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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정의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2019.03.08 00:46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이동현 산업1팀 차장대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집단 성폭행 사건이 있다. 1심에서 높은 형량을 받았던 가해자들은 2심에서 형량이 절반 가까이 깎였고, 파기환송을 거쳐 2심보다 조금 높은 형량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사건을 고등법원에 돌려보내면서 2심에서 인정되지 않은 혐의를 다시 판단하라고 했다. 형량을 깎은 것은 문제 삼지 않았다.
 
확정판결까지 난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건,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를 도왔던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이들은 “1심에서 합의를 거부했던 피해자가 2심에서 ‘상당한 금액’을 받고 합의해준 걸로 안다”고 했다. 사건 이후 피해자가 가족들과도 멀어졌고 생활고를 겪던 중 가해자들의 합의 요구를 받아들였단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100%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자칫 ‘2차 가해’가 될 수 있어 사실관계 확인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2심 재판부가 1심의 형량에서 ‘절반 가까이’ 줄여준 건 엄연한 사실이다. 2심 재판부는 이렇게 밝혔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하고 용서해 선처를 탄원하는 점, 동종 범죄 전력이 없는 점… 가족과 마을 주민이 선처를 탄원하는 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다.”
 
우리 형법은 다수 범죄를 저질렀을 때 형량의 2분의 1을 더하는 가중주의를 채택한다. 유기징역의 상한도 최대 50년까지다. 양형기준상 합의와 피해회복은 형을 줄여줄 수 있는 요소다. 병과주의(倂科主義)를 채택하거나 ‘섹슈얼 프레데터 법’으로 수백 년까지 징역형을 선고하는 나라들과는 다르다. 무조건 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가해자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양형이 달라져도 되는지 의문을 갖는 것이다.
 
판사는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이다. 법을 벗어나는 판결을 할 순 없다. 궁핍한 피해자에겐 당장의 경제적 지원이 가장 절실한 ‘피해회복’일 수 있다. 합의해도 형이 줄어들지 않으면 가해자가 피해회복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빈털터리 범죄자는 징역 20년을 살고, 부자 범죄자는 징역 10년을 산다면 그 사법 시스템이 정의롭다 말할 수 있을까. 돈으로 ‘약한 처벌’을 살 수 있다면 이를 악용한 범죄가 횡행하지 않을까.
 
평소 친분이 있던 법조인은 기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현행법을 벗어날 순 없어요. 입법자가, 그리고 그 권한을 위임한 국민이 무엇이 정의로운지 정해줘야지요.”
 
이동현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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