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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논설위원이 간다] “피고인, 반성합니까?”…법은 내심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나

중앙일보 2019.03.04 00:04 종합 24면 지면보기
‘반성’의 진정성 놓고 고심하는 형사 법정
중학생 딸의 친구를 추행하고 살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지난해 11월 대법원 선고까지 반성문을 43차례 제출했다. 사진은 2017년 그가 1심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가는 모습. [뉴스1]

중학생 딸의 친구를 추행하고 살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지난해 11월 대법원 선고까지 반성문을 43차례 제출했다. 사진은 2017년 그가 1심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가는 모습. [뉴스1]

‘반성’. 형사사건 재판에서 계속 마주치는 단어입니다. 피고인이 반성하는지, 반성한다면 얼마나 하는지가 형량 정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요. 과연 진심으로 반성하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법이 사람의 내심(內心·속마음)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반성은 재범 가능성 낮다는 뜻’
“반성합니다” 고개 숙인 피고인들

흉악범들도 반성문 내고 감형 받아
재판부마다 “위선” “잘못 인식” 상반

‘반성’이 말이나 표정으로 감별될까
판결 반영 최소화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서관 4층. 한 법정 문을 조용히 열었습니다. 재판부 이동을 앞두고 판결 선고가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몇 사람이나 지났을까요.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호명됐습니다. 점퍼 차림인 걸 보니 불구속 상태입니다.
 
“○○○ 피고인. 원심이 유죄를 선고했으나 피해자 진술이 여러 부분에서 일치되지 않고 객관적 증거와도 맞지 않아 그 진술만으론 유죄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원심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돌아서는 남성의 눈이 벌겠습니다. 그를 따라 법정 밖으로 나왔습니다. 남성은 목이 말랐는지 정수기에서 물을 따르려다 연신 종이컵을 떨어뜨리더군요. 한 번, 두 번….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려다 말았습니다. 그가 실제 범행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의 마음 속엔 어떤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을까요.
 
형사재판은 했느냐, 안 했느냐의 싸움입니다. 피고인이 범행 사실을 인정하면 그다음엔 어떻게 했느냐, 왜 했느냐, 한 다음에 어떻게 했느냐에 돋보기를 들이댑니다. 징역을 살게 할지, 살게 하지 않을지, 살게 하면 얼마나 살지를 정하기 위해서죠.
 
지난 석 달, 1주일에 한두 번씩 형사 법정을 출입했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반성”이란 말을 쉴 새 없이 들었습니다. 판사는 진짜 반성하느냐고 묻고, 검사는 진짜 반성하는 건 아니라고 하고, 피고인과 변호사는 진짜 반성하는 거라고 답답해 했습니다. 운전기사들에게 상습 폭언 등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기업인은 이렇게 최후진술을 하더군요.  
 
“사건 이후 스스로 반성하는 의미로 주로 택시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1년 반을 보냈습니다.”(이장한 종근당 회장)
 
‘반성’이 중요한 건 재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범죄를 저지를 것 같지 않은데 무겁게 처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피고인들이 재판부에 몇 번이고 반성문을 써내는 것도 그래섭니다. 특히 항소심 사건 중 30% 이상이 원심 파기되는데요. ‘양형부당’(처벌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움)이 가장 많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인이 반성하는지를 놓고 검찰과 변호인 간에 공방이 벌어지고요. 판사가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형량이 낮아지게 됩니다.
 
수십 건의 재판을 지켜보면서 실제로 반성하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판사들 가운데 같은 생각을 품은 이가 적지 않은가 봅니다. 한 판사는 재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사사건 항소심 원심파기 추이

형사사건 항소심 원심파기 추이

“성범죄 재판을 해보면 ‘반성한다’ 이 한마디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말이라는 것은 매우 무겁지만, 또한 매우 가볍습니다. 공소사실 인정하고, 말로만 반성하는 게 진짜 반성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 어떤 재판에선 재판장과 피고인 사이에 이런 문답이 오가기도 합니다.  
 
“피고인. ‘먼저 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반성문에 이렇게 썼던데 무슨 뜻인가요?” “아, 그게… 누구보다 저 자신에게 가장 큰 잘못을 한 게 아닌가 싶어서….”
 
반성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보니 피해자와 합의하면 반성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변호사들은 “합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다음 재판기일을 늦춰달라고 요청하곤 합니다.
 
문제는 1심 땐 혐의를 부인했다가 항소심에서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경우입니다. 잘못을 뒤늦게 뉘우치는 걸까요. 아니면 죄는 없지만, 무죄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으니 형량이라도 적게 받자는 걸까요. 판사들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술에 만취해 항거 불능 상태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준강간)로 한 남성이 구속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자 항소심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변호사는 “1심에선 ‘준강간’의 의미를 오해해 부인했으나 이제 피해자와 합의하고 죄를 반성하는 만큼 형량을 낮춰 달라”고 했습니다.
 
판사=“피고인. 1심에서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았고 피해자 증인신문까지 했는데 그때는 범죄가 되는지 몰랐다는 겁니까?”
 
피고인=“이번에 변호사님과 상의하면서 제대로 알게 됐고, 반성하게….”
 
판사=“비슷한 사건으로 집행유예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엄하게 처벌받을까 봐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 아닌지, 착각했다고 하는데 그 착각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최근엔 반성문 대필해주는 업체까지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강력사건 범인들도 반성문을 내고 감형받습니다. 중학생 딸의 친구를 성추행하고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37)은 항소심에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습니다. 그는 1심에서 14차례, 항소심에서 26차례, 대법원에서 3차례 반성문을 냈는데요. 총 43차례에 걸친 이영학의 반성은 ‘악어의 눈물’일까요, ‘진정한 반성’일까요.
 
1심 재판부는 “위선적인 모습에 불과하다”고 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미약하게나마 잘못을 인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판사들 역시 반성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입니다. “재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얼마나 반성했는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는 시각부터 “객관적인 행위만 보고 반성 여부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까지 다양합니다.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판사가 피고인의 말이나 얼굴, 글 같은 것들을 보거나 듣고 ‘진짜 반성’을 감별해낼 수 있을까요. 검증하기도 힘든 피고인의 속마음을 형량에 지나치게 반영해선 안 되는 것 아닐까요. 만약 무리한 수사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유죄 판결을 받고 “반성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며 중형까지 받는다면 정말 억울하지 않을까요.
 
이런 물음도 떠오릅니다. 피해자와 합의하면 용서했다고 간주하고, 용서하면 반성했다고 간주하는 게 옳을까요. 반성은 용서를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일본의 재판관 출신 교수인 세기 히로시는 “재판에서의 사실인정은 가능한 한 개인의 내면 영역에 관한 것은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법정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의 지적에 저도 동의합니다. 법이 사람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는 건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 교화의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형사재판에서 반성 정도를 참작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최소한에 그쳐야 합니다. 현행 양형조사관 제도를 대폭 강화해 재범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제 생각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법정에 들어가 봤다고 모든 걸 알 수는 없으니까요. 판사, 검사, 변호사들께서 많이 생각해보셨겠지만, 다시 한번 고민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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