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린생명 품에 안은 가난한 엄마의 눈물 보았나요

중앙일보 2019.03.06 08:00
[더,오래]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1)

최고급 아파트를 팔던 18년 차 마케터에서 NGO 신입생으로, 남 도우러 왔다가 내 마음 수련 중이다. 직장이 아닌 인생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어 선택한 길. 돈과 지식보다 진심 어린 마음이 더 위대한 일을 해낸단 걸 배우고 있다. 더 오래 사랑하며 살고 싶은 중년 아줌마의 고군분투 NGO 적응기. <편집자> 

 
지난해 5월 케냐컴패션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사진 한국컴패션]

지난해 5월 케냐컴패션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사진 한국컴패션]

 
40대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15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나름대로 남은 삶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풍토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 꿈은 희미해졌다.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을 사치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 보리라 결단하고 2015년 컴패션(Compassion)이라는 국제어린이 양육기구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컴패션은 1952년 한국전쟁 고아를 돕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한국은 1993년까지 수혜국으로 있다가 2003년에 후원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어려움에 당면했다. 전문성과 업무 강도가 기존과 다르지 않았고 야근이 계속되었다. 이는 견딜 만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러 온 것이니까. 그런데 수직적인 조직에서 빠른 의사결정이 익숙했던 나는 많은 이해관계자와 조율해야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몸까지 아파왔다. 아이들의 불만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딸과 필리핀 비전트립을 가기로 했다. 비전트립은 후원자들이 현지 어린이센터와 어린이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여행이다. 개인적으로는 기관의 사업을 공부하는 자리였지만, 딸이 새로운 길을 택한 엄마의 지지자가 돼 주길 바라는 마음, 현지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길 바랐다.
 
25명의 참가자가 어린이센터에 도착하자 많은 어린이와 엄마들이 정성껏 만든 종이꽃 목걸이를 손에 들고 환영 인사를 했다. 그 미소가 얼마나 예쁜지 가난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어린이들의 노래와 무용이 끝나고 한 엄마와 어린이의 발표가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견뎌왔는지, 센터를 통해 어떤 변화와 기적을 경험했는지 눈물 젖은 목소리로 읽어줬다.
 
센터 밖 세상은 그들에게 차갑고 비참했다. 산같이 쌓인 쓰레기 산에 넝마와 천막으로 집을 짓고 쓰레기를 뒤져야 하루 벌이가 가능했던 그들. 작디작은 생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며 아프다는 표현도 못 하고 악물고 버텨온 시간. 그리고 바로 그 어리고 연약한 생명을 통해 도움의 손길이 전해졌고 삶은 통째로 바뀌었다. 그들의 뜨거운 눈물의 의미가 같은 엄마인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필리핀 어린이센터에서 배운 노래와 율동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 [사진 한국컴패션]

필리핀 어린이센터에서 배운 노래와 율동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 [사진 한국컴패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의 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쩜 이리 귀여울까’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문득 팔목에 핑크 리본을 묶은 어린이들이 따로 모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센터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방문한 후원자들의 요청으로 아직 후원자가 없는 어린이에게만 리본을 매달아 놓은 거라고 했다.
 
어린이들이 한 명이라도 더 후원자를 만나길 바라는 선생님들의 간절한 마음은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딸은 노란 티셔츠를 입은 미소가 귀여운 남자 어린이를 후원하기로 했다. 그 날이 마크(Mark)와 우리 가족의 1일이었다. 딸의 눈엔 후원받는 어린이와 센터 밖 후원받지 못하는 어린이의 미소와 눈빛이 다른 것이 보였다고 했다.
 
센터에서 놀 때는 아이들이 어려서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이렇게 밝게 웃는다고 생각했는데, 동네에서 만난 다른 아이들의 미소는 확실히 달랐다고 했다. ‘이게 사랑받고 있는 어린이들의 표정이구나.’ 딸은 그 이후 방학이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나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인생의 방향타를 크게 돌아 스스로에게조차 조금은 불안하고 무모해 보이는 나에게 ‘잘했다’고 확신에 찬 응원을 해준다.
 
딸이 마크와 사진을 찍는 동안 옆에 서서 부러운 듯이 바라보는 한 여자 어린이와 내 눈이 마주쳤다. 커다란 눈의 참 예쁜 아이였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엄마에게 뛰어가 안겼다. 수줍어하는 아이가 귀여워서 바라보고 있으니 아이의 엄마가 다가왔다. 
 
그 아이의 엄마는 “딸이 심장병을 앓고 있는데 형편이 어려워서 아이에게 치료해 줄 수 없다”면서 “센터에 등록해서 양육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딸의 후원자가 돼 주겠다는 말에 엄마는 눈물을 보이며 ‘땡큐’를 연발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더 많은 어린이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됐다.
 
나에게는 살아온 날만큼 살아갈 날이 남아있다. 박사로서 지식도 전문적인 마케터로서 인사이트도 이곳에서는 아무 힘이 없다.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힘든 의사결정도, 내가 갖고 있던 전문성과 경험이 때로 불필요해 보이는 순간도, 이 엄마와 아이의 미소와 눈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치르고 지나가야 할 과정이었다.
 
오직 어린이를 향한 사랑과 단어 그대로의 컴패션(compassion, 긍휼), 그 긍휼한 마음만이 필요한 이곳에서 어느덧 4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내 여정의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은 알지만 어떤 보폭으로 걷고 있는지 발자국이 선명한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이 새로운 여정을 감사함으로 담담하게 걸어가련다.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공유하기
조희경 조희경 한국컴패션 후원개발실장 필진

[조희경의 행복 더하기] 최고급 아파트를 팔던 18년 차 마케터에서 NGO 신입생으로, 남 도우러 왔다가 내 마음 수련 중이다. 직장이 아닌 인생에서 멋지게 은퇴하고 싶어 선택한 길. 돈과 지식보다 진심 어린 마음이 더 위대한 일을 해낸단 걸 배우고 있다. 더 오래 사랑하며 살고 싶은 중년 아줌마의 고군분투 NGO 적응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