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언 논설위원
미국 법원에서 ‘남자만 징집’은 위헌이라고 판결
노르웨이·스웨덴 등 유럽 국가에 평등 징병 확산
노르웨이: 2014년 10월 ‘보편적 징병’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96대 6.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로써 19∼44세 여성이 징집 대상에 포함됐다. 2년 뒤 ‘성 중립 군대’가 실현됐다. 같은 병영에서 남녀가 함께 생활한다. 혼성 전투부대도 있다. 현재 여성 군인 비율은 20%가량이다. 노르웨이는 징병제 국가이지만 가기 싫다는 사람까지 억지로 보내지는 않는다. 한 해 약 6만 명이 새로 징집 대상자가 되는데, 매해 전체 대상자 중 약 9000명이 ‘뽑혀서’ 군대에 간다. 신체 적합성과 복무 의지가 주요 기준이다. “꼭 가고 싶습니다!”고 외치는 젊은이가 많다는 얘기다. 19개월 군 복무가 취업과 공직 진출에 유리한 ‘스펙’이 된다. 전력 약화, 생활 문란을 걱정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나온 보고서들에 따르면 기우였다.
스웨덴과 네덜란드가 이와 유사한 제도를 만들어 지난해에 도입했다. 스위스도 여성 징병 계획을 만들었다. 참고로, 2000년 이후에 임명된 9명의 노르웨이 국방부 장관 중 5명이 여성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3/07/d2789209-dd0d-47b4-8002-5207e8373a73.jpg)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한국: ‘남자만 징병’은 위헌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로도 갔다. 2010년 헌재는 남성 김모씨가 낸 헌법소원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병역법 3조(남성만 징집)가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39조 위반이라는 주장에 헌재는 ‘그렇지 않다’고 판정했다. 여성의 신체는 전투에 부적합하고, 여성을 복무시키면 군 시설 마련 등에 큰 비용이 든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당시 9명의 재판관 중 목영준·이공현 재판관은 위헌이라며 소수의견을 냈다. 목 전 재판관은 5일 “일반적 여성의 신체적 조건으로도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복무 방법이 있다. 병역=남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헌재와 대법원에서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결정과 판결이 잇따라 나와 남성의 불만이 더 커졌다. 병역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평등 병역이 옳다고 말하는 여성계 인사들도 있다. 권인숙 한국여성정책원장, 페미니즘 연구자 오세라비씨가 대표적이다. 2년 전에 여성이 쓴 『나는 여성 징병제에 찬성한다』라는 책도 출판됐다. 공군 장교 출신으로 지금은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저자 주하림(33)씨는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책을 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 청년: 20대 남성의 국정 지지율이 추락하자 각양각색의 분석이 나왔다. 유시민 작가는 “자기들은 롤(온라인 게임)도 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공부하지”라며 진학과 취업에서 밀리는 현상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여당 의원들은 과거 정부 교육 탓을 했다. 모두 욕만 실컷 먹었다. 돌이켜 보면 20대 남성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평등한 병역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묵살됐을 때였다. 청원 내용을 보고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재미있는 이슈”라며 딴 나라 이야기처럼 말했다. 그게 끝이었다.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렇다 할 혜택을 본 것이 없는 요즘 20대 남자들,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왜 우리 얘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느냐”고 따지고 있다.
이상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