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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박은옥 40년 “매일매일 일기 쓰듯 노래했죠”

중앙일보 2019.03.08 00:04 종합 23면 지면보기
7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는 정태춘·박은옥 부부. 1980년 결혼해 함께 노래를 부른 세월만큼 표정도 닮아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7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기자회견장에 입장하고 있는 정태춘·박은옥 부부. 1980년 결혼해 함께 노래를 부른 세월만큼 표정도 닮아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해요. 초기 노래가 개인의 일기라면, 8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의 일기였다고.”
 

다음달부터 전국 15개 도시 투어
사회적 아픔 읊조려온 음유시인
“우리를 일깨운 건 5·18 광주항쟁”
음반·전시·책 등 기념행사 10여개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은 가수 박은옥(62)은 남편 정태춘(65)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40년 동안 삶의 동반자이자 음악적 동지로 살아온 사람의 말이니 이보다 더 정확한 평가가 어디 있을까. 정태춘은 1978년 ‘시인의 마을’로, 박은옥은 79년 ‘회상’으로 데뷔해 그 이듬해 부부가 됐다.
 
7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 기자간담회에서 정태춘은 “40주년을 맞은 특별한 소회는 없다. 나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진지하게 들어준 분들이 많아 감사할 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은옥 역시 “뒤에서 다른 사람 기자회견 보듯 구경하고 있었다. 스스로 무대에 오르지 않았더니, 많은 분이 40주년 공연을 도와주는 걸 보면 참 인복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음악인생 40년을 기리는 이번 프로젝트는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어린이 잡지 ‘고래가그랬어’ 김규항 발행인·명필름 이은 대표가 공동 추진위원장을 맡는 등 각계의 참여로 기획됐다. 다음 달 13일 제주를 시작으로 서울·부산·전주 등 15개 도시에서 펼치는 전국 투어 ‘오리배, 날다’를 비롯해 전시 ‘다시, 건너간다’, 정태춘 시집 『노독일처』의 복간과 신작 시집 『슬픈 런치』 출간 등이 이어진다. 문학평론가 오민석이 쓴 가사 해설집, 음악평론가 강헌이 쓴 평론 등도 나온다. 이런 발자취를 담아 내년에는 음악 다큐 ‘노래, 마음이 부르지 목이 부르나’(가제)도 선보인다.
 
정태춘이 붓글을 쓰는 모습. [사진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정태춘이 붓글을 쓰는 모습. [사진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정태춘은 “햇수로 따지면 저는 41년 차”라며 “박은옥씨가 40주년”이라고 했다. “2008년에도 저는 공연을 안 하고, 2009년 박은옥씨 30주년 공연을 같이했거든요. 사실 지난 10여 년 동안은 활동한 게 많진 않지만 한번 정리를 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골 농촌 마을에서 살면서 초등학교 때 처음 기타를 만나고, 이후 바이올린으로 가게 되고, 창작하게 되면서 얼떨결에 가수가 됐지만 열정을 다해 뛰어들었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구 진행되는 노래 인생을 살았지만, 나의 존재와 실존적인 고민과 세상에 관한 메시지를 담았으니까요.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살펴보면 당대에 다른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수도 있을 테고.”
 
다음 달 초에는 40주년 기념 앨범 ‘사람들 2019’도 나온다. 6집 수록곡 ‘사람들’(1993)을 2019년 버전으로 바꿨다. 정태춘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죽음들이 있었는지 담기 위해 교통사고·산업재해 등으로 몇 명이 죽었다는 가사를 2017년도 자료로 다시 넣었다”고 설명했다. 1999년에 만든 미발표곡 ‘외연도에서’와 올 초 만든 신곡  ‘연남, 봄날’ 등 총 8곡이 수록됐다. 가수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딸 정새난슬도 함께 참여했다. 딸이 2013년 결혼해 2년 만에 이혼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은 심경도 노래에 담겼다. 박은옥은 “지난 몇 년간 부침이 많았던 가족을 생각하며 썼다고 본인은 굉장히 울컥했던 모양인데 정작 저는 그 감정까지 안 가더라”며 “그래서 그냥 당신이 부르시라고 했다”고 말했다. “역시 노래는 만든 사람이 부르는 게 더 섬세한 것 같아요. 이번엔 내가 정태춘씨를 위해서 공연하겠다는 마음입니다.”
 
시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80년대 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이들은 ‘아, 대한민국...’(1990)과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 등을 사전검열 없이 발표, 오랜 싸움 끝에 음반 사전심의제 폐지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정동진/건너간다’(1998)와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2002)의 잇단 상업적 실패는 상처로 남은 듯했다. 이후 10년 만에 내놓았던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2) 역시 큰 호응을 얻진 못했다.
 
‘노래’ 글은 다큐 제목이 됐다. [사진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노래’ 글은 다큐 제목이 됐다. [사진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

“‘아, 대한민국...’은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변곡점입니다. 그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있었죠. 저 역시 유신 독재 시절을 거쳐 5·18 광주 항쟁을 겪으면서 깨어나고 변화하여 비로소 시인이 되었으니까요. 나를 깨워준 건 우리 시대인 셈입니다. 많은 분이 변화를 위해 함께 연대했죠. 그때는 그 노래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불편합니다. 전혀 안 듣습니다. 개인의 분노만 있으니까요. 그 다음 앨범들은 시장에서 전혀 반응이 없었어요. 나의 고민을 담았는데, 그 고민을 읽어주는 피드백이 없었죠. 대중예술가라면 대중의 생각이나 기호를 읽어야 하는데 저는 점점 더 내면으로 깊이 들어갔죠.”(정태춘)
 
정태춘이 ‘붓글’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자유롭게 글씨를 쓰고 가사를 담았다. “제게는 노래가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었는데 그 그릇에 계속 담기에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 거죠. 더 협소한 대중과 소통할 수도 있겠지만 붓글 가지고는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을 들여서 앨범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통로가 새로 생긴 셈이니까요.”(정태춘)
 
이 와중에도 정태춘은 ‘시장 밖 예술’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시장이 모든 걸 장악하고 있습니다. 시장성을 가지지 않은 모든 것은 사장되어 가고 있죠. 최첨단 산업 사회로 가고 있지만, 그 메커니즘이 통하지 않는 시장 밖에서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이 프로젝트 안에서 조금씩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정태춘)
 
“방탄소년단을 만든 빅히트 방시혁 대표가 서울대 졸업 연설을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자기 안의 분노와 불평이 동력이 됐다는 걸 보면서 참 의외다 싶으면서도 그것이 무언가를 바꿔나가는 동력이 되는구나 하며 정태춘씨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생에서도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정태춘씨처럼 재능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목소리로 표현만 했지 글을 쓰고 만들어보지 못해서 참 부러웠거든요.”(박은옥)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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