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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30주기 “그의 시는 시간이 갈수록 풍부해진다”

중앙일보 2019.03.08 00:04 종합 23면 지면보기
영원한 청춘 시인 기형도. [사진 문학과 지성사]

영원한 청춘 시인 기형도. [사진 문학과 지성사]

“거리의 상상력은 고통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였다” (『입 속의 검은 잎』 시작 메모)
 

“그가 닮으려 했던 윤동주 넘어서”
개정판 전집, 헌정시집도 나와

영원히 늙지 않는 청춘 시인 기형도(1960~1989)가 우리 곁을 떠난 지 30년이 됐다. 그는 89년 3월 7일 새벽, 종로의 한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스물아홉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있던 그는 첫 시집 발간을 준비하던 중이었고,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같은 해 5월 그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7일 서울 연세대 문과대학 백주년기념홀에서 열린 ‘기형도 시인 30주기 추모 심포지엄’에서는 기형도와 윤동주를 비교하는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됐다. 두 시인은 연세대학교를 다녔고 유고 시집 한 권으로 시인으로서 존재를 세상에 알렸으며, 비슷한 나이에 타계했다(기형도는 29살, 윤동주는 28살에 생을 마감했다).
 
발제자로 나선 유성호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두 시인은 청춘의 언어, 미완의 언어를 사용했으며,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고민을 내면화해 1인칭 언어로 고백했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특히 고백의 언어를 심도 있게 끌고 갔다는 면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 역시 ‘고백의 언어’ 때문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두 시인 모두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고백의 언어로 완강하게 시를 풀어간다. 그래서 두 시인의 시를 읽으면 독자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 대신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차이점도 많다. 가장 큰 차이는 완결성이다. 기형도의 시는 미완의 언어로 쓰였기 때문에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이와 달리 윤동주의 시는 완결성이 특징이다. “기형도의 시는 후세대가 자신의 시대에 맞게 변주가 가능하지만, 윤동주는 일본 강점기 속에서 완결돼 있기 때문에 후세대에서 변주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기형도 시의 비밀은 세대를 이어가며 오히려 풍부해지는 데 있다. 기형도의 추억은 중단된 적이 없다”며 “30년 동안 새로운 세대의 독자가 계속 출현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문학사의 예외적인 사례”라고 평했다.
 
유년 시절을 다룬 데에서도 두 시인은 크게 다르다. 기형도는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써 내려 간 ‘엄마 걱정’, 아버지의 투병생활에 대한 고통을 담은 ‘폭풍의 언덕’ 등에서 볼 수 있듯 일찍이 가난과 가족의 죽음 등을 경험했다. 이와 달리 윤동주에게 어린 시절은 낭만화된 서정성의 공간이다. 유 교수는 “쉽게 말해 기형도가 흙수저였다면 윤동주는 금수저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차이가 시에 묻어있다”고 했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左), 『어느 푸른 저녁』(右)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左), 『어느 푸른 저녁』(右)

생전 기형도는 “윤동주를 닮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유 교수는 어떠한 면에서는 기형도가 윤동주를 넘어섰다고 평했다. 그는 “기형도가 선배 윤동주가 보여준 1인칭 고백의 시학을 계승했지만, 자신의 목소리에 탈신성화, 삶의 세속화, 소멸 충동 등을 지속해 부여함으로써 윤동주와 비껴선 세계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기형도 시에 나타난 파격적인 비유 역시 윤동주를 압도한다.
 
‘신화에서 역사로. 기형도 시의 새로운 이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움에는 ‘기형도 시의 문자적 계기와 그 상황적 의미’(정명교 연세대 교수), ‘기형도 시의 주체와 거리 두기’(오연경 고려대 교수) 등 주제에 대한 발표도 열렸다. 한편 문학과 지성사는 기형도 30주기를 기념해 기형도 시 전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왼쪽 작은 사진), 젊은 시인 88인이 쓴 헌정시집 『어느 푸른 저녁』(오른쪽 작은 사진) 등을 펴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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