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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봉사활동 이어온 77세 이발사 “아직 깨딱 읍써~”

중앙일보 2019.03.08 06:00 종합 18면 지면보기
가난했던 시절 열여덟 소년은 당진 읍내 중학교 안에 있던 이발소에서 머리 깎는 방법을 배웠다. 머리를 감겨주고 청소하는 허드렛일을 마다치 않았다. 기술 하나만 있으면 밥은 굶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충남 당진의 무궁화이용원에서 친구이자 단골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는 박기태씨. 그는 매주 일요일이 되면 가위를 담은 가방을 들고 실버요양원과 마을 어르신을 찾아 미용봉사에 나선다. 신진호 기자

충남 당진의 무궁화이용원에서 친구이자 단골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는 박기태씨. 그는 매주 일요일이 되면 가위를 담은 가방을 들고 실버요양원과 마을 어르신을 찾아 미용봉사에 나선다. 신진호 기자

 

팔순 앞둔 당진 무궁화 이용원 박기태씨
열여덟살에 기술 배워 이발사 외길 60년
20대때 친구 형 머리 깎아준 뒤 봉사시작
일요일마다 평안마을·실버요양원 등 찾아

시간이 흘러 군대를 다녀오고 스물일곱 청년이 된 소년은 우연히 중풍을 앓던 친구 형의 머리를 깎아줬다. 그리고는 “돈이 아니어도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구나”라며 보람을 느꼈다. 1969년 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느덧 50년을 훌쩍 넘겼다. 충남 당진에서 60년 외길 이용업을 해온 ‘무궁화 이용원’ 박기태(77)씨 얘기다.
 
지난 5일 이용원에서 박씨를 만났다. 마침 그의 오랜 친구가 찾아왔다. 당진 시내에서 20분가량 떨어진 마을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머리를 깎으러 왔다고 했다. “봄이 됐으니 짧게 깎는 게 워뗘”라는 박씨의 물음에 친구는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박씨는 매주 월~토요일 이용원에서 일한다. 하지만 일요일이면 손때 묻은 가위를 가방에 담고 길을 나선다. 독거노인과 몸이 불편한 노인이 사는 당진 평안마을과 평안실버요양원에 미용 봉사를 가기 위해서다.
 
한 달에 한 번 가면 50~60명의 머리를 깎는다. 미용 봉사하는 다른 사람이 찾아와도 “나는 박씨에게 머리 깎을 거야”라며 기다려준 노인을 만나면 힘이 난단다. 평안마을 봉사는 벌써 20년, 평안실버요양원 봉사는 9년이 됐다. 봉사활동이 오래되면서 누가 어떤 스타일의 머리를 좋아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 
충남 당진시에서 이용원을 운영하는 박기태씨. 그는 일요일이 되면 가위를 담은 가방을 들고 실버요양원과 마을 어르신을 찾아 미용봉사에 나선다. [사진 당진시]

충남 당진시에서 이용원을 운영하는 박기태씨. 그는 일요일이 되면 가위를 담은 가방을 들고 실버요양원과 마을 어르신을 찾아 미용봉사에 나선다. [사진 당진시]

 
그는 평안마을의 한 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늘 자신을 아들처럼, 막냇동생처럼 따뜻하게 맞아주던 할머니였다. 그러나 머리를 깎아주고 “또 올 테니 건강하게 잘 계셔야 한다”고 말한 뒤 다음 달 찾아갔더니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한 달에 네 번의 일요일 중 두 번은 평안마을·실버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또 다른 일요일엔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면서 1시간가량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머리를 깎아주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해준다. 나머지 한 번의 일요일엔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친구를 만나는 등 오로지 자신을 위해 쓴다.
 

3년 전 아내와 사별한 박씨는 생전 아내의 병시중을 들고 머리를 깎아줬다. 10년 넘게 병으로 고생한 아내였지만 예쁜 모습을 기억하고픈 마음에서 정성 들여 머리를 깎아줬다. 이용원에서 일하다가도 밥때가 되면 잊지 않고 집으로 가 아내의 끼니도 챙겨줬다. 그는 “(내가)틈만 나면 남들 돕는 모습을 보면서 좀 서운했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충남 당진시 무궁화이용원에 걸려 있는 국무총리 표창장. 50년 넘게 봉사활동에 나선 박기태씨의 선행을 기려 국무총리가 수여한 표창장이다. 신진호 기자

충남 당진시 무궁화이용원에 걸려 있는 국무총리 표창장. 50년 넘게 봉사활동에 나선 박기태씨의 선행을 기려 국무총리가 수여한 표창장이다. 신진호 기자

 
단골손님 중에는 당진군수를 지낸 김낙성(77) 전 국회의원이 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김 전 의원은 현직 때 매월 두 차례,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월 한 차례씩 찾는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말총머리 친구(김 전 의원)의 머리카락이 부드러워졌다”며 웃었다.
 
무궁화이용원은 주민들이 자주 드나드는 사랑방이나 다름없다. 세상 얘기꽃이 수시로 피어오른다. 옛 당진 군청 앞에 있던 이용원이 채운동으로 옮겨 온 지도 34년. 박씨는“심심치 않을 만큼 단골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말 청와대에 다녀왔다. 봉사와 선행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장을 받고 대통령과의 다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표창장은 이용원 한쪽에 걸려 있다. 박씨는 “대통령을 만나 악수까지 했으니 그만한 영광이 어디 있겠느냐”며 말했다.
충남 당진시에서 이용원을 운영하는 박기태씨. 그는 일요일이 되면 가위를 담은 가방을 들고 실버요양원과 마을 어르신을 찾아 미용봉사에 나선다. [사진 당진시]

충남 당진시에서 이용원을 운영하는 박기태씨. 그는 일요일이 되면 가위를 담은 가방을 들고 실버요양원과 마을 어르신을 찾아 미용봉사에 나선다. [사진 당진시]

 
팔순을 앞둔 박씨는 건강을 잘 유지해야겠다고 마음먹곤 한다. 평안마을 노인들과 동네 어르신들의 머리를 오래오래 깎아줘야겠다는 생각에서다. “힘들지 않으냐”는 물음에 그는 “아직 깨딱 읍써(괜찮다는 표현의 당진 사투리)”라며 웃었다.
 
당진=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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