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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중년 여성이 두 번째 문을 두드리는 방법

중앙일보 2019.03.07 15:00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9)
“아, 정말 잘 됐어요! 축하해요.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잘 생각했어. 잘할 수 있는 일이니 즐겁게 다시 시작해 봐.”
“오십을 앞둔 나이에 재취업이 된 건데, 그것만으로도 브라보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다시 ‘출근’길에 나섰다. 거의 5개월 만이다. 24년간 한 회사를 부침 없이 다녔던 나에게 퇴사 후 시간은 예상하지 못한 가르침을 주었다. 퇴직 후 시간을 그려보기는 했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시큰했다. 한창 일할 때라 불리는 20~30대가 아닌 중년의 퇴직이니 그럴 만하지 않은가. 어느 시기에 퇴직하든 퇴직 전 고민의 폭과 계획의 양상에 따라 다음 단계를 위한 움직임의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무실에 출근 후 받은 지인들의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즐겁게 신나게 만들어보겠다는 다짐을! [사진 김현주]

사무실에 출근 후 받은 지인들의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즐겁게 신나게 만들어보겠다는 다짐을! [사진 김현주]

 
게다가 중년은 속도감보다는 유연함과 판단력이 장점인 나이다. 회사 책상에 앉아 생각했던 것처럼 계획대로 단계를 밟아 가는 게 쉽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선 조직 내에서 맡은 역할에 따라 동료들과 협업을 하며 성과를 내었던 일상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하고 실행하고 책임져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창업하든지 재취업을 하든지, 구직을 위해 움직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것이 없는 백지 위에서 시작해야 하는 단계에 놓인다.
 
내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 사무실을 나섰을 때는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기대와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동안의 에디터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전달하고 만들고 싶은 콘텐츠’에 집중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중년 여성’, 내 또래 여성의 라이프가 바로 그 콘텐츠였고, 나를 포함한 그녀들의 일상과 취향,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프로젝트에 응모해 마이크로 뉴스 사이트를 제작했고, 중년의 삶을 기반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회 기관을 방문하고 관련해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으며, 지인들에게도 이 부분에 관해 앞으로의 계획을 피력했다. 
 
조금씩 나만의 콘텐츠가 쌓여갔으나, 이것을 ‘업’으로 전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각을 바꿔야 했다. 해보고 싶은 콘텐츠는 개인적으로 발전시키더라도 우선은 그간의 경력을 바탕으로 구직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꼼꼼하게 준비했고 헤드헌터와 상담을 하며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차이를 좁혀갔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내 또래 나이와 경력은 구직과정에서 장애가 되기도 했다.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나의 경험을 인정하고 함께 일하자고 손 내밀 곳을 찾아야 했다. 해왔던 일을 바탕으로 하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새로운’ 분야에서 근무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였다. 그러던 와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우먼센스』에서 편집장으로 일해보지 않겠어요? 『코스모폴리탄』에서 지금까지 해 왔던 경험을 바탕으로요. 타깃 에이지(Target Age)가 다른 잡지니 그간의 경험이 분명 시너지를 줄 거에요."
 

매거진 제작은 분명히 흥미 있는 일이다. 24년 이 일을 해온 이유이기도 했다. 중년 여성을 위해 콘텐츠를 만들어보겠다는 계획과도 일맥상통했다. 잘 아는 일이었고,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민했고, 결정했다. 다른 분야로 뻗었던 촉수를 거둬들이고, 다시 한번 잡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마침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그만둔 직장 동기가 있었다.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여러 잡지를 거치며 24년 이상 콘텐츠를 만들었고, 퇴사 후 새로운 일을 계획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나와 다른 점은 나는 재취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구직활동을 했다는 것, 친구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것으로 사업모델을 만들어 사무실을 열었다는 것이다. 지난달 초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사무실을 연 후 영상과 출판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그녀를 만났다.
 
“회사 다닐 때는 김주은이 사업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그런데 어느 순간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 위치에 한계를 느꼈고, 이제는 나가야 한다는 판단을 했지. 직장생활 그 정도 했으면 할만큼은 했다고 지인들도 그러더라고. 내 나이에 다른 회사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고, 무엇보다 이전부터 그려왔던 나만의 사무실, 거기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거든!
 
브랜드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사업 운영을 하면서, 내가 만들고 싶었던 순수 콘텐츠도 진행하자. 잡지사에 근무하며 일본에 연수를 간 적이 있었는데, 10여 년 전이었는데도 일본은 잡지사 외부에서 콘텐츠를 공급하는 기획 및 제작 프로덕션이 많더라고. 돌이켜보니 그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 퇴직하며 회사에서 받은 돈을 종잣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벌여보기로 했지.”
 
