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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의 시선] 빈집, 더 많아져야 한다

중앙일보 2019.03.04 00:26 종합 28면 지면보기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악성 미분양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국토부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전국의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1만7981가구로 전달인 지난해 12월(1만6738가구)보다 7.4% 증가했다. 지난 2014년 9월(1만8342가구) 이후 52개월 만에 최대치다.
 

전국 1만8000가구라지만 서울 19채, 인천은 448채
‘집테크’ 기대감 사그라뜨릴 장기 부동산 정책 필요

요즘 시장 상황을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전국 아파트 거래가격은 일찌감치 하락세를 보여왔다.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이 나온 뒤엔 서울 집값도 추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섰고 기준시가 현실화로 세금 부담도 한층 높아질 게 뻔하다. 분양시장도 서울 등 수도권에서 입지가 아주 좋은 곳을 빼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집값이 오르지 않을 듯 하니 어정쩡한 곳은 쉬 건드리지 않는 게 사람 심리다.
 
그런데 미분양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도권과 지방의 현격한 격차가 눈에 띈다. 수도권의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서울 19가구, 인천 448가구, 경기 2514가구 등 총 2981가구였다. 이에 비해 지방은 경북(3045가구)·경남(3030가구)·충남(3014가구) 등 1만5000가구에 달했다. 수도권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 남짓이니 인구나 경제력을 감안하면 현저히 적다.
 
준공 후 미분양은 대개 아파트다. 아파트는 전체 주택의 60% 가량을 차지한다. 해마다 늘어 2016년 1000만 가구를 넘어섰다. 통계대로라면 준공 후 미분양은 전체 아파트의 0.15% 정도인 셈이다. 미국의 빈 주택 비율(2.8%)보다 훨씬 낮다. 게다가 서울과 수도권으로 한정해 본다면 이 비율은 현격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짓고 있는 것을 포함해도 서울의 미분양 주택은 27채에 불과하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더구나 이 수치는 준공 후 미분양이라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이들 아파트가 분양한 시점은 지금보다 최소 3년 전이다. 박근혜 정부가 ‘빚 내서 집사라’고 부추기던 때다. 중산층은 노후 대비용으로 아파트에 투자했고, 지방 사람들은 ‘똘똘한 한 채’를 찾아 수도권을 기웃거렸다. 이럴 때 분양된 아파트가 미분양이라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투자가치가 없거나 너무 비쌌다. 그런데도 수도권의 준공 후 미분양이 턱없이 적은 건 집을 사서 재테크를 하자는 심리가 워낙 강했다는 얘기다.
 
물론 위험한 계산법이다. 이른바 ‘집테크’를 하는 사람들은 은퇴를 앞둔 50대가 많다. 이들은 10여년 뒤 자신의 노동력이 소진되는 때를 생각해 집을 샀을 것이다. 월세를 받아 노후 생활에 보탬이 되리라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10년 뒤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의 숫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의 숫자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명 아래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제일 낮고, 유일한 0명 대 국가다. 갈수록 집에 들어올 사람을 찾기 힘겨워질 수밖에 없다.
 
산업 고도화와 양극화도 변수다. 한국은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로봇을 많이 쓰는 나라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사용 비율이 훨씬 높다. 반도체, 철강 등 수출 상위 품목 대부분도 자동화 비율이 높은 산업이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이 비율은 앞으로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회가 앞으로 더더욱 대기업에 다니는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로 편성될 것이란 얘기다. 대기업 입사 경쟁에서 탈락한 다수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금의 아파트 값, 혹은 전세금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장기적으로 지금처럼 높은 아파트 가격이 유지되긴 어렵다. 그런데도 수도권의 아파트는 빈 집이 거의 없다. 최근 몇년간 집값 상승률은 국내총생산(GDP) 상승률을 한참 웃돌았다. 저금리와 잘못된 정책이 부른 모순이다. 하지만 이 모순은 멀지 않은 장래에 해소될 수 밖에 없다. 인구가 줄고 양극화가 굳어지면 공급자 위주의 ‘집값 불패’ 신화도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상황에 대비하려면 빈집, 정확히는 빈 아파트가 지금보다는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기대감이 꺾이고 시장이 제자리를 잡는다. 집값 폭락이라는 잠재적 위험을 미리 피할 수 있다. 외신들은 몇년 전부더 중국 부동산 거품에 따른 그림자금융의 위험성을 제기하고 있다. 빚을 내 집을 샀는데 어느 순간 시장이 붕괴하면 다잡기엔 이미 늦다. 집값 폭락과 이에 따른 금융시스템 불안을 피하기 어렵고 막대한 국 가적 비용이 필요해진다. 우리 부동산 시장도 이런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가계부채가 어느새 1500조원을 돌파했다. 값이 치솟는 집을 사러 너도나도 은행 빚을 낸 결과다.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지적된지도 몇년이 흘렀다. ‘집테크’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사그라뜨릴 장기적이고 현명한 주택 정책이 필요하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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