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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씨름이 스모에 밀리는 이유

중앙일보 2019.03.04 00:28 종합 27면 지면보기
정제원 스포츠팀장

정제원 스포츠팀장

스모는 일본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일본의 대표음식 스시와 함께 일본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10년 전 전용 경기장 만든 스모, 일본 아이콘으로 성장
인류 무형문화유산 씨름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도 몰라

일본의 국기인 스모는 21세기에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들어 인기가 전보다는 시들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스모 경기가 열릴 때마다 도쿄의 전용경기장은 국내외에서 몰려든 관중들로 꽉꽉 찬다. 입장권 가격은 2100엔~1만4800엔(약 2만1000원~14만9000원). 프로 스모 경기는 해마다 홀수 달에 열린다. 1월과 3월에 이어 5, 7, 9, 11월까지 모두 여섯 차례 열린다. 이 중 3차례는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열린다. 나머지 대회는 오사카와 후쿠오카 등에서 개최된다.
 
일본의 스모가 항상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다. 젊은 층의 외면으로 고사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스모가 건재한 비결은 따로 있다. 무엇보다 일찌감치 프로 체제를 도입한 뒤 정부와 스모협회·미디어가 힘을 합쳐 판을 키웠다.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장소에서 열리는 것도 스모 인기의 비결이다. 도쿄 한복판에 자리잡은 료고쿠 고쿠키칸(兩國國技館)은 지난 1984년 건설된 스모 전용 경기장이다. (내년 도쿄 올림픽에선 여기서 복싱 경기가 열린다.) 스모 전용 경기장이 처음 만들어 진 건 1909년이었다. 그러나 1945년 전쟁 통에 이 건물이 소실되자 1985년에 1만1000석 규모의 스모 전용 아레나를 다시 지었다.
 
일찌감치 외국 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도 스모의 인기에 큰 몫을 했다. 1993년 하와이 출신 아케보노가 요코즈나의 자리에 오른 뒤 현재 몽골과 조지아·이집트·브라질에서 온 선수들이 일본의 스모 판에서 활동 중이다. 요코즈나란 씨름으로 치면 천하장사에 해당하는 타이틀이다. 건장한 체격의 일본 선수들과 해외에서 온 선수들이 도효(土俵·흙으로 만들어진 경기장)위에서 맞붙는 모습에 관중들은 열광한다. 최근엔 몽골 출신 요코즈나가 스모계를 평정하고 있다. 특히 몽골 출신 하쿠호와 가쿠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공영방송 NHK의 보이지 않는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NHK가 스모를 중계하기 시작한 건 1953년. 1960~70년대에는 후지TV와 니혼TV등 민영방송들도 스모를 중계했다. 그러나 스모 경기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민영방송은 중계를 포기했다. NHK는 중단하지 않았다. 일본의 국기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스모 경기를 독점 중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해마다 수백억원의 중계권료를 일본스모협회에 지급한다. 스모협회 예산의 4분의1 이상이 이 중계권료에서 나온다.
 
이제 한국의 민속 씨름으로 눈을 돌려보자. 씨름은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스모보다 훨씬 많은 기술이 필요하고 역동적이다. 그런데 2019년 현재 이 땅의 씨름은 간신히 명맥 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씨름 대회가 언제,어디서 열리는 지 조차 알기 어렵다.  
 
이봉걸·이만기·강호동 같은 스타들은 모래판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전용경기장은 하물며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다. 정부는 씨름을 보존하기 위해 올해와 내년 41억원의 예산을 지원하지만, 이 정도 예산 만으로 씨름의 인기가 살아날 거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전국에 등록된 씨름 선수는 고작 1800명도 되지 않는다. 일본의 NHK는 스모를 살리기 위해 손해도 감수하면서 60년이 넘도록 고정편성을 한다. 한국의 공영방송 KBS가 씨름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인류 무형문화유산인 씨름은 이제 실체가 없는 화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체육계는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와 협회·미디어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스모를 발전시키기 위해 뛰고 있다. 한국에선 씨름은 안중에도 없고 엘리트 스포츠가 옳으니 나쁘니, 합숙훈련을 폐지해야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싸우고 있다. 하기야 모래판을 주름잡던 천하장사가 한국의 대표적인 개그맨이 됐으니 더는 말해 무엇하랴.
 
정제원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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