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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졌지만 웃을 수 있는 오세훈

중앙일보 2019.03.05 00:15 종합 27면 지면보기
신용호 정치국제에디터

신용호 정치국제에디터

2011년, 8월 중순쯤이었다. 서울 마포의 한 식당에서 오세훈(당시 서울시장)이 몇몇 인사들과 마주했다. 그는 초·중학교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발의해 놓은 상황이었다.
 

황교안 못 넘었어도 개혁보수 가치로 선전
전대에서 보인 절박함이 당 퇴행에 맞선 힘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시장직을 걸어야 할까요?” 이게 그 자리에서 그가 얻고 싶은 답의 요지였다. 결론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는 주로 듣기만 했다. 그는 얼마 후 전격적으로 “시장직을 걸겠다”고 발표했다. 전면적 무상급식을 막으려던 승부수였다. 결과는 처참했다. 투표율이 25.7%에 그쳤다. 주민투표는 투표율이 33.3%에 미치지 못하면 아예 개표 자체가 무산돼 패한 셈이 된다. 당시 야당이 제기한 ‘나쁜 투표 거부’ 프레임을 이기지 못했다. 패배 후 이런 분석이 나왔다. 오세훈은 단계적 무상급식론이 전면적 무상급식론을 표에서 앞설 것이란 생각만 했지, 투표 거부로 투표함을 못 여는 상황이 생기리란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패인의 전부였을까. 무상급식이 그가 시장직을 걸 만큼 절박했던 것일까. 그날 식당 모임에선 무상급식의 부당함에 대한 호소보다는 시장직을 거느냐 마느냐는 얘기가 더 많았던 걸 보면 말이다.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무상급식 반대가 대선을 겨냥해 ‘보수의 아이콘’ 자리를 노린 포석이 아니었냐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2019년 2월 13일, 한국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그를 서울 광진구의 한 식당에서 인터뷰했다. 황교안에 한참 뒤져있다는 평가를 받던 그는 8년 전과 달리 절박했다. ‘이번에도 가라앉을 수 없다’는 결기가 보였다. 승패와 상관없이 ‘내 할 말은 다하겠다’는 자세였고, 개혁 보수로서의 자리매김에 목말라 있었다. “자신 있느냐”는 첫 질문에 답을 10여분을 했다. 답을 중간에 끊어도 막무가내였다. 하고 싶은 말, 아니 해야 할 말이 많았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사실 “오세훈은 쉽게 의원이 되고 시장도 돼 치열함이 없다”(한국당 한 중진 의원)는 말이 그를 지배하는 평 중 하나다. 실제 그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강남을에 공천을 받아 배지를 달았다. 2004년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2006년 서울시장 후보가 돼 당선된다. 연임에도 성공하지만, 무상급식 투표에 패하며 사퇴한다. 바닥이 없었던 정치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 후론 얘기가 달라진다. 소위 ‘쓴맛’이 뭔지 알게 된다. 무상급식 투표 패배의 책임론이 그를 짓눌렀다. 20대 총선(2016년)에서 텃밭이 나쁘지 않은 종로에 나가 패한다. 탄핵정국에는 탈당해 바른정당으로 갔다. 거기서 반기문을 대선 후보로 지지하려는 듯하다 스타일을 구긴다. 이후 바른정당을 탈당해 지난해 11월 복당했다. 결과적으로 신념보다는 시류에 영합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행보였다.
 
세간의 엄정한 평가를 그도 알게 됐을 거다. 그러니 전당대회에 나온 그로선 더는 물러설 데가 없었다. 아마 이번 출마는 위기감이 그를 불러냈는지 모른다. 절박함은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묻어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논란 등으로 우경화 분위기가 당을 지배했지만, 그는 개혁 보수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을 극복하자” “탄핵을 인정하자”고 했다가 “빨갱이냐” “배신자”란 비난을 들었지만 정면 돌파했다.
 
그래도 황교안 대세론을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수확이 적지 않았다. 전당대회 일반여론조사에선 50.2%로 황교안(37.7%)을 크게 앞섰다. 당심에서도 22.9%로 김진태(21.8%)를 눌러 당에 태극기표만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 당의 퇴행에 맞서 일관성 있는 목소리를 낸 덕분이다. 실제 당 일각에선 "이번 전당대회에서 황교안보다 재미를 본 이가 오세훈”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하강 곡선을 그리던 그의 정치 여정이 바닥을 치고 올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성급하게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던 과오에서도 이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아직 개혁 보수의 리더로 자리를 굳히기엔 갈 길이 멀다. 스타일리스트, 자기 정치, 비호감 이미지 등 그를 따라다니는 부정적 이미지를 더 털어내야 한다. 동시에 심하게 우경화 경향을 보였던 당내에서 보수의 혁신이란 역할도 해내야 한다. 당이 더 우경화돼선 내년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도 희망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오세훈은 이번 전대에서 이룬 절반의 성공이 그의 절박함에서 나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는 출마선언문에서 “보수 우파를 재건하기 위해 과거를 냉철히 반성하고 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굳건히 세워야 한다”고 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이 당선을 위해 그냥 한마디 내뱉은 말이 돼선 안 된다. 그가 이번에 보여준 절박함을 안고 간다면 보수가 가치를 제대로 세우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거다.
 
신용호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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