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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북관계 위주로 현 상황 타개하려 해선 안 된다”

중앙일보 2019.03.04 00:05 종합 8면 지면보기
한반도평화만들기 5인 긴급좌담
‘노딜’로 끝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짚어보는 긴급 좌담회가 한반도평화만들기 주최로 2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고유환 동국대 교수, 신각수 전 주일본 대사, 권만학 경희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장진영 기자]

‘노딜’로 끝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짚어보는 긴급 좌담회가 한반도평화만들기 주최로 2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고유환 동국대 교수, 신각수 전 주일본 대사, 권만학 경희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장진영 기자]

파국인가, 보다 장대한 걸음을 위한 조정 국면인가. 지난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회담이 결렬됐다. 현대 외교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정상 간 외교의 실패다. 지난해 1월 평창 올림픽 이후 동북아 정세를 흔들며 이어져 온 한반도의 빅게임,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 일단은 쉼표를 찍는 분위기다.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는 2일 중앙일보에서 긴급 좌담회를 열고 하노이 회담 결렬의 배경, 포스트(post) 하노이 정세를 진단·전망하고 한국 정부가 견지해야 할 자세를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에는 고유환 동국대 교수, 권만학 경희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신각수 전 주일본 대사,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가나다 순)이 참석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한국은 당사자, 중재는 불가능
독자적 비핵 평화 구상 제시해야
 
고유환 동국대 교수
북·미, 빅딜 최대치 내놔 협상 결렬
합의 실패했지만 파국은 아니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북, 제2싱가포르 합의 가능 오판
장기 교착 상태 이어 도발할 수도 
 
드라마틱한 상황이 일어났다.
고유환 교수=정상들 간의 ‘톱다운(Top down)’ 회담이라 기대가 컸는데 잘 안 됐다. 비핵화와 상응 조치의 큰 그림을 담은 지붕을 씌우고 기초공사를 하는 합의를 예상했는데, 서로 빅딜 형태의 최대치를 내놓으면서 깨졌다. 관심사를 서로 확인한 만큼 추가협상을 해 나가면 된다. 완전히 깨진 협상은 아니다.

신각수 전 대사
=회담 자체는 합의가 없었으니 엄연한 결렬이다. 그러나 성과는 있다. 그동안 이어진 미·북 교섭의 불확실성, 트럼프 리스크가 해소됐고, 미국이 자국에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해결하고 핵은 동결하는 ‘스몰 앤드 배드 딜’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사라졌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불확실하다는 게 확인된 것도 성과다.

박명림 교수=양측이 ‘진실의 순간’을 마주한 회담이다. 지난 25년 동안 북핵 협상은 북한의 ‘핵 실체 공개(핵신고 및 사찰)’ 대목에서 늘 난관에 빠졌다. 이번에도 그랬다. 성과는 쌍방이 얘기하는 비핵화 개념이 분명해졌다는 점이다. 미국은 핵폐기이고, 북한은 적어도 초기 단계는 핵군축이다. 김 위원장이 상당한 제재 해제를 요구했는데, 유엔 안보리와 미국 의회를 포함해 제재체제(sanction regime)는 국제합의라는 점이 중요하다. 적어도 북한이 제공하는 초기 비핵화와 상당한 수준의 제재 해제를 교환할 수 없다는 신호를 미국은 북한에 확실하게 보냈다.

위성락 전 본부장=톱다운 방식의 리스크를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싱가포르에 이어 다시 시도한 게 하노이 회담이다. 예상한 결말이다. 일각에선 1986년 결렬 뒤 6개월 만에 핵군축 합의에 성공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레이캬비크 회담을 거론하지만 당시 미·소 간엔 힘의 균형이 있었고, 바텀업(bottom up) 협상이 기초가 돼 있었기에 결렬 이후 (실무 간)재협상이 가능했다. 지금 같은 변칙적 정상회담은 해결이 쉽지 않다.
 
결렬 원인을 두고 입장이 맞선다.
권만학 경희대 교수=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ICBM과 핵탄두 논의도 회피했다고 했다. 종합해 보면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 전부를 폐기할 의사를 밝혔다는데 ‘우라늄과 플루토늄 시설’이었던 것 같다. 미 정보기관은 ‘영변에 트리티움(삼중수소·수소폭탄 원료) 생산 시설이 있다’고 본다.

