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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뉘든 잡아들일 수 있다

중앙일보 2019.03.07 00:11 종합 31면 지면보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한 검사가 동료 검사의 책(『검사내전』)을 건넸다. 사실상 누구나 풀어줄 수 있고 누구나 잡아들일 수 있는 게 검사다. 일상에선 되도록 만날 일이 없는 게 좋을 직군이므로 ‘굳이 검사 책까지 읽을 필요야…’라며 덮어둔 게 어언 10개월이었다. 그러다 근래 꺼내 들었다. 초임 청에서 ‘당청(當廳) 꼴찌’란 낙인이 찍히고 여러 형사부를 전전한 ‘떠돌이(journey man)’이자, “술자리에 차장이 부르면 달려나가는 게 당연하다”는 부장(검찰에선 차장보다 부장이 아래다)을 향해 “그게 단합이면 제가 술을 마시다가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주시나요”라고 되물었다가 ‘사이코’라 불린 검사가 화자(話者)였다.
 
책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했다. 불운의 아이콘이자 세상의 불행을 홀로 안고 가는 우주의 속죄양 울버린 김씨도 한 명이었다. 어찌나 불행했던지 운전만 하면 여성 운전자가 김씨의 낡은 프레스토를 들이받았고 일방통행로에 들어가면 역주행하는 차량이 달려들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교통사고만 40여회 당했다고 한다. 김씨는 대신 초인적인 자가 치유능력을 보였다. 전치 6주 진단에도 3일 만에 걸어 다녔다. 한마디로 보험 사기범이었다.
 
키득대다 문득 생각했다. ‘그렇지, 이런 업무를 하는 검사들이 다수지.’ 이 같은 균형감각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놀라운 ‘수사 능력’을 보이는 검사들을 비판하려 할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그러므로 곧 할 얘기는 일부만을 대상으로 함을 밝혀둔다.
 
사실 소수 검사들의 권력 적응력은 늘 탄복할만했다. 현 정부에선 그러나 울트라 수퍼 업그레이드된 듯하다. “먼지 나올 때까지 턴다”더니 이젠 “털어서 나오면 먼지”(별건 수사나 피의사실 공표쯤은 개의치 않는다)란 수준이다. 출판사가 울고 갈 정도의 왕성한 집필 능력을 자랑하곤 하는데, A4 용지 300장 분량의 공소장이면 상·중·하 단행본 발간도 가능하다.
 
이윽고 독특한 감식안(鑑識眼)도 과시했다. 헌법재판소-법원(별개의 헌법기관이다) 간 정보 이동은 묵인하면서 법원행정처-지방법원(법원 소속이다) 간 이동은 문제 삼았다. 이로 인해 공교롭게도 여권 핵심 인사에게 유죄 선고를 했다가 여권의 공적(公敵)이 된 판사도 기소됐다. 검찰은 “증거와 공소유지 가능성 등(等)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는데, 다수의 사람이 주목하는 건 다름 아닌 ‘등’이다. 상상은 자유인데, 그게 사실일 것이라고 믿으면서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묵묵히 일하는 다수까지 욕먹게 하지는 말라.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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