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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의 한반도평화워치] 대북 제재 해제는 비핵화 진전 속도에 맞춰야

중앙일보 2019.03.08 00:04 종합 24면 지면보기
비핵 평화의 길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은 전면적 완전한 비핵화라는 빅딜(big deal)을 북한에 요구했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완화를 바꾸는 스몰딜(small deal)을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과 부딪치면서 결국 노딜(no deal)로 귀결되었다. 북한은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현실임을 알게 되었고, 미국은 북한이 부분적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핵화 조치 없는 상황에서
금강산·개성공단 재개 추진은
한·미 갈등과 국제 고립 자초

한반도 비핵평화 체제 위해선
북한에 영변+α 폐기 설득하고
협상때 주한미군 올리지 말며
비핵논의에 중국 끌어들이고
일본을 전략적으로 포용해야

하노이회담에서 드러난 북·미 간 입장 차이는 표와 같다. 북한의 셈법은 현재 북·미간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영변 핵시설 해체를 중간 종착점으로 삼아 제재 완화를 얻어낸 후, 신뢰 구축 여부에 따라 비핵화를 더 논의한다는 방식이다. 미국은 영변을 중간 기착지로 하지 않고 핵 프로그램 전체를 신고·검증·파기해야 제재를 완화하겠다는 방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 중지와 영변 핵시설 파기를 사실상 핵심적 제재 완화와 교환하려 한 것은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잘못 읽은 것이다. 미국 하원을 민주당이 장악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실질적인 비핵화의 진전을 내놓아야 했다는 점도 북한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반도 비핵평화가 이루어지려면 적어도 세 가지의 복합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균형이다. 비핵화를 뒤로 미룬 평화는 위장된 평화일 뿐이고, 평화 구축 없는 비핵화도 진전되기 어렵다. 둘째, 국가 안보와 평화의 균형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안보 해체는 힘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안보 강화 일변도는 평화 협력 추구를 어렵게 한다. 셋째, 민족 공조와 국제 공조 간 균형이다. 민족 공조만을 앞세우면 국제 고립을 심화시키고, 국제 공조만 앞세우면 한국의 평화 주도는 사라진다.
 
현재 진행 중인 비핵화와 평화 구축의 프로세스는 목표가 불분명하고, 과정이 불안정하며, 결과가 불확정적이다. 한반도 비핵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한국이 북한에 영변+α를 폐기하도록 설득해 북·미간 입장 차이를 줄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부분적 비핵화를 선행하고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파기를 중간 종착점으로 삼고자 하는 북한의 로드맵을 받아들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영변이라는 한정적·부분적 핵물질 생산시설 파괴로는 미국도, 한국 국민도, 국제사회도 만족시킬 수 없다. 이미 알려진 핵심적 핵물질 생산시설, 기존에 생산된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미사일 시설 등이 비핵화 대상에 총체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북·미 협상을 통한 비핵화의 진전을 도모하려면 한국이 북한에 우선 영변 이외의 핵심적 핵물질 생산 시설들을 신고·검증하는 로드맵과 시간표를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둘째, 핵심적 대북 제재 해제는 포괄적 비핵화의 진전 속도에 맞춰야 한다. 대북 제재는 북한을 협상장에 나서게 하고 비핵화와 관련된 양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북한이 이번에 요구한 5개의 제재 완화는 부분적 해제 요구가 아닌 석탄·석유 교역, 노동력 송출과 관련된 사실상 핵심적인 제재 완화 요구였다. 포괄적 비핵화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북한 요구를 수용했다간 비핵화의 길은 더욱 멀어진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남북 철도 연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협력 사업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 및 국제사회를 향해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한·미 갈등과 국제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셋째, 주한 미군은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주한 미군은 한국 안보의 기축이다. 주한 미군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사라져도 북한의 비대칭적 군사 자산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한, 그리고 한국의 자주방위 능력이 한국 안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대북 협상의 대상에 올리거나 약화·포기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향후 군사적 신뢰 조치의 필요성을 들어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할 공산이 크다. 주한 미군의 지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협정보다는 남북·북미 간 적대 관계 청산, 북한에 대한 불가침 약속,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지지를 선언하는 방식으로 평화체제를 짜나가야 한다.
 