=북한은 유엔 제재 11개 가운데 민수 관련 5개만 요구했다고 하는데 그건 2016년 이후 취해진 유엔 제재의 핵심, 전부나 마찬가지다. 같은 내용을 서로 달리 해석했을 뿐이다. 북한은 트럼프의 국내 정치적 상황을 보고 세게 베팅한 것 같다.

=실무 협상부터 북한은 제재의 주요 부분 해제를 요청했고 미국은 거부한 상태에서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북한은 6·12 싱가포르 회담을 겪으며 자유언론·포퓰리즘이 작동하는 미국의 트럼프는 일단 나오면 합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오판했다. 제2의 싱가포르 합의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제재의 개념도 분명해졌다. 북한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의 등가물로 제재를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핵실험 중단과 미사일 발사 중지의 대가로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제재는 북한의 핵 개발 및 핵 위협 자체에 대한 제재다. 결국 이번에 북한은 작은 대가로 큰 물건을 구입하려 한 셈이다. 
 
=주목할 점은 북한 지도부가 제재 해제를 북·미 간 신뢰구축 상징의 넘버1으로 삼은 점이다. 동창리·풍계리·영변 등 전략적 효용이 떨어진 카드를 내놓고 제재 전체 해제를 요구했다. 북한은 2005년 BDA 계좌에 묶인 2600만 달러로 협상 과정을 올스톱시켰다. 결국 핵실험까지 했다. 북한의 교조적인 교섭 행태로 볼 때 향후 타협의 여지가 적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를 결심하면서 핵·경제 병진에서 경제우선으로 당의 노선을 바꾸고 5개년 전략도 수립했다. 자기 체제의 존속을 위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편승하지 않으면 후진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본 것 같다. 제재 국면에서는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하고 북한 입장에선 경제발전을 할 수 없으면 비핵화할 이유가 없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병진노선의 ‘성공’을 얘기했지 ‘중단’을 말하지 않았다. 나아가 자기들의 ‘핵실험 중단은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대외적으로도 북한 비핵화가 아닌 조선반도 비핵화를 말했다. 게다가 남북, 북·미 정상회담 시기 동안에는 핵무기를 ‘만년보검’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회담 결렬 뒤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 사진)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차량이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하노이 AP·EPA=연합뉴스]

지난달 28일 회담 결렬 뒤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 사진)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차량이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하노이 AP·EPA=연합뉴스]

권만학 경희대 교수
김정은 ‘무오류 수령’ 이미지 타격
강경파 반발 등 논란 직면 가능성

신각수 전 주일 대사
스몰딜 우려, 트럼프 리스크 해소
문 대통령, 김정은에 쓴소리 해야 
 
트럼프와 김정은 득실을 보자면.
=북한은 지난해 1월 1일 신년사 발표 이래 자신들이 판을 좌우하고 있다고 생 각하고 있는데 하노이에서 덜컥 그렇지 않은 상황을 맞았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상황으로 북핵 문제에서 멀어지고 대선 국면으로 가게 되면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기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그렇게 도발을 해 왔고, 그게 먹혔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고 인식한다는 점이 문제다.

=김정은은 최근 1년 반 동북아 국제관계의 결정적인 중심 행위자로 등극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크게 실기했다. 과거 김정일이 클린턴의 초청 시에 워싱턴을 방문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현재의 강력한 국제 제재를 계속 감당한다면 북한의 발전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회담 사실을 주민들에게 이례적으로 알린 것은 성공을 확신했다는 뜻이다. 이번 실패가 북한 사회, 김정은에게 주는 충격은 클 것으로 본다. 트럼프도 손해를 보긴 했지만 미국은 국내 정치에서 국제 문제의 영향이 적다. 특히 핵심 지지층인 러스트벨트는 핵 문제에 별 관심이 없다. 