퇴사 후 가끔 그녀를 만나며, 창업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에 감탄하곤 했었다. “사업자 등록을 하기 전 두 달가량은 필요한 조사와 실무적인 준비를 했어. ‘에디터팀워크(editor teamwork)’라는 회사 이름을 정하고, 그걸 브랜드화시키기 위해 디자인을 하고 명함을 만들었지. 그리고 변리사를 찾아 상표로 등록했고, 홈페이지 도메인을 샀어. 그게 사업자를 내기 전 했던 일이야.
 
하루에 한 명씩 나보다 먼저 창업한 지인들을 찾아가 시장 상황을 들었고, 그들에게 나의 장단점에 관해 이야기를 청하며 여러 가지 조언을 얻는 시간도 보냈어. 이 시간을 통해 내 생각과 사업의 방향성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어.”
 
공유 오피스에 마련한 친구의 사무실(왼쪽)과 명함(오른쪽).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녀의 이야기처럼 디테일해야 한다. [사진 김현주]

공유 오피스에 마련한 친구의 사무실(왼쪽)과 명함(오른쪽).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녀의 이야기처럼 디테일해야 한다. [사진 김현주]

 
이렇게 준비과정을 마친 그녀는 지난달 공유 오피스에 아담한 사무실을 열었고 마음 맞는 후배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서른이 된 후배야. 나와 스무 살 차이가 나는. 그 또래 친구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콘텐츠 생산방식을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친구라고 생각했어”
 
시니어들을 위한 일자리 등 '인생 2막' 준비를 돕고 있는 사회적 기업 '에스크'(ASK)’ 의 진관숙 대표는 구직 과정에서는 개인이 지향하는 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존에 몸담았던 조직에서 성과 위주로 근무했던 분들은 이후에도 성과 지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다시 재취업을 원하시죠.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의 경험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취업이라는 게 만만하지 않기에 좌절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 분들에게는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을 바꾸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50+재단 등 무료로 컨설팅을 해주는 곳이 꽤 있습니다. 그걸 활용하세요. ‘우리 나이에 뭘’ 이런 생각 마시고 객관적으로 검증을 받아 보는 거죠.
 
개인 처방전처럼 방안을 딱 제시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가능성이 있는 길이 있는데 본인에게 어떤 게 맞는지 생각해 보라는 조언은 얻을 수 있습니다. 퇴직 후 새로운 일을 찾으시는 분들은 이런 식으로 전문기관을 방문하거나 지인 등 사람을 많이 만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얻어 보는 과정을 가지시는 게 좋아요. 몇 달 정도는요.”
 
50+재단에서는 시니어에게 일자리 정보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은 50+재단 중부 캠퍼스가 개최한 '놀장' 축제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모습. [사진 서울 50+재단 영상 캡쳐]

50+재단에서는 시니어에게 일자리 정보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은 50+재단 중부 캠퍼스가 개최한 '놀장' 축제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모습. [사진 서울 50+재단 영상 캡쳐]

 
50+재단 중부 캠퍼스에서 상담을 하는 백호숙 컨설턴트는 5060 세대를 상담하다 보면 일과 사회 공헌에 관한 내용이 많다고 말한다. “시니어들에게 일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50+재단에서 취업을 직접 연계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상담자의 재량으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거나 교육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년여성의 경우 퇴직 후 재취업을 위해 상담을 청하시면 생계형 일자리를 구하는지 사회공헌형 일자리를 구하는지 먼저 물어봅니다.
 
전일제 일자리를 구해서 가계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경우라면 기존에 하던 일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새로운 일에 도전할지 물어봅니다. 기존에 하던 일을 할 경우 그동안 경력을 바탕으로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을 도와드리고,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적성 및 직업선호도, 직업 가치관, 직업전환검사 등을 통해 그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이나 일자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백호숙 컨설턴트는 여성인력개발센터, 여성발전센터, 폴리텍대학에서의 프로그램 및 고용복지 플러스센터에서 취업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구직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두 번째 일은 첫 번째 일과 같을 수 없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일에 대한 비전도 달라진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상황 안에서 제대로 판단을 하고, 열심히 찾아다니며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 이제 나도 두 번째 문을 열었다. 당장 눈앞의 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바라보며 길게 호흡하며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다. 이게 바로 인생 2막 아닐까.
 
김현주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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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김현주 우먼센스 편집국장 필진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 전 코스모폴리탄 편집장, 현 우먼센스 편집장. 20~30대 여성으로 시작해 30~40대 여성까지, 미디어를 통해 여성의 삶을 주목하는 일을 25년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나이 또래인 50대 '갱년기, 중년여성'의 일상과 이들이 마주하게 될 앞으로의 시간에 관심을 갖고 있다. ‘더오래’를 통해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호르몬의 변동기인 이 시기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 모색하며 동년배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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