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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절제했다는 법관 '선별 기소'가 불러온 정치 검찰 논란

중앙일보 2019.03.06 17:24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 양 전 대법원장과 '공범'으로 적시됐던 권순일 전 대법관을 기소하지 않았다. 사진은 2014년 9월 권순일 신입 대법관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본인의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뉴스1]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 양 전 대법원장과 '공범'으로 적시됐던 권순일 전 대법관을 기소하지 않았다. 사진은 2014년 9월 권순일 신입 대법관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본인의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뉴스1]

검찰은 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마무리하며 현직에 있는 권순일 대법관을 기소하지 않았다. 권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공범'으로 적시돼 있다. 그러나 검찰은 재판에서 권 대법관의 유죄를 받아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고 혐의도 중하지 않다고 했다. 
 

檢 "정치적 고려 없다, 철저히 법리따라 판단"
법원 내부선 "검찰 기소 기준 명확하지 않아"
검찰, 기소 독점주의도 재조명 "견제 수단 없어"
성창호 기소에 與 "사필귀정" 野 "정치 탄압"

그렇다고 검찰이 권 대법관에 대해 불기소 처분(무혐의·기소유예 등)을 내린 것도 아니다. 권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과 공범이지만 기소할 정도는 아니고 아직 죄가 없다고 단정짓기도 어렵다는 것이 검찰의 어중간한 결론이다. 
 
차한성 전 대법관도 권 대법관과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다. 그 역시 양 전 대법원장과 공범으로 기재됐지만 기소되지 않았고 아직 불기소처분을 받지도 않았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최대한 절제해 전·현직 법관에 대한 기소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만이 피의자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소 독점주의라는 막강한 권한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라고 했다. 공소장에 공범으로 적시된 피의자가 기소되지 않은 것도, 그렇다고 불기소 처분을 받지 않은 것도 "매우 드문 사례"라고 덧붙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6일 오전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검찰의 성창호 부장판사 기소를 "김경수 경남도지사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규정하며 반발했다. [임현동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6일 오전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검찰의 성창호 부장판사 기소를 "김경수 경남도지사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규정하며 반발했다. [임현동 기자]

검찰의 이런 어중간한 결정에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특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마무리하며 기소된 14명의 전·현직 법관에 김경수 경남도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가 포함되자 야권은 "정치 검찰의 부활"이라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검찰이 전·현직 대법관들에겐 절제된 결정을 하며 성 부장판사에게만 엄격했다는 야당의 비난인데 검찰은 "철저히 법대로 했다"고 반박한다. 
 
검찰은 성 부장판사가 2016년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영장전담판사로 재직할 당시 법관 비리 수사 확대를 저지하려 영장 기밀을 유출해 상부에 보고한 것을 '공무상 비밀누설'이라 판단해 기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약 2년간 헌법재판소에 근무하며 41건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관련 보고와 헌재 내부 평의를 포함해 대법원에 322건의 정보 보고를 했던 현직 부장판사는 기소하지 않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10명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 10명

검찰 관계자는 "범죄의 적극성과 가담 정도, 범죄의 인지 여부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내린 결론"이라 말했다. 하지만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절제하려 했다면 모두에게 똑같이 절제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검찰 간부 출신의 변호사도 "성 부장판사의 경우 법원 내부에 보고를 한 것이지만 헌재 파견 판사는 외부로 유출한 것이라 더 심각할 수도 있다"며 "사실 관계를 명확히 아는 검찰의 결론이 정확할 것이라 믿고 싶지만 검찰 스스로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을 자초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검찰은 현직 법관 8명을 포함해 66명의 법관에 대해 대법원에 비위 통보도 했다. 기소된 8명과 재판을 피해간 58명의 법관을 나눈 기준에 대해서도 검찰은 '법리'를 강조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검찰의 기준이 작의적인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은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를 6일 공무상 비밀누설혐의로 기소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선고공판을 진행하고 있는 성 부장판사의 모습. [연합뉴스]

검찰은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를 6일 공무상 비밀누설혐의로 기소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선고공판을 진행하고 있는 성 부장판사의 모습. [연합뉴스]

수사 대상에 올랐던 100여명의 판사 명단을 회의 테이블에 올려 놓은 뒤 누굴 넣고 누굴 뺄지 결정하는 검찰의 막강한 권한 '기소 독점주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것이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었던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에 대한 수사를 법원이 피해갈 수는 없다고 봤지만 법원 행정처의 힘이 약해지면서 검찰의 권력이 무소불위처럼 커질까 겁이 난다"고 말했다. 법원 행정처의 비법관화를 지지하지만 여전히 검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법무부와, 국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대검찰청 앞에서 사법부가 순식간에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검찰은 사법행정권 수사 이후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며 "이들이 누굴 기소하고 누굴 기소하지 않을지 결정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할 때 현행 법체계상 견제할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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