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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 바이오기업들, 규제 탓에 중국으로 탈출한다

중앙일보 2019.03.05 00:10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10여 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에 취약한 분야로 드러난 제약산업이 최근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다. 2016년 처음으로 수출액이 1조원을 넘어섰고, 2017년에는 2007년에 비해 수출이 6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 1월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한국의 26개 바이오·제약사가 초대받아 한국 바이오산업의 위상을 실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메인 트랙(주요 자리)을 배정받았고 한미약품·코오롱제약·메디톡스 등 7개사가 발표 기회를 얻었다.
 

바이오산업 국제적 위상 높지만
규제 적은 중국으로 나가는 현실
세포치료제 규제 완화 혜택 ‘제로’
규제 샌드박스 조속히 시행해야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반기업 정서와 규제에 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 규제가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2016년에 세포치료제의 조건부 허가대상이 확대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규제 완화 혜택을 받은 제품은 단 한건도 없다. 최근 세계적으로 파킨슨병 등 난치성 질환에 줄기세포를 활용하려는 임상시험이 승인을 받으면서 줄기세포 시장의 규모가 연평균 25%씩 성장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에 세계 최초로 척수손상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치료제의 상용화를 허용했다.
 
반면 한때 줄기세포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한국은 아직 약사법이나 임상규제 등에 발목이 잡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또 지방흡입술 때 나오는 폐지방을 미용이나 의료품으로 재활용하는 기술을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규제 때문에 상용화를 못 하고 있다.
 
소비자가 직접 받을 수 있는 유전자검사(DTC)도 콜레스테롤·혈압·탈모 등 12개 분야 46개 유전자 항목에 국한돼 있다. 암이나 치매 등 중증질환 유전 정보도 DTC를 통해 확인해볼 수 없다. 반면 미국·유럽·중국·베트남 등은 DTC에 거의 제한이 없다. 그 결과 메디젠휴먼케어 등 우수한 유전자 진단 능력을 갖춘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시론 3/5

시론 3/5

중국은 2050년까지 세계 모든 분야에서 최강이 되겠다는 야심 찬 ‘중국몽(中國夢)’ 전략에 따라 ‘중국제조 2025’를 제시했다. 10대 핵심 육성 산업 중의 하나인 바이오·의료 산업 규모를 2020년까지 최대 10조 위안(약 1700조원) 규모로 키우고, 바이오 신약 3개 독자 개발 목표도 세웠다. 2016년 중반부터 신약 승인 신청 및 임상 절차를 대대적으로 완화했다.
 
이로 인해 국내의 바이오 업체들이 중국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미용제품인 메디톡시를 생산하는 공장을 9배 이상 크게 늘리려고 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중국의 3S바이오에 일부 바이오시밀러의 판권을 위임하기로 했다. 그리고 C-브리지캐피털과 바이오시밀러 제품 판권 계약도 맺었다. 램시마(자가면역질환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셀트리온은 상반기에 중국 타슬리제약그룹과 합작으로 현지 공장을 세워 기술이전까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기에 후발주자였던 한국은 디지털 분야에 과감한 투자로 선두주자가 됐다. 지금은 화학합성 약품 시대에서 바이오 의약품 시대로의 전환기다. 150년 역사를 가진 서구 선진국을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이 골든타임을 규제와 반기업정서로 놓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한국의 바이오 경쟁력 순위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미국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발표하는 2018년 바이오산업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54개국 중 26위로 나타났다. 2009년(15위)보다 무려 11개 단계 추락한 것이다. 한국은 바이오 논문 발표는 세계 9위로 높지만, 원격의료 규제 등으로 인해 기술 활용도가 낮기 때문이었다.
 
이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 등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미국·유럽·일본 등은 바이오 의약품을 일반 의약품과 별도의 규정으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약사법으로 동일하게 규제하고 있다. 인구가 5000만명이 넘는 한국의 세계 신약 시장 점유율은 2%에 불과한데 인구 1100만 명인 벨기에는 5%나 차지한다. 그 이유는 규제를 완화해서 빠른 신약 임상시험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은 어느 방향으로 진행할지 모른다. 때문에 기존의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는 급변하는 기술변화를 제도가 따라갈 수 없다. 안되는 것만 빼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중복 규제를 없애고 약속한 규제 샌드박스도 빨리 시행해야 한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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