국 보석 제도의 경제학'에 따르면 미국에서 1999~2009년 사이 보석 청구가 기각된 경우는 대체로 10%대에 불과했다. 
 
지난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저스 연방 판사는 높은 보석금 문제로 보석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발생한다며 샌프란시스코 당국에 보석 제도의 시정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 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선 판사가 보석을 권장하지만 한국에선 보석이 마치 판사의 시혜나 특혜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변호사 시절 한 판사가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보석 청구를 취소하라고 요청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종민 변호사는 "한국의 낮은 보석 허가율에 비해 교정 현실은 너무나 열악하다"며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미결수의 경우 구치소나 교도소가 아닌 전자발찌 등을 채워 자택에 구금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보석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법원이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벌 총수와 정치인 등 막강한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는 권력자들에게 예외적으로 보석을 허용해줬던 법원의 과거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병보석기간 중 거주지 제한 위반 및 허위진단서 의혹이 제기돼 보석이 취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14일 밤 서울 중구 자택에서 나와 남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뉴스1]

병보석기간 중 거주지 제한 위반 및 허위진단서 의혹이 제기돼 보석이 취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14일 밤 서울 중구 자택에서 나와 남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뉴스1]

김정철 변호사는 "아직도 구치소에선 전관 출신의 변호사들이 판사와의 인연을 내세우며 피고인들에게 '보석(保釋) 장사'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인 양홍석 변호사도 "현재 한국의 형사제도 시스템에서 일반 시민들은 제대로 된 수사나 재판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보석 제도 등 피고인의 법적 권리는 주로 권력자들이 누려왔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양 변호사는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측면에서 보석 제도가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정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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