=핵 능력 국가라는 자신감으로 ‘완전한 비핵화’란 전략적 결단을 한 북한은 전에는 종전선언에 집착했지만 이제 신뢰의 징표로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다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고 방치할 것인가 하는 전략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트럼프가 국내 요인으로 판을 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북의 핵능력이 고도화되는 것을 방치할 순 없을 거다. 대신 북은 당분간은 도발하지 않을 것이다. 프로세스가 실패할 경우 남·북·미 3국 리더십이 받을 상처가 크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회담은 출발점에서 깨졌다. 조금 깨진 게 아니라 정상이 디테일을 얘기하다 깨졌다. 통상, 외교관계가 이렇게 되면 거의 파국이다.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 이것을 피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향후 빅딜 가능성을 얘기하지만, 공학적으로 볼 때 사달이 나고 빅딜로 갈 것으로 보인다. 그냥 순항하긴 힘들다. 장기간 교착상태에 이은 도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트럼프는 완전한 북핵 폐기 카드를 던졌다. 북한이 먼저 양보를 하기 전에는, 혹은 도발에 대응한 조치를 내기 전까지는 쉽게 운신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상황이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북한이 노동신문에 협상 결렬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현실과 프로파간다를 구분해야 한다. 김정은 귀국 후 회담 결렬이 초래하는 후폭풍은 있을 거다. 무오류의 수령이 오류를 남긴 것 아니냐. 강경파의 반발 등 내부적 논란에 직면할 수도 있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도 배드 딜보다는 노딜이 낫다고 트럼프를 칭찬한다.  
 
 
 
문 대통령이 3·1절 경축사에서 남북 협력을 더 강조했는데.
=경축사에서 북한 비핵화를 더 강조했어야 한다.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면 네 번째다. 김정은에게 북한 비핵화에 관해 쓴소리를 했으면 좋겠다. 북핵 폐기와 상응조치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빅딜이 성사되도록 촉진자(facilitator)로서 양측을 설득해야 한다. 한국은 북핵 문제의 핵심 당사자다. 당사자는 중재자가 될 수 없다.

=30년간 북한 핵 문제가 풀리지 않은 이유는 상호 간 배신의 두려움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이 보이는, 3단계 포괄 딜이 필요하다. 1단계는 핵시설 폐기, 2단계는 핵물질 반출, 3단계는 핵탄두 반출로 단계를 잡고 이에 상응해 한·미는 평화협정과 북·미 국교정상화와 제재 해제, 끝으로 대대적 경제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1단계가 이행되면 2단계가, 2단계가 완료되면 3단계가 자동 발효되게 연계해 종합로드맵의 골격을 갖추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면 이런 걸 해야 한다.

=사고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대결완화 단계에선 중재가 필요했지만, 평화구축 과정에선 반드시 당사자로 돌아가야 한다. 중재는 불가능하며, 더 이상 중재라는 단어를 써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한국의 독자적 비핵평화 구상을 제시해야 한다. 즉 금번 북·미 대립구도인 비핵화와 제재완화 교환보다는 안보 대 안보, 평화 대 평화라는 정치·군사·외교 분야의 체제안전 보장과 비핵화를 상호 교환하는 게 첩경이다. 문재인 이니셔티브는 이제 반드시 문재인 프로세스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서 거리를 둘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선 자연히 강경론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 위원장이 다른 게임(도발카드를 이용)을 하면 북한·미국은 더 멀어질 거다. 우리의 정확한 상황인식이 중요하다. 자칫하면 과거와 똑같은 역할을 하려고 할 수 있다. 트럼프를 북핵 트랙에 붙들고 북한에 실용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남북관계 위주로 상황을 추동해 보려는 시도를 할까 우려스럽다.  

=이번 회담 결렬은 미국의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다. 미 정부는 물론 의회·언론·싱크탱크에 우리 입장을 더 알려야 한다. 한·미·일 협력도 중요한데, 최근 한·일 관계 악화로 핵 문제에서 부조화 현상이 심하다. 미국을 끌고 가는 데도 일본을 잘 활용해야 한다.

=3·1절 기념사, 신한반도 체제 구상은 북·미 회담이 궤도에서 크게 이탈하진 않았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북·미 간 제재완화에 따른 보상 패키지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문제는 평화 프로세스와 비핵화 프로세스의 연결인데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될 줄 알았으나 실패했다. 북한이 종전선언과 연락사무소를 받고 제재완화를 받았으면 될 것 같은데 사실상 전면 제재 해제를 너무 앞에 내세운 게 아쉽다.지금부터는 신뢰유지, 상황관리, 그리고 빅딜을 위한 한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김수정 논설위원 겸 콘텐트제작에디터 박규민 인턴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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