넷째, 중국을 다면적으로 설득해 비핵 평화 논의에 동승시켜야 한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고강도 제재의 성패를 손에 쥐고 있으며,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보장을 유효하게 제공할 수 있는 국가다.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중국은 동북 아시아에서의 유일한 핵 보유국이라는 지위를 잃게 되고, 장기적으로 한국·일본 등의 핵무장을 막을 명분을 잃는다. 북한의 비핵 개방이 이루어지면 중국의 동북 3성이 발전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장이 지속한다면 중국이 바라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멀어진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가 실패할 때 중국이 감당해야 할 비용과 평화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을 제시함으로써 중국을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동승시켜야 한다.
 
다섯째,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사 갈등을 넘어 전략적으로 포용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일본의 역할은 미미해 보이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북·일 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질 것이고, 일본은 북한에 대한 경제 협력 자금을 제공하는 한편 민간 투자를 늘릴 것이다.  
 
반면, 북한의 비핵화에 실패하면 한·미·일 안보 협력은 중차대해진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동적 연대가 확보되고 일본에 산재한 7개 유엔사령부 후방 기지가 제대로 작동될 때만 한반도 안보는 담보된다. 이를 위한 일본 정부의 협력도 필요하다. 따라서 한·일 갈등을 방치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한반도 평화를 지속할 수 있게 하려면 한·일 갈등이 더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일본을 전략적으로 포용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 주장의 노림수와 주한 미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이 특정 구역에서만 비핵화를 하려 했다”고 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그들이 내놓으려 준비한 것의 전체 범위에 대해 여전히 전적으로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이용호 북한 외무상도 이날 새벽 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5건의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해제를 맞바꾸는 것은)조미 양국 사이의 현 신뢰 수준을 놓고 볼 때, 현 단계에서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이며 이런 원칙적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 부상도 “처음부터 얘기된 것이 영변인 것이고 (미국에)영변에 대한 입장을 우리가 이번에 처음 밝힌 것이다. 아직 핵시설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내놓은 역사가 없다. 우리 딴에는 최상의 안을 내놨다”고 강변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핵 협상 1차적 대상의 마지노선이 영변 핵시설에 있음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북한이 이에 대한 보상으로 요구한 것은 민생 목적 외 석탄·철·금·희토류 수출을 전면 금지한 유엔 결의 2270호(2016년 3월), 석탄 수출 상한을 설정한 2321호(2016년 11월), 해산물 수출 전면 금지 및 신규 노동자 송출을 금지한 2371호 (2017년 8월), 대북 유류 공급을 30% 감축한 2375호 (2017년 9월), 그리고 대북 원유 400만 배럴, 정제유 50만 배럴 공급 상한을 결정한 2397호 (2017년 12월) 등 5개였다. 사실상 핵심적 대북 제재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이는 영변을 1차 종착역으로 설정하고 제재 완화와 맞바꾸려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북한이 “현 단계의 신뢰 수준을 고려한다”는 것은 ‘영변 이후’를 군사적 신뢰 조치의 단계로 규정하고 주한미군 철수와 연동시키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야기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달성하자는 주장은 주한 미군 철수와 무관하지 않다. 2만8500명의 주한 미군은 정전체제를 유지하고 유사시 한국 방어를 지탱하는 주요한 기능을 한다. 바다를 건너 일본에 주둔한 주일미군과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는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동북아 전구에서 일체화된 하나다.
 
주한 미군은 육군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고, 주일 미군은 해군·공군·해병대가 주력을 이룬다. 미 육군 제1군단 사령부인 자마기지, 미국 해군 7함대 모항인 요코스카기지, 해군기지이자 탄약창인 사세보기지, 미 5공군 사령부 요코타 공군기지, 제36 해병항공군이 주둔한 후텐마 해병 항공기지, 18비행단이 있는 가데나 공군기지, 항만 저유 시설인 화이트비치기지 등 7개 기지가 유엔사령부를 통해 통합 활용되었을 때 유기적인 한국 방어 전력이 된다. 따라서 정전협정 체결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한국 방위의 연결 고리인 유엔사의 해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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